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아나 청년농부·전남 구례

[한국농어민신문]

“여기 뭐 파는 가게에요?” 공방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들이 묻곤 한다. “여긴 농산물 공방이에요. 소량의 제철 농산물을 팔기도 하고, 농산물 가공품도 팔아요. 간단한 요깃거리도 있구요.” 우리의 대답에 사람들은 “농산물 공방이요? 그런 것도 있어요?” 라고 신기해한다.

읍내에 작은 상가를 구해 오랜 시간을 들여 직접 리모델링 공사를 하고 문을 연지 6개월이 됐다. 3개월도 못 버틸 줄 알았는데 6개월을 버티고 나니, 이젠 정말 장사를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혼자선 힘들었을지 모른다. 비슷한 방식으로 살고자 하는, 비슷한 시기 구례로 이주한 언니와 공유하는 공간이라 가능했다. 우리는 읍내에서 주 3일 오픈하는 농산물 공방을 운영 중이다. 

농부로 살고자 했는데, 장사를 시작하게 됐다. 대부분의 농민이 농산물을 팔아서 먹고 사니까, 농사는 곧 장사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모두가 나처럼 판매용 공간을 갖추진 않는다. 장사를 하러 주 3일 공방으로 출근하게 된 까닭은 지금의 형태로 계속 농사를 지으며 살기 위한 나름의 강구책이다.

"무슨 농사지어요?" 주 작물이 무엇이냐는 의미의 이 질문에 대답해야 할 때, 나는 그럴 수가 없다. 다품종 소량 생산 농사를 짓기 때문이다. 내가 다품종 농사를 짓는 근본적인 이유는 가능한 자급하는 삶을 살고자 농촌으로 왔기 때문이다. 자급률이 높은 삶을 위해 농사는 기초라 생각했고, 농사가 재미있어 차츰 늘려 왔다. 그렇지만 농사를 지으면서, 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돈을 벌려면 주 작물을 정하고 대량으로 재배해야 가능한 것이 정설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나는 작년 4월부터 10월까지 200평 노지에 고추 700주를 심었다. 고춧가루를 팔아 250만원 정도를 벌었지만, 모종, 천연 약재 재료, 농자재, 농지 임대료 등의 생산비를 빼고 나니 200만원도 안 되는 매출이었다. 200만원도 안 되는 이익으로 생활비를 감당할 순 없다. 단순히 계산하면 적어도 고추 농사를 10배는 확대해야 연 2000만원의 순수익이 발생한다.

그러기에 내겐 문제점이 있다. 나처럼 농촌으로 갓 이주했고, 돈이 없는 사람은 대규모의 농지를 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200평의 10배면 2000평이다. 2000평의 땅을 한 덩어리로 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고, 200~300평씩 여기저기 구한다고 한들 귀농 새내기가 10곳을 찾기란 쉽지 않다. 거기다 200평의 10배가 되면, 두 명이 농사짓기란 불가능하다. 기계들을 갖춰야 하고 필요에 따라 인력도 써야한다.

언젠가 나도 돈이 많아지고, 농사 기술이 쌓이고, 넓은 땅이 생기면... 한두 가지 작물로 소득을 올리는 농사를 짓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내 성향이나 삶의 방식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미래에도 그렇게 되긴 어려울지 모른다. 그렇다면 다양한 작물을 소량으로 키우는 농사로는 돈을 벌 수 없을까? 돈도 좀 필요하고, 수확물은 나눠 먹고도 많은데... 어쩌지?

그리하여 장사를 하기로 했다. 농사짓거나 산과 들에서 채집한 농산물이 일반 농부들만큼 많은 양이 아니기 때문에 농산물 시장으로 수매를 넘기거나, G마켓이나 옥션같은 온라인 쇼핑몰에서 팔수가 없다. 그래서 소량의 제철 농산물과 그를 활용한 페스토, 피클, 말랭이, 청, 당절임 등의 가공품을 만들어 상품화 했다. 상품의 특성상 구례를 방문한 관광객이나 지역 농산물을 찾는 주민을 예상 고객으로 잡았다.

처음부터 소량의 농산물과 가공품만으로는 알려지기가 어려울 듯해서, 이를 활용한 간편식도 제공한다. 샐러드와 산나물밥이 중심이 되는 간편식을 먹으러 온 손님들이 그 음식에 쓰인 식재료들을 사가는 모델을 상상하고 있다.

내 농사 방식은 여전히 충고를 듣는다. 뭔가 하나의 특정 농산물을 생산하는 농가일 때 고객들에게 선명한 인상을 남기고, 농사가 효율적이고, 소득도 높일 수 있다는 내용이 중심을 이룬다. 이 충고에 동의한다. 그러나 나는 한두 가지 작물을 대규모로 지어 판매하는 일반적인 농사 방식이 여건상 불가능하고, 성격에 맞질 않으니 다른 대책이 필요한 것이다.

공방을 찾아오는 손님이 없는 오후. 힘이 되는 책을 펴 놓고 좀 더 도전 해 볼 필요가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타라북스’는 핸드메이드로 그림책을 만드는 인도의 한 출판사다. 스무 명의 직원이 전 세계에서 들어오는 주문에 맞춰 한 권 한 권 아날로그 방식으로 책을 만든다. 20년 넘게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켜가는 작지만 세계적인 이 출판사의 이야기를 담은 책의 제목은 <우리는 작게 존재 합니다>.

자본주의 논리에서 벗어난 방식처럼 보이지만, ‘타라북스’는 자신들이 가장 하고픈 방식으로 책을 만들어 왔다. 나도 소품종 다량 생산 농산물이 아닌, 다품종 소량 생산 농산물로 작지만 원하는 방식으로 존재에 성공할 수 있을까? 20년은커녕 2년도 안 해 봤으니, 우선 반은 농사꾼 반은 장사꾼으로 살아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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