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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2030, 그들이 사는 법]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해이아나 청년농부·전남 구례

[한국농어민신문]

112나 119처럼 최악의 순간에 연락할 곳이 아니라, 일상에서 소통할 기관이나 관계망이 없으니 사건사고가 터지고서야 그들의 존재를 알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농민들도 힘들지만, 농촌 이주노동자들의 삶은 더욱 연약하다.
 

“최씨네 요즘 정신없을 걸~ 그 외국애 둘 도망 갔잖여.” 지인의 지나가는 말에 마음이 철렁한다. 하지만 “왜요?”라고 묻진 못할 것을 알기 때문에 “그래서 요즘 통 안 보이는구나.”라고 주어도 없는 대답을 하고 넘겼다.

최씨네에서 일하던 이주노동자들은 태국인이었다. 나는 태국어를 조금 할 줄 알아서 그들을 만난 적이 있다. 우리나라에선 카카오톡이 주요 소통 수단이라면 태국인들에겐 페이스북 메시지가 큰 역할을 한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만난 후 종종 페이스북으로 이야기를 하곤 했었다. ‘어려운 일 있으면 연락해요’, ‘한 번 모여서 태국 음식 해 먹어요’라고 대화할 때마다 말하곤 했는데, 이 말 중에 지켜진 것은 없다.

나는 경기도 파주에 있는 이주민센터에서 2년간 자원 활동을 했었다. 이주민센터는 주말이면 북새통을 이뤘다. 이주여성들을 위한 가족 상담과 그녀들의 아이들을 위한 돌봄 교실이 진행됐고, 센터의 핵심 프로그램인 한국어 교실은 일요일 아침부터 오후까지 수업이 빽빽했다. 이주여성들도 참여했지만, 이주노동자들이 더 많았다.

‘센터 주변 노동자들이겠거니.’ 했는데 1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오는 이들도 있었다. 소중한 휴일에 한국어 수업 1시간을 위해 그곳을 찾는 것만은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환영해 주고 어려운 일은 도와주겠다는 한국인들이 있고, 자신들의 모국어로 말이 통하는 자기 나라 출신의 친구들을 만날 수 있기에 센터에 온다고들 했다.

도시 이주노동자들의 삶을 약간은 엿봤던 탓일까. 나는 구례로 이주한 뒤 새롭게 보게 되는 농촌 이주노동자들의 삶에 늘 놀란다. 핵심적인 노동력으로 존재하고 있지만 너무나 드러나지 않아 놀라고, 그들의 이주 생활의 연약함에 더욱 놀란다. 무엇보다 한국인 노동자가 부족한 현장에서 고된 노동을 하고 있다는 점은 같지만, 그 밖의 삶의 조건들이 도시와는 많이 다르다.

우리 사회의 도시와 농촌 사이의 격차가 이주노동자들의 일상에선 더 아프게 작용한다. 농촌 이주노동자들은 대체로 농가에서 일하다 보니 밭이나 시설하우스가 있는 면 단위에 산다. 도시의 공장 노동자들도 주거지에서 떨어져 지내는 경우가 많지만, 대중교통 기반이 잘되어 있으니 언제든 도심으로 접근하거나 지인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저녁 8시 전에 모든 버스 노선 운행이 중단되는 구례에서는 이동권이 제한된다.

파주 이주민센터에서 만났던 노동자들에게 쉴 때 뭘 하냐 물어보면, 도심으로 나와 필요한 물건을 사고, 비슷한 처지의 이주민들과 만난다고들 했다. 하지만 농촌에서는 이런 일상이 쉽지 않다. 자차 소유가 불가능한 그들이 면에서 나오려면 고용주의 도움 없이는 힘들다. 원할 때 자유롭게 이동하지 못하고, 먹거리 장을 봐야 할 때처럼 필수적인 상황에만 외출하는 것이다. 읍내 마트에서 보았던 이주노동자들이 늘 농장주와 동행하던 모습이 그 증거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동이 가능한 환경이라도, 외출할 시간 자체가 없는 경우가 더 많다는 사실이다. 구례에서 일하다 광주 인근 농장으로 이동한 다른 태국인 노동자는 “점심시간 1시간이라도 줬으면 좋겠어. 여름에는 새벽에 나가서 저녁 8시 넘게까지 일해.”라고 말했다. 농사일이란 것이 그렇다. 농번기에는 할 일이 넘쳐나니 앞만 볼 수만 있으면 밤새 일 해야 할 것 같다. 나 역시 8시간 근무하던 서울에서보다 더 많이 일한다고 투덜대며 해 질 때 귀가하기 일쑤다. 나를 위로하는 사실은 일이 없는 농한기가 되면 달콤한 휴식이 기다리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1시간 점심시간조차 제대로 먹고 쉬지 못하는 그녀에게 “지금은 그렇게 바빠도 농한기가 있으니 좀 참아 봐”라고 말할 수가 없다. 농사일이 없는 시기, 작기가 끝나고 나면 갑자기 농장주가 쫓아낼지 모르기 때문이다.

농촌의 교육·문화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현실은 이주노동자들에게도 그렇다. 농촌 이주노동자들은 생활에서 부딪히는 언어, 의료, 관계 등의 어려움이 생겼을 때 도움을 요청하거나, 상의할 곳이 없다. 요즘 농촌에 ‘다문화가족지원센터’라는 이름으로 이주민을 위한 센터가 하나씩 있지만, 이곳은 주로 결혼이주여성과 그 가족을 대상으로 하는 편이다.

112나 119처럼 최악의 순간에 연락할 곳이 아니라, 일상에서 소통할 기관이나 관계망이 없으니 사건사고가 터지고서야 그들의 존재를 알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112나 119에도 전화 할 수 없는 ‘사람’, 불법체류자라 손가락질 받는 이들일수록 기본적 안전망이 더욱 필요하지만… 없다) 농민들도 힘들지만, 농촌 이주노동자들의 삶은 더욱 연약하다.

태국 요리 한 번 같이 해 먹지 못한 무심한 나는 이런 문제점들을 말할 자격이 없다. 쉬는 날이 정해져 있지 않아 약속 정하기 어려운 그들의 상황을 핑계 삼거나, 나 역시 농번기라 바쁘다며 미루기만 했으니까. 한파가 기승을 부리는 밤, 새로운 일터에서는 잘 쉬고 있을지 걱정이 돼 페이스북에 접속한다. 어디 있는지 모르는 그들에게 내 전화번호를 남긴다. “혹시 도움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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