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아나 청년농부·전남 구례

[한국농어민신문]

“적십자회비 나왔네. 한 사람당 이만 이천원이야.” 이 말씀만 하시고 뚝 끊으셨다. 이장님 전화였다. 이장님이 전화로 적십자회비 납부를 안내하시는 게 희한했지만, 깊게 생각하진 않았다. 서울에서처럼 지로 용지를 돌리면 나이가 많으신 어르신들이 내기도 어렵고 확인도 잘 못하시니, 시골에서는 이렇게 연말에 이장님이 전화를 돌리시나 보다 했다. 세대 당 만원 정도였던 것 같은데, 그 사이 기부 권장 금액이 언제 이렇게 올랐나 하고 약간 놀라기도 했다.

그런 생각도 그 때 뿐, 까먹고 있었다. 내게 적십자회비는 원하는 사람만 참여하는 선택 사항이었다. 기부 생활은 개인의 몫인 만큼 나는 적십자사가 아닌 타 단체에 월별 기부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연말이라고 특별히 적십자회비를 낼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해가 바뀐 뒤, 버스 정류장에서 동네 할머니 한 분을 만났다. 대뜸 “아, 그 집은 적십자회비를 안 냈다믄서?” 하신다. 말에는 핀잔의 뉘앙스가 섞여 있다. 우리 동네 할머니들이 반갑고 고마울 때가 많지만, 여전히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렇게 어려운 분 중 한 분이 내가 적십자회비를 내지 않았다고 꾸짖으신다. ‘뭔가 잘못 되었구나!’ 느낌이 왔다.

주변 분들에게 물어봤더니, 시골에서는 적십자회비를 마을 단위별로 이장님이 걷는다고 했다. 자율적인 기부 활동이라기 보단 의무적인 납부 행위에 가깝단다. 즉, 내가 받은 그 전화는 단순 안내가 아니라, 이장님께 그 돈을 납부하라는 의미였다는 것이다.

놀라서 다른 정보들을 더 찾아봤다. 적십자회원국 198개국 중 유일하게 우리나라만 성금 모금을 위한 지로용지 발송을 한다. 전 국민에게 지로용지 발송을 통해 기부를 세금처럼 느끼게 한 모금 활동은 헌법 소원에 의해 위헌 판단을 받게 됐다. 2017년 경기도 사례에 의하면 수원시, 성남시 등과 같은 도시보다 양평군, 가평군과 같은 농촌지역의 납부 실적이 훨씬 더 높다. 마을별 적십자회비 모금액이 분담금처럼 정해져 있는데, 이 금액을 지자체가 정한다. 때론 분담된 금액이 모자란 만큼 이장님 개인이 지출하거나 마을 운영 자금에서 충당하는 경우도 있다?!

자율적인 기부 활동이라고 알고 참여하지 않았던 나는 이장님께 가져다 드리지 않은 내 몫의 적십자회비가 의도치 않은 민폐를 일으켰을지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장님에게 민폐였는지, 마을 운영 자금에 민폐였는지는 모르지만, 동네 할머니의 핀잔성 한 마디를 통해 짐작해 보건데 아마 둘 다일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마음이 불편해졌다. 수입이 일정치 않은 상태지만 마을 운영 기금으로 내 몫의 적십자회비를 부담하게 만드는 것은 원치 않았다. 모금 기간이 끝난 지금에라도 이장님을 찾아가 회비를 내려니, 새해가 되면서 이장님이 바뀌어 애매해졌다.

그런데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더 근원적인 이유가 있었다. ‘왜 자율적인 기부 활동을 농촌은 공동체 단위의 의무 활동으로 하고 있는가?’ ‘왜 도시민들은 선택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일반화 되어 있는 이 모금에 우리 사회에서 돌봄과 지원을 받아야 하는 계층에 속하는 시골 어르신들은 선택의 여지없이 납부자로 참여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들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농촌 어르신들의 기부 활동 참여가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재난구호, 취약계층구호, 안전지식 교육 등 인도주의적 사회 활동을 하는 단체인 대한적십자사의 전국 연말 성금 운동의 문제점을 이 지면에서 지적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위헌 판정을 받아 앞으로는 지로용지 발송도 하지 않고 새로운 모금 방식을 고민한다는데, 농촌에서는 왜 그 오래전 방식만을 유지하는지 이상하다. 더군다나 관에서 이장님을 통해 각 마을마다 분담 금액을 지정하고, 주민들에게 자세한 설명도 없이 진행되는 관행에는 화가 난다. 

농촌으로 이주한 뒤, 일의 배경이나 설명 없는 당황스런 상황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지금까지 내가 알던 사회와 다른 부분이 있고, 먼저 배우는 자세로 이 사회에 적응해 가자고 다짐했었다. 그렇지만 ‘왜 이렇게 할까?’ 혹은 ‘이렇게 하는 것은 옳지 않은 것 같은데?’라는 의구심이 들 때도 있다. 그럴 때는 물어 보거나, 고치자고 제안해야 한다. 하지만 마을 유일의 외부 사람인 나는 그런 용기를 내기가 쉽지 않다. 어떤 질문들은 내가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 줄 사람이 없을 것 같다. ‘늘 그래 왔다’가 그 이유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올 연말이면 바뀐 이장님의 전화를 또 받게 될 것이다. 그 때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납부하기 싫지만 공동체의 역적이 되지 않기 위해 이장님께 돈을 가져다 드릴지, 서울에서처럼 거부할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또 다시 마음 불편한 연 초를 만들지 않기 위해, 의구심이 생기면 물어보기도 하고 정확한 배경과 상황을 찾아보기도 해야겠다. 없애야 하는 관행과 적폐가 있다면, 쉽지 않겠지만 용기를 내 봐야 하지 않을까? 이곳은 이제 내가 살아갈 곳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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