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 이아나 청년농부·전남 구례

[한국농어민신문] 

“어이! 나 내일 꼬사리 하러 산에 갈끈데, 따라 갈랑가?” 귀가 번쩍 열린다. 조금도 지체 않고, 뒷집할머니에게 답했다. “네네 가요 어머니! 내일 아침에 어머니네로 건너갈게요!”

내가 사는 마을은 산자락에 있다. 마을 어른들은 논·밭농사도 짓지만 밤나무, 감나무를 심어 산농사도 지어 오고 있다. 특히 4월 초는 이른 아침부터 산으로 향하는 시기다. 농사라기 보단, 채취를 통해 수확물을 얻기 위해 봄산으로 간다.

이사 와서 첫 4월, 아직 논과 밭에 일이 많지 않은 시기인데 이른 아침부터 사륜오토바이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사륜오토바이 소리는 동네 할머니들의 이동을 의미한다). 낮 시간에는 마을이 텅 빈 듯 조용했다. ‘밭에도 안 계시는데 다들 어디 가신거지?’ 나의 궁금증은 늦은 오후 집집마다 아궁이에 불이 붙고, 다음 날 마당에 펼쳐진 고사리를 보며 풀렸다.

다음해 4월, 산자락에서 채취한 고사리는 돈 사기 좋은 작물이란 것을 알았다. 무 뽑아 오시다 나를 만나면 무를 안겨 주시고, 우리 집 마당에 배추를 한 아름 두고 가기도 하는 할머니들이 고사리는 나눔 하지 않으셨다. 고사리는 수확물이 없는 초봄, 살림에 큰 도움이 되는 환금성 작물이었기 때문이다. 아무 산에서 고사리를 끊다가 걸리면 도둑 취급 받기 딱 좋았고, 고사리 채집에 초대 받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읍에서 공동운영하는 농산물가공공방에서 매 주 목, 금, 토요일은 간편식을 조금씩 팔고 있다. 그때그때 많이 생산된 농산물을 최대한 활용한 간편식을 만들고자 하지만, 매주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기는 어렵다. 메뉴를 몇 가지 정해 놓고, 그 메뉴에 들어가는 속재료들을 제철에 맞춰 조금씩 바꾸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메뉴 중에 개인적으로 가장 주력하는 것은 ‘연하반밥’이다. 국내 최초로 지리산 등반 안내지도를 만들었던 구례 첫 산악회 ‘연하반’에서 이름 딴 이 메뉴는 산나물을 활용한 조각밥이다. 이 메뉴를 위해서 가능한 직접 채취할 수 있는 나물들은 많이 수확해 두려 애쓴다. 우리 밭에 많은 냉이, 쑥부쟁이, 달래, 머위, 엄나무 등이 그렇다. 하지만 내가 도저히 수확할 수 없는 나물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수확되는지 잘 아는 동네 어르신들로부터 산다.

지난 해 이맘때에 뒷집 할머니에게 취나물을 샀고, 고사리는 집주인 어르신으로부터 샀다. 내가 먹을 양 이상으로 돈 주고 나물을 사는 것이 이상했던 뒷집 할머니는 그 이용처를 물으셨다. 할머니는 내가 읍에서 장사를 시작했고, 그 탓에 내게 산나물은 많을수록 유용하단 것을 알게 되셨다. 그래서였을까? 뒷집 할머니는 처음으로 내게 함께 고사리 끊으러 가자 연락하신 것이다.

비가 온 다음 날 아침, 할머니의 사륜오토바이 뒤에 탄 채 산으로 향했다. 고사리를 잔뜩 끊어올 생각에 신이 났던 나는 도착한 산 입구에서 깜짝 놀랐다. 지금까지 가 본 고사리밭들과는 차원이 달랐기 때문이다. 예초는 전혀 안 되어 있고, 길도 없는 산이었다. “여기는 꼬사리 밭이 아니여. 기냥 지나 올라가믄 하나도 못 햐. 똘래똘래 보믄서 올라가잉~” 경사도가 45도는 될 듯한 산자락의 덤불 속으로 들어가시는 할머니 뒤를 따랐다.

할머니는 내가 할머니 뒤만 따라가면 고사리를 하나도 못 끊는다며, 다른 방향으로 가라고 명령하셨다. 어디에 고사리가 있는지 전혀 알 수 없고, 가시나무 덤불을 해치고 앞으로 한 발 나아가기조차 어려워 어정쩡하게 서 있는 날 향해 할머니는 멀리서도 “그 발아래 굵은 놈 있구먼, 안 보여? 똘래똘래 보랑께!”라고 소리치셨다.

처음 듣는 사투리 ‘똘래똘래’가 자세히, 꼼꼼히 라는 의미임을 알고도, 고사리 하나를 찾는데 한참이 걸렸다. 아무리 똘래똘래 보아도 어깨에 두른 큰 자루가 무색하게, 손에 한 줌 모으기가 어려웠다. 바위틈에, 나뭇잎 속에, 스러진 나무 둥치 옆으로 빼꼼이 고개 내민 고사리 하나를 보게 될 때 마다 몹시 반가웠다. 점차 내 눈이 똘래똘래 고사리를 찾는 능력이 생겨나는 듯 했다.

길이 없는 야산이라 고사리를 끊다가도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길을 찾아야 할 때가 많았다. 그럴 때면 나는 할머니를 찾아보곤 했다. 할머니의 자루는 차오르는 게 보였다. 늘 수술한 무릎이 아프다던 할머니였는데, 그런 말 한 적 없다는 듯 미끄러운 산기슭에서 손과 발을 재빠르게 움직이셨다. 할머니의 몸이 말해주고 있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가파르고 험난한 산에서 이런 시간을 보내 오셨는지를. 산에서 움직이는 할머니를 자세히 보고 있으니, 동네에서 뵐 때와는 또 다른 생명력이 강하게 느껴졌다.

내가 할머니 곁으로 다가갔을 때, 고사리 얘기만 하던 할머니가 말씀하신다. “이녁(당신)은 어쨌든동 잘 살긋어. 내가 뭘 하자 할 때마다 다 따라 하는걸 보믄 말이여. 뭐든 해 보는 걸 보면 잘 살긋어.” 목이 콱 멨다. 고사리 밭에서 갑자기 듣게 된 축복의 말에 감격해서라기 보단, 이웃해 살아 온 시간이 3년이 훌쩍 지나고서야 이 말을 듣게 된 탓이다.

할머니는 그동안 나를 똘래똘래 보아 오신 것이다. 그리고 그 결론으로 잘 살겠다고 말씀해 주신다. 정말 잘 살 수 있을 것만 같다. 고사리나물 한 접시 먹지 않고도, 기운찬 봄기운을 가득 얻은, 잊지 못할 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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