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기고ㆍ독자투고
[농촌 2030, 그들이 사는 법] 할매들의 프로페셔널리즘

[한국농어민신문]

이아나 청년농부·전남 구례

늘 하던 대로 반복하기 보단, 더 좋은 작물을 보면 궁금해 하고 배우고 싶어 한다. 농작물에 필요한 단계별 작업 시기를 정확히 안다. 어떤 상황에서도, 심지어 몸이 아파도 필요한 작업이 있을 땐 그 일을 해 낸다. 내 작물에 대한 책임은 내가 진다는 의식과 작물을 자식처럼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가득하다.


“이 밭에 뿌리는 약이 뭐여? 물어 볼라고 올라왔어.” 밭을 구하지 못해 마을에서 벗어난 산 밑 다랑이 논을 빌려 심은 고추 밭에서다. 기계가 못 들어오는 땅이라 삽으로 만든 낮은 두둑에 심은 고추들은 느렸지만 결국 붉은 고추를 만들었다. 한창 붉은 고추를 따고 있는데, 한 할머니가 사륜 오토바이를 타고 올라오셔서 대뜸 어떤 약을 치며 농사를 짓냐 물으신 것이다.

할머니는 산 아랫동네에 사시는데, 동네 고추 대부분이 탄저병에 걸려 올해 농사를 망쳤다고 했다. 오가며 봤는데 우리 고추만 멀쩡해서 신기하셨단다. 밭에 치는 약이 뭔가 특별할 것이라 예상하고, 우리가 밭에 나타나길 기다렸다가 찾아오셨다. 질문하시는 할머니의 눈은 초롱초롱했다. 반드시 무슨 약을 쓰는지 알아내 그 약을 사서 뿌리겠다는 의지의 눈빛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 고추밭에 치는 약은 농약방에선 팔지 않는다. 고삼, 백두옹, 부자 같은 약재로 미리 만들어 놓은 액과 목초액, 식초 등을 섞어 병해충을 방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농약방에서 살 수 없는 약이라는 사실에 실망한 할머니는 포기하지 않으셨다. 어디에서 모종을 샀는지, 어떻게 약을 좀 구할 수 없는지 꼬치꼬치 물으셨다. 할머니는 혹시 자신이 갖지 못한 농사 지식을 이 초보 농부가 가지고 있진 않은지 확인하셨다. 그 정보가 유용하다면 자신의 농사에 새롭게 적용해 볼 작정이셨다.

며칠 후 읍내로 나가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정류장 건너편 밭에서 일하고 계신 뒷집 할머니가 보였다. 연일 불볕더위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 날 오후 뒷집 할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우리 집 건조기에 넣어 둔 그 집 고추 꺼내서 햇볕에 몰라(말려). 기계에서 더 몰라야 할지 내가 좀 봐야 쓰는데...”

자신의 건조기에 우리 고추도 같이 말려 주시는 뒷집 할머니의 전화였다. 그런데 할머니 목소리가 평소와 확연히 달랐다. 어디시냐 물었더니 병원이라신다. 마침 읍에 나와 있던 내가 모시고 들어가겠다고 했더니, “안 돼야~. 의사 선생님이 여기 있으랴”라고 하신다. 입원을 하신 거였다.  

퀭한 얼굴로 병원복을 입고 계신 뒷집 할머니의 모습이 어색했다. 무더위에 기력이 약해졌고, 탈수가 겹쳤다는 진단이었다. 며칠간 입이 써서 아무것도 못 먹었는데, 수액을 맞고 나니 이제 좀 낫다며 밥 한 그릇을 다 드셨다. 위급한 상황은 넘긴 것이다.

다음 날 오후에 다시 전화가 왔다. 혹시 읍에 있으면 마을에 들어갈 때 자신을 좀 데려가라고 부탁하셨다. 잠깐 진료 받으러 왔다가 입원까지 하게 되셨으니 이것저것 필요한 것도 챙기고, 집단속도 하고 싶으실 듯 했다. 간호사들도 외출을 허락했다. 그런데 마을로 들어오는 차 안에서 뒷집 할머니는 속내를 드러내셨다.

“문척서 온 사람도 고추 따러 나가 여적 안 들어왔어~ 나도 고추 따러 가야 혀. 고추 땜시 애가 터져 더 못 있겄어.”

집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는 밭으로 가셨다. 하필 고추나무에는 빨간 고추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할머니는 고추가 이렇게나 익었는데 따주지 않으면 큰일이 난다며, 농사지은 걸 버리고 갈 수 없다며 다음 날도 새벽같이 밭으로 가셨다. 잠깐 외출 허락을 받아 나왔으니 오전 중에 병원에 다시 가셔야 한다고, 병원에서 난리 난다고 아무리 겁을 주고 화를 내도 내 말은 들은 채도 않으셨다. “내 농사고, 내 일이여. 걱정하지 말고 가서 일 혀. 니 밭 고추 따러 가!”

고추를 같이 따려고 해도 할머니는 자신의 고추에 손도 못 대게 하셨다. 무엇보다 고추밭은 할머니 신체에 최적화되어 있었다. 나는 몸을 웅크리고 고랑 사이에 앉아 있기도 힘들었다. 나는 딴 고추를 리어카에 실어 집으로 옮기는 일과 1시간에 한 번씩 물과 간식을 챙겨드리는 일 밖에 할 수 없었다.

괜히 할머니 외출을 도운 것 같아 후회가 몰려왔다. 결국 병원에서 할머니를 찾아 서울에 있는 아드님에게 전화를 했고, 할머니 상태를 알게 된 자녀분들의 성화에 못 이겨 할머니는 병원으로 향하셨다. 고추 따는 일은 다 마치신 뒤였다. 병실에 도착하자 할머니는 결의에 찬 표정으로 한 마디 하셨다. “고추 다 땄으니, 이틀은 곯차야 써. 병원서 싹 낫고 나가서 닦아 몰르믄 딱 맞겄다!"

할머니들은 늘 하던 대로, 농약방에서 하라는 대로 농사를 짓는다고 생각했었다. 할머니들을 농민으로서 전문성이 있는 존재들이라 여기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처음으로 판매를 목표로 고추 농사를 지으며 만나게 되는 할머니들에게서 농부의 프로페셔널리즘을 발견한다. 늘 하던 대로 반복하기 보단, 더 좋은 작물을 보면 궁금해 하고 배우고 싶어 한다. 농작물에 필요한 단계별 작업 시기를 정확히 안다. 어떤 상황에서도, 심지어 몸이 아파도 필요한 작업이 있을 땐 그 일을 해 낸다. 내 작물에 대한 책임은 내가 진다는 의식과 작물을 자식처럼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가득하다.

길게는 60년 넘게 농사를 짓고 그 결과물을 판매하고 살았을 그녀들에게 프로페셔널리즘이 없을 리 없다. 그 전문성을 제대로 생각해 보지 않은 내가 바보였다. 뒷집 할머니가 퇴원하시면, 맛있고 때깔 좋게 고추를 말려 보관하는 법을 배우러 가야겠다.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국농어민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