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아나 청년농부·전남 구례

[한국농어민신문]

“끝으로 귀농하려는 청년들에게 한 마디씩 하면서 마무리하죠!” 잠시 적막이 흘렀다. 이전까지는 질문에 바로 누군가 먼저 입을 열었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대답을 했는데, 마지막 질문은 달랐다. 대답을 망설이는 네 명은 서로 눈치를 보다 웃음이 터졌고, 간담회를 진행하는 기자님이 지목을 하면서 겨우 마지막 답변이 기록되기 시작했다.    

농어민신문 창간 40주년을 맞아 <농촌2030 그들이 사는 법>의 필자 간담회를 하고자 한다는 연락을 받고 난 몹시 설렜다. 코로나19도 있고 농번기이기도 해서 인터넷 대화방에서 진행할 수도 있다고 담당 기자님은 우리를 배려했지만, 네 명의 필진 모두 직접 만나길 원했다. 구례, 순창, 영암 그리고 합천에 살고 있는 네 명이 중간 지점에서 만나 이야기를 하려면 오롯이 하루를 써야 했지만 만남은 이뤄졌다.

농어민신문에 연재를 시작한 뒤, 원고 마감일이 다가 오면 나는 다른 세 명의 필진이 지난 한 달간 쓴 글을 다시 확인해 왔다. 코너를 채우는 네 명 중 한 명이니, 전체적인 흐름을 알아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다른 필진들의 글을 읽지 않으면, 큰 실수를 할 뻔해서 확인 과정을 거친다. 이번 달에 쓰려고 준비하던 주제에 대해 이미 다른 필진이 써 버린 경우가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다.    

다른 쓸 거리를 찾아야하는 상황은 당황스럽지만, 한 편으로 기분이 좋다. 나와 비슷한 시선으로 농촌을 바라보고,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큰 위로가 된다. 다른 지역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농촌에서 살고 있는 이들이 쓴 글에서 마치 내 글을 옮겨 놓은 것 같은 표현이나 생각들을 자주 본다. 글로만 만나왔는데, 실제로 본다니 반가운 친구들을 만날 때처럼 설레며 기다려졌다.     

간담회의 여운은 길게 남았다. 주어진 질문에 답변을 하는 것만으로도 바빴기에 개인적인 수다는 거의 나누질 못했다. 그럼에도 밥 한 끼 함께 먹으며,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가는 이야기의 일부를 나눈 시간이 내게 왜 이토록 긴 여운을 남길까 생각해봤다.

아무 연고 없는 구례로 이사 왔을 때, 내가 속할 수 있는 관계망은 없었다. 우리 면 청년회는 만 50세까지 활동이 가능하지만, 여성은 가입이 불가능하다 했다. ‘청년회’라 이름 붙은 모임이라면 나이 제한을 둘 것이라 생각했는데, 엉뚱하게 성별 제한이 있었다. 여자면 부녀회에 가입하라고 했다. 그런데 결혼한 여성들의 모임체인 부녀회는 마을 행사가 있을 때만 모여 주방 일을 전담했다. 내가 속할 수 있는, 속하고 싶은 모임들이 아니었다.      

다행히 청년창업농으로 선정되고 난 뒤, 구례에서 농사짓는 청년들 속에 포함됐다. 청년창업농 모임체에서 나는 구례 토박이 회원들에게 구례에 대해, 농사에 대해 배운다. 공동으로 새 브랜드를 만들기도 하고, 지역 사회를 위한 봉사 활동을 찾아 함께 한다. 이렇게 또래 농부 친구들이 생겼는데, 나는 왜 다른 필진들과의 만남이 특별히 좋았을까?    

청년회나 부녀회와 달리 지역 내 또래 농부들과의 모임은 재미있고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이 농부 친구들은 나와 차이점이 꽤 있다. 이들은 주로 구례 출신으로 대를 이어 농사를 짓고 있다. 대부분이 대규모 관행농이다. 그러다 보니 아무 밑천 없이 구례에 와서 여기저기 땅을 임대 해 농사를 짓는 내 상황을 가늠하기 힘들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이들에게 나의 농사는 이해하거나 인정하기 어렵다. 나는 자연농법은 아니지만 제초제, 농약,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 꼭 필요할 때만 최소한의 공장 퇴비를 쓰고, 여러 가지 작물을 소량으로 재배하고 있다. 그래서 ‘사서 고생한다’는 소리를 자주 듣고, 수확물의 양과 크기가 남들에 비해 부족할 때가 많다. 이렇듯 나와 처지나 농사법이 다른 농부들 속에서 난 가끔 외롭다.

나와 비슷한 처지, 비슷한 생각과 가치를 공유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은 일상에서 큰 위로와 힘이 된다. 도시건 농촌이건 마찬가지다. 나 같이 도시를 떠나 아무 연고 없는 농촌으로 이주한 이들이 여기 저기 흩어져 살고 있을 것이다. 이들은 농촌에서 어떻게 외로움을 극복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농촌에도 여러 가지 공동체나 모임체가 있다. 하지만 도시에 비해 절대적으로 숫자가 적고, 기존의 모임체들은 원주민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땅도 없고 집도 없기에 마을에 정착한 주민이라 인식되기 힘든 청년 이주자가 함께 할 공간은 많지 않다. 농촌으로 이주를 선택한 청년들 각자가 헤쳐 나가야 할 몫이 있다. 하지만 일상에 위로와 힘이 될 친구들을 찾기 힘든 환경은 그 몫을 무겁고 힘든 개인의 과제로만 여기게 한다.

각자가 살아가는 지역 내에 마음 맞는 친구들이 있으면 좋겠지만, 없을지도 모른다. 물리적으로는 떨어져 있지만, 농촌으로 이주한 청년들이 함께 할 수 있는 느슨한 연대체라도 다양하게 생기면 어떨까? 마치 내게 <농촌2030 그들이 사는 법>이라는 코너의 필진들이 생긴 것처럼. 그리고 조금 먼저 농촌으로 이주한 나는 다음에 우리 지역으로 올 그 누군가를 기다리며 준비를 해야겠다. 환대하며 그 마음을 이해하는 친구가 될 준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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