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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2030, 그들이 사는 법] 고집과 타협 사이에서 농사짓기

[한국농어민신문]

이아나 청년농부·전남 구례

‘농약, 제초제, 화학비료를 쓰지 않는다. 비닐 멀칭 하지 않는다. 토종 종자 확대에 참여한다.’ 자급을 위한 텃밭 농사를 짓는 동안에는 이 원칙을 지켜왔다. 그런데 땅을 빌려 농사를 시작하고 보니 내 원칙만 고집하기가 쉽지 않다. 남들과 다르게 농사를 지으면 땅주인들이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농촌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은 내게 어디 사는지, 언제 귀농했는지를 물으며 대화를 시작한다. 그리고 나면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그래서 무슨 농사 짓는다요?” 아직 농사를 짓지 않는다거나, 자급용 텃밭 농사 정도 한다고 당당하게 말해도 될텐데… 나는 이상하게 우물쭈물했고, 그래서 속상했다. 농부가 되고픈 내 욕망이 꽤 큰 듯 했다.

나는 지난해 군청에서 계약직으로 일했다. 이사 후 바로 농사를 시작하기에 돈도 땅도 없었고, 겁도 났다. 그래도 내가 먹을 것은 가능한 자급자족하고자 농촌으로 온 초심은 버릴 수 없었다. 인적이 드문 동네 뒷산의 밭을 빌려 스무 가지가 넘는 작물들을 조금씩 키워 먹으며 연습을 했다.

올해는 농사에 좀 더 집중하고자 아르바이트를 구하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겠다고 결심은 했지만, 무슨 농사를 어떻게 지어야 할지 막막했다. 옆 동네 귀농인 부부가 무농약 고추에 도전하는데, 같이 해 보자며 권했다. 고추는 비교적 가격이 좋은 밭작물이고, 더구나 무농약 고추라면 주변 도시민들에게 잘 팔릴 듯 했다. 고추를 무농약으로 키우기란 무척 어렵다는 것을 잘 알지만, 작년에 농약 한 번 안치고 꽤 많은 고추를 수확한 경험이 있어서일까? 고추 농사는 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밭을 빌리는 일부터 쉽지 않았다. 목표량의 고추를 심으려면 400평 정도가 필요한데, 그 크기의 좋은 땅을 내가 빌리긴 어려웠다. 결국 옆 마을 한 가운데 있는 밭 150평과 계단식으로 조각 나 있어 기계를 쓰기 어려운 논 300평을 나눠 빌렸다. 올해는 누가 무슨 농사짓느냐 물으면 당당하게 답할 수 있게 된 것이 좋았다. 농사를 지으며 얼마나 많은 갈등에 직면하게 될지 상상도 못한 채 좋아만 했다.

4월, 주변에서 퇴비를 뿌리라는 충고가 들려왔다. 자급자족용 텃밭에는 공장에서 만든 퇴비를 뿌린 적이 없었다. 퇴비가 꼭 필요한 작물에만 소금기 없는 음식물 쓰레기, 회분, 쌀겨, EM액 등으로 직접 만든 퇴비를 주는 정도였다. 하지만 대량으로 키울 고추밭에 뿌릴 만큼 많은 퇴비를 만들어 두지 못했다. 나는 퇴비 포대에 적힌 적정량 기준 만큼만 뿌리기로 했다.

그런데 내가 퇴비를 뿌려 놓은 밭을 보고 지나가는 어르신들 마다 한 마디씩 하셨다. “이렇게만 뿌리믄 아무 소용없어! 퇴비를 더 팍팍 넣어!” 작물이 잘 자라기 위해 적절한 퇴비는 필요하다. 하지만 많은 양을 준다고 무조건 작물에 이로운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퇴비도 화학비료처럼 땅에 영향을 주니 과용될 경우 토양 오염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기준량보다 5~10배씩이나 더 뿌리라는 말을 들을 수가 없어서 내 고집을 꺾지 않았다. 덕분에 며칠간 끊임없이 잔소리를 들었다.

두둑 만드는 작업은 기계가 있는 이웃이 도와줬다. 삽과 호미로 직접 두둑을 만들어 왔는데, 이번엔 그럴 수가 없었다. 관리기를 이용하니 금방 두둑이 만들어졌다. 이웃은 관리기로 비닐 멀칭까지 해 주신다. 다시 마음 속 갈등이 시작됐다. ‘멀칭도 할 거야? 비닐 멀칭 안하면서 농사짓겠다고 약속하지 않았어?’ 농사에 대한 약속 중에 ‘비닐 멀칭을 하지 않기’도 있었다. ‘고맙게 도와주시는데 멀칭은 하지 마세요! 할 거야? 사람들이 볼 때 마다 왜 멀칭 안했냐 할거야~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게 농사짓자.’ 이번에는 타협의 소리가 승리했다.

2015년 삼선재단이 20~30대 귀농자와 귀농희망자들에게 농촌으로 이주를 생각하게 된 이유를 물었을 때, ‘생태적 가치를 추구하고 싶어서’가 두 번째로 많은 답변이었다. 나는 엄청난 환경보호론자는 아니다. 하지만 나 역시 농촌으로 이주를 할 때 이 생태적 가치가 중요한 부분이었다. 농사에도 나만의 원칙을 정했었다. ‘농약, 제초제, 화학비료를 쓰지 않는다. 비닐 멀칭 하지 않는다. 토종 종자 확대에 참여한다.’ 등등이었다. 자급을 위한 텃밭 농사를 짓는 동안에는 이 원칙을 지켜왔다. 더군다나 텃밭은 인적이 드문 곳에 있어 사람들 눈에 잘 띄질 않아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땅을 빌려 농사를 시작하고 보니 내 원칙만 고집하기가 쉽지 않다. 남들과 다르게 농사를 지으면 땅주인들이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심지어 1년간 빌려 준 땅 임차인이 제초제를 뿌리지 않아 풀이 많다며, 작물을 다 수확하지도 않았는데 10개월만에 쫓아내는 땅주인도 봤다.

땅주인 눈치, 이웃들 잔소리에 나는 농사를 지으며 끊임없이 갈등한다. 고집과 타협 사이에 서 있다. ‘내 땅도 아니고 일 년 후에 쫓겨날지 모르는데 그냥 대충 하자~’ 싶다가도, ‘자연은 모두 연결된다’라는 대명제가 떠오른다. 결국 흙 속 비닐 조각을 줍고, 밭 구석에 쌓여 있는 폐비닐을 수거한다.

“고추 잉길 때 약 한 숟가락씩 넣어줘야 혀~ 농약방 가서 사와이!” 고추 모종을 옮겨 심는 내게 동네 할머니들은 약부터 넣으라고 말씀 하신다. 고추는 농약을 자주 하는 작물로도 유명하다. 앞으로는 농약과 제초제 치라는 소리를 몇 달간 듣게 될 듯하다. 올 한 해 나는 얼마나 내 고집을 지키고, 또 얼마나 타협을 하게 될까? 농사는 끊임없이 나를 도전하게 하는 흥미진진한 매력덩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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