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아나 청년농부·전남 구례

[한국농어민신문]  

서울 강남 한 가운데에 도착한 구례 사람들은 몹시 들 떠 있었다. 바람은 차고, 쓸쓸했지만 서울 특유의 초겨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거리에 서자 외국 여행이라도 온 듯, 나도 살짝 설렜다. 쓸쓸한 빌딩 숲이 싫어 떠나왔는데, 사실은 이국적으로 느껴지는 이곳을 그리워했던 건가 스스로에게 자문해 보기도 했다.

강남에 온 까닭은 농촌진흥청이 개최하는 ‘2019년 강소농 대전’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아이디어와 기술력을 토대로 고수익을 올리는 작지만 강한 농가나 농민”을 뜻하는 강소농 양성을 위한 교육은 전국적으로 계속되고 있다. 나는 올 해 구례군 청년 농부들로 구성된 자율모임체에 소속되어 교육과 워크숍을 받아 왔다. 우리 모임체에서는 공동 브랜드를 만들고자 의기투합했고, 최근에는 그 결과물로 ‘반달곰농부’라는 이름의 브랜드가 탄생했다.

코엑스에서 열리는 4일간의 행사에서는 지역별로 부스를 하나씩 운영했다. 각자의 농산물이나 가공품을 도시민이나 농산물 구매 영업자들에게 소개하고 판매했다. 구례군 부스를 우리 자율모임체가 맡기로 했다. 우리는 팀원들 각자의 농산물을 판매하기도 했지만, ‘반달곰농부’라는 공동 브랜드를 홍보하는 일에 힘을 쏟았다. 사람들은 곰 캐릭터로 만들어진 브랜드 로고를 귀여워하기도 하고, 구례에 지리산이 있고, 지리산에 반달곰이 산다는 것을 새롭게 알기도 했다. 

서울에서의 첫 날. 구례에 없는 각양각색의 식당과 상가들, 화려하고 세련된 도심의 모든 것에 들뜨고, 구례 밖 사람들이 우리 브랜드에 관심을 가져 주는 것에 신이 났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지치고 답답해졌다. 상품을 판매하고, 홍보하는 일이 체력적으로 힘든 일이라는 것은 서울에서의 직장 생활을 통해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단순히 체력적으로 힘들어 지치거나 답답한 것이 아니었다. 

서울, 강남, 그리고 코엑스. 뭔가 대한민국의 중심에 있는 듯했다. 중심을 말할 때는 기준이 필요한 법인데, 이때의 기준은 대한민국 자본주의다. 박람회라는 것 자체가 경제 산업의 진흥을 목적으로 온갖 물품을 전시하는 자본주의 행사에서 시작됐다. 강소농대전은 농산물을 판매, 선전하기 위해서만 기획된 행사는 아닐 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람회 형태 속에 진행되는 대전은 자본주의의 근본 특징을 고스란히 품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답답해지고, 지쳐간 이유였다.

돈을 주고 농산물을 사가긴 했지만, 방문자들은 뭔가를 얻어 가기 보단 끊임없이 버려댔다. 부스 운영자들은 응대하는 고객 혹은 방문자를 위해 일회용 컵, 접시, 이쑤시개를 시작으로 포장재와 홍보 전단지 등등을 뿌려 댔다. 손에 닿기만 한 뒤 버려지는 것들로 넘쳐났다. 곳곳에 있는 500ℓ가 넘는 쓰레기통들이 쉴 틈 없이 채워졌다.

‘이 곳의 모든 물건들은 쓰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일까, 버려지기 위해 만들어진 것일까?’ 국민의 먹거리를 책임지고 생태계에 빚지고 사는 농민들이 참여하는 행사이지만, 박람회의 형태 속에 있으니 우리 역시 끊임없이 버리고, 환경을 파괴하는 일에 동참하고 있었다.

구례에서 못 먹었던 음식을 찾아 먹으러 다닌 건 첫날뿐이고, 쇼핑몰에서 새 옷 한 벌 사고자 했던 의욕도 온데간데없었다. 버리고 버리는 사람들 속에서 지쳐버린 내게, 행사 마지막 날 다시 힘을 낼 수 있게 해 준 분이 있었다. 반달곰농부들의 농산물을 구매한 젊은 남성에게 내가 “종이백에 담아드릴까요, 비닐에 담아 드릴까요?”라고 물었더니 “괜찮아요.”라고 했다. 그는 자신의 가방에서 개인 장바구니를 꺼내 물건을 담았다!  

그 순간 나는 상상했다. 친환경 농산물을 홍보하는 농민들이 참여하는 행사인 만큼, 조금이라도 친환경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어떨까? 방문객들이 입장할 때, 전체 행사장용 장바구니를 증정해 각 부스에서는 따로 비닐봉지나 종이백의 사용을 줄인다거나. 입구에서 시식용 컵, 집게, 접시 등을 희망하는 방문자들에게 지급해 행사장 내에서는 개인용으로 하나만 쓴다거나. 농민들은 환경을 고려한 소재나 방식으로 상품을 포장하려고 애쓰고, 그런 노력과 아이디어를 서로 공유하는 장을 만든다거나. 음식이나 농산물 활용 만들기 체험만이 아니라 농민들이 전하는 먹거리와 환경 이야기를 듣거나, 농업이나 환경과 관련된 영화를 보는 체험 프로그램을 기획한다거나. 등등.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달 ‘포용적 자본주의 위원회’와의 대화에서 “쓰고 버리는” 문화에 반대하고, 자본 중심이 아닌 자연과 인간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는 소식을 접했다. 농산물도 자본주의 시장에서 선택되어 팔려야만 농민이 살 수가 있다. 하지만 자연이 파괴되고 나면 농민은 시장에 팔 것 자체가 사라진다. 적어도 농민은 쓰고 버리는 자본주의 문화 속에서 더 예민하게 반응하고 저항해야 하지 않을까...

행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밤. 화엄사 IC를 통과하니 칠흑 같은 어둠 속 작은 동네, 구례가 나타났다. 우리는 차창을 열어 지리산 공기를 들이마셨다. 5일간의 답답했던 몸과 마음이 뻥 뚫렸다. 그렇게 흥분됐던 서울 나들이가 끝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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