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아나 청년농부·전남 구례

[한국농어민신문]

“농민 인구 5%도 무너지고 있잖아요. 농민들이 식량 주권을 지키고, 자연 경관을 보전하는 중요한 사람들이라는 걸 왜 우리 사회는 모를까요? 유럽 사회가 농민을 대하는 모습을 좀 배워야 해요 정말.” 국제개발 단체에서 오랫동안 아프리카 농업 개발 사업을 해 온 후배가 대화중에 한 말이다. 국제개발 분야는 농업과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저개발국가의 개발을 위한 원조 사업에서 농업은 핵심적이다. 그러다 보니 그녀는 자연스레 우리나라 농업에도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했다.

그녀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농민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우리사회를 비판했다. 나 역시 도시에 살 때는 이런 문제에 늘 농민 편에 서곤 했었다. 그런데 농촌에 살게 된 지금의 나는 이 고마운 비판에 크게 동조하질 못했다. 마음속에 뭔가 망설여지는 부분이 생긴 것이다. 집으로 돌아와 내가 왜 적극적으로 동의할 수 없었는지 돌아봤다. 그녀의 비판을 들으며 나는 마음속으로 ‘농민은 정말 환경에 이로운 역할을 하는 존재일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렇다’라고 대답할 확신이 없었다.

구례로 오기 전, 나는 전국귀농운동본부가 주관하는 농촌생활학교에서 6주간 교육을 받았다. 이 교육을 통해 생태적 가치를 추구하며 귀농귀촌을 하지만, 그 가치를 지키며 살기란 쉽지 않다는 사실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살면서 마주하는 현실은 내게 늘 도전이다.

이사 와서 첫 몇 달은 일상으로 쓰레기를 태우는 마을 어르신들을 바라보며 어쩔 줄 몰랐다. 일반쓰레기와 재활용품을 각 봉투에 담아 마을 어귀에 모으는 경우도 있지만, 우리 마을에서는 보기 힘들다. 집에서 나온 것이든, 마을 회관에서 나온 것이든 모든 생활 쓰레기를 빈 농터에서 태우기 때문이다. 돈이 되는 빈병이 아닌 것들은 재활용하는 경우도 드물다. 이런 생활적인 문제들은 농사를 짓는 과정에서 발견되는 것들에 비하면 그나마 작은 부분이다.

한 해 농사의 시작으로 바쁜 시기다. 이 때 농민들이 가장 많이 하는 작업은 비닐로 된 비료 포대를 뜯어 땅에 뿌리는 것과 잡초를 방지하고 온·습도를 유지하는 비닐을 멀칭하는 것이다. 우리 마을 입구에는 몇 개의 마을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폐비닐 수거장이 있다. 200평에 적어도 50포 넘는 비료를 뿌리고, 비닐 멀칭을 하지 않은 밭은 찾기 힘들다. 그러니 이 시기 공동 수거장에는 폐비닐이 가득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그 많은 폐비닐은 다 어디에서 어떻게 처리되고 있을까?

현대인은 플라스틱 없이 사는 것을 상상할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농업도 마찬가지다. 비닐하우스, 멀칭, 가축용 사일리지 포장(공룡알이라고도 부른다), 비료 포대와 모종 포트를 비롯한 각종 농자재가 모두 플라스틱의 일종이다. 이렇게 사용된 플라스틱들의 흔적을 나는 호미질 하며 땅 속에서 발견한다. 플라스틱의 도움 없이 농사짓는 것이 이젠 불가능할지 모른다. 사용하지 않을 순 없지만, 줄여나갈 수는 있지 않을까? 사용 후 처리에 대한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까?

플라스틱만이 아니다. 농업이란 본래 자연에서 나온 생산물을 통해 수익을 얻는 업이라지만, 자연이 주는 것 이상을 뽑아내려는 것이 농업이란 사실을 매일 목격한다. 땅의 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각종 농약과 제초제 그리고 엄청난 양의 비료를 뿌린다. 관에서 확대를 권장하는 시설재배는 그 넓은 면적의 보온을 위해 겨우내 기름 난방을 한다. 소비자들 탓이 크지만, 농산물을 과대 포장해 도시로 보낸다. ‘더 많이, 더 크게, 더 빨리’라는 자본주의원리가 농업에서는 자연을 상대로 더 극명하게 돌아가고 있다. 정녕 농민은 환경에 이로운 존재일까?

자연을 그대로 두는 것이 최선은 아니다. 잘 관리하고 활용할 필요가 있다. 때문에 농민의 활동은 생태계 유지, 국토 균형 발전, 경관 보전 등 공적 가치를 이행하는 부분이 있다고 본다. 아프리카 농촌 개발 사업을 하며 농업의 가치를 깨달은 후배는 우리 사회에 이런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것을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이런 공적 역할을 하는 농민 자신이 농사짓는 과정에서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고민하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다.

미세먼지 대란이다. 미세먼지 문제 역시 현대인이 초래한 이상기후 현상과 연결된다. 사람들은 미세먼지 주범을 따지기에 바쁘지만, 사실 편리함과 자본주의적 가치만 추구하는 우리 모두에게 그 책임이 있다. 농민들 역시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더구나 자연에 의탁해 살아가는 농민은 그 책임을 더 무겁게 느껴야 한다고 생각한다. 농민은 환경에 이로운 존재라는 말에 거리낌 없이 동의 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 믿어 본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