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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2030, 그들이 사는 법] 나의 미래를 걱정한다

[한국농어민신문]

이아나 청년농부·전남 구례

내가 할머니가 되었을 때, 농촌의 삶은 얼마나 나아져있을까? 교통이나 의료 바우처 서비스라도 확대한다면 지금보다 할머니들의 생활이 더 편리해 질 것 같다. 하지만 이 같이 간단해 보이는 일도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을 보면, 내 미래가 그리 밝진 않다.


“그렇게까지 농사를 지으셔야해? 좀 쉬셔도 될 텐데 일을 놓질 않으셔~” 지난 달 나는 할머니들이 얼마나 농사일에 열정적이고 프로페셔널적인지에 대해 기고했다. 그 글에 대해 한 지인은 좀 다른 해석을 했다. 경제적으로 팍팍하지 않아도 농사일을 관두지 못하는 것을 할머니들의 억척스러움으로 봤다. 나 역시 자식들 다 독립시키고 큰 돈 필요할 일 없어 보이셔도 무리하게 일 하시는 할머니들을 뵐 때 억척같다 느끼기도 했다. 할머니들의 억척스러움은 어디에서 왔을까? 지난달에 이어 할머니들의 쉼 없는 농사일에 대해 좀 더 이야기 해 볼까 한다. 

우선 할머니들이 농사를 손에서 놓지 않는 모습에 생각이 많아지는 이유는 그녀들의 건강상태 때문이다. 농사일 하시는 할머니들은 여든이 넘은 경우도 많고, 대부분 무릎이나 허리 수술을 받으셨다. 틈만 나면 읍에 나가 물리치료를 받고, 진통제를 주기적으로 사 드시면서도 일을 하신다.

처음에 나는 이런 몸 상태로도 농사일을 하시는 것이 재정적 이유 때문일 것이라 추측했다. 우리 사회 노년층의 활발한 경제 활동 욕구는 도시와 농촌 구분이 없다. 도시의 노년층이 끊임없이 경제 활동을 찾듯이, 농촌의 노년층도 그렇다. 연초에 면사무소에 들렀는데 평소와 달리 할머니들로 꽉 차 있었다. 무슨 일 있는 날인가 물었더니, 공공근로사업 신청 기간이라 했다.

65세 이상의 노인층을 대상으로 한 공공근로사업은 늘 경쟁이 치열하단다. 현재 우리 면에는 53명이 환경 정비와 경로당 식사 준비 일을 하고 계신다. 신청자는 이 숫자보다 훨씬 많았다. 농사일보다 쉽고, 현금으로 정기적인 임금을 받을 수 있어서 할머니들은 공공 일자리를 할 수만 있다면 서로 하려고 한다. 면사무소 직원들에게 부탁에 부탁을 하고, 합격 전화를 받으면 그렇게 좋아하신다 한다.

생활에 필요한 현금이 이토록 부족한 것일까? 농촌 노년층 중에 생활비로 쓸 돈이 부족한 분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본인 소유의 집에 살고, 크기의 차이는 있지만 각자의 논이나 밭도 가지고 계신 분들이 오로지 돈이 필요해서 농사일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경제적 이유만이 아닌 다른 원인들을 나는 하나씩 알아 가고 있다.

농촌 노년층에게 농사일 외에 시간을 보낼 활동은 아주 부족하다. 현재 우리 사회 노년층이 직면한 공통적인 문제이기도 하지만, 농촌의 경우에는 그 상황이 더 열악하다. 마을회관에서 함께 밥을 먹고, TV를 보는 것 외에 다른 방식으로 시간을 보낼 방법이 거의 없다. 지난겨울, 10회 정도 강사들이 회관을 찾아 와 하루 1시간씩 건강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그 후 다른 활동은 마을에서 버스를 대절해 봄에 꽃놀이를 하루 다녀오신 게 전부다. 노년층이 참여하여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사회 · 문화적 활동이 농촌 지역에는 전무한 경우도 허다하다. 참여할 수 있는 활동이 없는 환경은 할머니들이 농사일만을 하시게 되는 원인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끊임없는 농사일의 또 다른 이유를 나는 ‘농촌의 삶이 주는 불안’에서 찾는다. “이 두 손으로 돈 벌어야 해서 여즉 맨날 바빠. 억척같이 살아야 모자람 없이 살 수 있는 겨~”라고 뒷집 할머니는 늘 말씀하신다. 도시나 농촌이나 그 세대 대부분이 그렇듯 살다가 생기는 모자람이나 어려움을 사회로부터 채움 받아 본 적이 없으신 탓이다. 더군다나 결과가 보장되지 않고 불안한 것이 농사다. 자연 재해나 가격 폭락으로 농사를 망쳐도, 믿을 것이라곤 오직 두 손과 땅 뿐이었다. 사회로부터 미래를 보장받고 농촌이 배려 받는 경험을 한 적이 없으니, 불안에 의한 노동이 몸에 배었다.

지금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세상이 좋아지고 편안해졌다지만, 고장 난 몸의 통증을 잊기 위해 읍내 병원을 다니는 것조차 쉽지 않다. 나룻배로 섬진강을 건넌 뒤, 차를 타거나 걸어서 읍에 갔던 예전처럼 복잡하고 오래 걸리진 않는다. 그러나 여전히 하루 세 번 마을 앞을 지나는 버스 시간에 맞춰 사륜오토바이를 타고 정류장으로 나와 기다려야 한다. 읍내에 도착해선 사륜오토바이도 없이 걸어서 병원과 약국을 다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일이 결코 만만치 않다. 버스를 기다리시는 동네 할머니는 “병원 가는 것이 큰 일이여.”라고 말씀 하신다. 꼭 필요할 땐 만오천원 내고 택시라도 불러야 한다. 농촌에서의 삶은 아직도 개인이 벌어 둔 돈이 없으면 불편하다.

나는 할머니들의 삶의 모습에 자꾸 내 미래를 투영한다. 앞으로 농촌에서 평생 살겠다고 마음먹은 나 역시 할머니가 되어 읍내에 가고 싶을 때, 이리 힘들까봐 겁이 난다. 과연 내가 할머니가 되었을 때, 농촌의 삶은 얼마나 나아져있을까? 교통이나 의료 바우처 서비스라도 확대한다면 지금보다 할머니들의 생활이 더 편리해 질 것 같다. 하지만 이같이 간단해 보이는 일도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을 보면, 내 미래가 그리 밝진 않다. 아니 내 미래 걱정은 차치하자. 그저 우리 동네 할머니들이 억척스런 농사일 좀 줄이시고, 불안하거나 어려움 없이 병원에 가고, 장을 보고, 목욕 할 수 있는 미래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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