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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2030, 그들이 사는 법] #힘내라구례 #함께해요구례이아나 청년농부·전남 구례

[한국농어민신문]

머리로만 알고 있던 자연 재해와 기후 위기의 위력과 공포는 우리의 삶에 직격탄을 날렸다. 그리고 ‘이런 기후 위기 시대에 농사짓는 이의 미래는 어떨까? 농부가 기후 위기를 초래하는 부분은 없을까? 어떤 노력을 해야 지속가능한 농사를 지을 수 있을까?’ 와 같은 질문들이 내 앞에 숙제처럼 던져졌다.

“걱정하지 말어~ 내가 여기로 시집와 살믄서 이 신작로에 물이 찬 건 마산댁 시아부지 상여 나가던 날 딱 한 번 뿐이었응께. 그 때도 길에 물이 찰랑하는 정도였어잉.” 오전 11시. 할머니가 신작로라 지칭한 마을 앞 도로에 물이 들어차기 시작하자 사람들이 마을 어귀에 나와 있었다.

우리집은 마을의 가장 아랫집이지만 도로보다 2m 이상 높은 위치에 있다. 할머니들은 신작로에 물이 찼던 게 평생 한 번이고, 우리집에 물이 차려면 도로에 키보다 훨씬 높이 물이 차야 하는데 그런 일은 없을 거라 확신하셨다.

하지만 나는 이미 겁에 질려 있었다. 오전 7시에 마을 건너편 논밭에 물이 차기 시작해 잠시 후 우리 고추밭이 고스란히 물에 잠기는 걸 내다봤다. 11시에는 논밭을 넘어 도로에까지 물이 들어오니, 이 속도면 도로보다 2m 이상 높은 집에 물이 차는 건 반나절이 걸리지 않는다는 계산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비는 그칠 기세 없이 계속 퍼붓고 있었다.

2시간 후, 계산 보다 빨리 도로 전봇대의 아랫부분 1m가 보이지 않았다. 평소 마당에서 보이던 풍광 속 모든 것들을 물이 지워 버린 후였다. 나는 이삿짐과 다른, 평생 한 번도 싸 본적 없는 피난짐을 싸기 시작했다.

평생 잊지 못할 2020년 8월 8일엔 내 밭, 내 집 밖에 보이질 않았다. 마을 앞 도로에 물이 차서 어디로도 갈 수 없고, 통신사 기지국이 침수되어 전화가 되질 않다보니 그야말로 고립된 탓이기도 했지만, 내 앞에 닥친 낯설기만 한 상황을 마주하느라 남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물이 빠진 다음 날부터 들려오는 주변 사람들의 피해 소식과 동네 밖으로 나가서 보는 폭우가 남긴 흔적은 참담했다. 내가 입은 수해는 감사함을 넘어 미안할 정도였다. 특히 뉴스에도 나오지 않고, 자원 봉사자들의 손길도 닿지 않는 사각지대 수해민들 상황 앞에서 더욱 그랬다.

그 날 이 후 나는 SNS에서 ‘#구례 홍수’나 ‘#힘내라 구례’와 같은 검색어의 게시물들을 확인했다. 뉴스나 군청의 공식 보고를 통해서는 볼 수 없는, 수해를 입었지만 잘 보이지 않는 이웃들의 소식은 개인 SNS를 통해서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읍내의 오래된 골목들에는 작고 낡은 집에 평생을 의지해 살아 온 이들이 있다. 대체로 재난지원 신청이나 자원봉사자 신청조차 할 줄도 모르는 노인층이 지키고 있는 골목이다. 이들의 피해 규모를 피해액으로 환산하면 시장 상가나 대규모 농가만큼 크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들의 삶에 미친 이번 비의 타격이 결코 작지 않다. 수해의 정도는 절대적 액수로 측정할 수 없는 것이다. 다행히 SNS로 연결된 지역민들이 한 주민 조직을 통해 긴급한 부분을 돕고 있다.

하지만 더욱 눈에 띄지 않는 이들, SNS에 조차도 드러나지 않는 이들도 있다. 이번 폭우로 시설재배 농가들의 피해가 특히 컸다. 시설 하우스 밀집 지역의 수해 흔적은 차마 볼 수가 없을 정도였다. 농부들 걱정을 한참 하다가, 하우스 안 컨테이너들이 처참히 부서진 것이 보였다. 컨테이너는 시설 재배 농가들이 고용한 이주노동자들의 생활공간인 경우가 많다. 이주노동자들 역시 집이 사라졌는데 피해를 호소하거나 지원을 요청할 곳조차 없다. 도리어 고용된 농가에서 쫓겨나진 않을까, 앞으로 월급을 못 받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며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을게 뻔했다.

농가들 입장에서도 시설물을 복구해 새로 농사를 시작하기 까지도 멀게만 느껴지는데, 그 긴 시간 동안 그들의 월급을 책임질 게 막막할 것이다. 그렇다고 요즘같이 일손을 구하기 힘든 시기, 곧 후회할 선택이라 이들을 해고할 수도 없을 테다. 고용주가 위기에 처했고 자신의 일터이자 주거 공간이 사라진 이주노동자들은 수재민이지만 전혀 보이지 않는 이들이다.

이번 폭우를 통해 내가 이주한 지역사회의 실체를 다각적으로 알게 됐다. 연일 뉴스에 보도된 지붕 위의 소들 덕분에 축사가 그리 많은지 몰랐던 강변 마을을 알았고, 잘 정비되어 있다고 생각했던 읍내의 일부 지역은 여전히 주거 개선이 필요한 가구가 많은 것을 알았고, 건강한 자발적 주민 모임과 개인들이 있음을 알았다. 무엇보다 재난에 의해 드러난 혹은 여전히 드러나지 않은 농촌 공간 안의 사회적 약자들은 누가 돌보는지 계속 관심을 기울여야겠단 생각을 한다.

머리로만 알고 있던 자연 재해와 기후 위기의 위력과 공포는 우리의 삶에 직격탄을 날렸다. 그리고 ‘이런 기후 위기 시대에 농사짓는 이의 미래는 어떨까? 농부가 기후 위기를 초래하는 부분은 없을까? 어떤 노력을 해야 지속가능한 농사를 지을 수 있을까?’ 와 같은 질문들이 내 앞에 숙제처럼 던져졌다.

팔십이 넘은 할머니도 평생 경험해 보지 못했다는 이번 수해의 경험을 나와 이웃들은 잊지 못할 것이다. 이 경험을 쉽게 잊지 않은 채 힘을 내어 복구 작업을 잘 마치고 나면, 우리 구례 군민들이 서로의 이웃을 돌보듯 기후변화 위기에 대항하는 실천들로 일상을 채워가길 바란다. 그 새로운 길에 #함께해요 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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