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기고ㆍ독자투고
[농촌 2030, 그들이 사는 법] 랩걸(lab girl)이 아닌 밭걸의 즐거운 식물 탐구 생활

[한국농어민신문]

이아나 청년농부·전남 구례

나는 요즘 매일같이 잡초와 사투를 벌이며, 정신 수련 중이다. 제거 작업을 하고 난 다음 날, 또 다시 만나게 되는 잡초를 보며 계속 화를 내고 있었다…하지만 나는 결코 잡초를 이길 수 없음을 식물학자가 알려준다. 이 상황이 잡초라는 식물에게는 생존이자 혁명이니 받아들여야 했다.


“서점에서 이 책 보는데 네가 생각났어. 택배로 보낼 테니 시간 날 때 읽어.” 서울에 있는 친구가 책을 한 권 보냈다. 무슨 책이기에 내가 생각났을까 궁금했는데 호프 자런의 <랩걸>이라는 책이었다. 시간 날 때가 없었던 건지, 책은 몇 달간 책상 위에 놓여만 있었다.

며칠째 비가 내렸다. 장마다. 나는 어릴 적부터 비 오는 날을 좋아하지 않았다. 비가 오면 몸이 무겁고, 기분도 좋지 않았다. 그런데 농사를 짓고부터 변했다. 비를 기다리고, 반가워하고, 고마워한다. 농작물에 꼭 필요한 것이기에 비가 좋아졌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비가 오면 그 날은 휴일이 되기 때문이다. 쉬고 싶으면 언제든 쉴 수야 있지만 농번기에 비도 오지 않는 날, 쉬는 것은 쉬어도 쉬는 게 아니다. 하지만 비가 오면 마음 편히 쉴 수 있다. 물론 비가 오기 전, 급한 농사일을 다 마친 상황일 때!

장마라 마음 편히 쉴 수 있게 되니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책에 눈길이 갔다. <랩걸>은 풀브라이트 상을 세 번 수상한 유일한 여성 과학자, 호프 자런이 쓴 책이다. 그녀는 열정적인 자신의 식물 연구의 여정과 삶, 그리고 식물 세계의 일면을 이야기 한다. 책은 흥미로웠다. 하지만 친구가 이 책을 보다 왜 내 생각이 났을까? 나는 과학자도, 식물 연구자도 아닌데?

달리 생각해 보면 친구가 식물학자인 호프 자런에서 농사 초보인 나를 떠올렸을 가능성이 전혀 없진 않다. 언제부턴가 내 관심 소재는 농작물로 완전히 바뀌었다. 친구들은 관심도 없는데, 나는 농작물을 키우며 알게 된 신기한 사실이나 그 놀라운 생명력을 이야기 한다. 사진도 주로 농작물을 찍는다. 발아하는 순간, 눈에 띄는 성장기, 그리고 최종 수확의 단계를 기록한다. 이런 내가 친구에겐 식물학자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하긴 농작물도 모두 식물이니까.

실제로 농사를 짓기 시작한 뒤, 나는 식물도감을 보기 시작했다. 식물도감 같은 종류의 책이 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단 한 번도 펼쳐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요즘은 식물과 관련된 책을 직접 사거나 빌려 본다. 처음에는 농사 초보가 의지할 것은 책뿐이라, 농사와 관련된 책을 봤다. 그런데 ‘십자화과 작물은 연작 피해가 크다’거나, ‘온실가루이병은 가짓과 작물에서 많이 발생한다’와 같은 말들이 이해되질 않았다. 단순히 작물 하나만 볼 것이 아니라 좀 더 넓게, 식물들의 특징과 분류법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농작물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이 생전 처음 식물과 관련된 책까지 읽게 만들었다.

이젠 식물도감 보는 방법도 익숙해졌고, 세상에는 상상치 못한 많은 사람들이 식물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단 것도 알게 됐다. 식물의 세계는 인간의 그것과 닮았다. 호프 자런은 1979년 시트카 버드나무 실험이 식물도 감정이 없지 않다는 것을 입증했다고 한다. 시트카 버드나무 군락 하나가 텐트나방 애벌레들에게 심한 공격을 당해 폐허가 된 일이 있었다. 그런데 2년 후 1~2킬로미터 떨어진 다른 시트카 버드나무 군락의 이파리들을 텐트나방 애벌레에게 먹이자 병이 들었다. 이 연구는 식물이 뿌리에서 뿌리로만 신호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떨어져 있는 식물과도 어떤 신호를 주고받는 것을 보여준다. 예를 들면 휘발성 유기 화합물을 생성하는 것이다. 시트카 버드나무는 애벌레의 공격에 대항하기 위해 독성 물질을 만들었고, 그 물질이 멀리 떨어진 다른 나무들에게 조난 신호로 가 닿았다. 식물은 감정이 없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이 연구를 통해 “어쩌면 (식물) 서로에 대한 감정과 관심은 있어서, 위기가 닥치면 서로를 돌보는 것”이 가능하다고 본다.

이런 흥미로운 식물의 특징을 식물학자는 아니지만 평생 농사를 지은 이들도 일부 알고 있는 것 같다. 농부들이 한 결 같이 하는 말, “농작물은 농사꾼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가 그 경우다. 식물 역시 관심과 애정을 받을 때 잘 자란다는 경험적 지식을 농부들도 가지고 있다.

<랩걸>에서 유난히 내 마음을 사로잡은 구절이 있었다. “살지 않아야 할 곳에서 번창하는 식물이 잡초다. 우리는 잡초의 대담성에 화를 내지는 않는다. 모든 씨앗은 대담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화를 내는 것은 잡초들의 눈부신 성공이다. (중략) 우리가 아무 힘도 없이 그저 입으로만 잡초를 욕해봤자 이 혁명을 멈추지는 못한다.” 나는 요즘 매일같이 잡초와 사투를 벌이며, 정신 수련 중이다. 제거 작업을 하고 난 다음 날, 또 다시 만나게 되는 잡초를 보며 계속 화를 내고 있었다. 욕도 많이 퍼 부었다. 하지만 나는 결코 잡초를 이길 수 없음을 식물학자가 알려준다. 이 상황이 잡초라는 식물에게는 생존이자 혁명이니 받아들여야 했다. 식물학자와 농부 사이에는 정말 접점이 있나 보다.

나는 식물에 관심과 애정이 생긴 것이 좋다. 아는 식물이 하나, 둘 생길 때 마다 내 일상도 그만큼 풍요로워진다. 새로운 세상에 눈 뜨는 순간의 기쁨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농촌에서의 생활이 힘들어 질 때 마다, 지금의 순간들이 내게 힘이 되어 줄 것이라 믿는다.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국농어민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