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보름 동안 논을 돌아다니다 보니, 모내기를 마치고도 부지런히 논에 다니시던 어르신들이 생각났다. 그리고 별로 하는 일도 없는 것 같은데 수시로 물꼬를 살피고 논둑을 밟으며 돌아다니신 이유를 알 것 같았다. 

ㅣ 박다니엘 청년농부·전남 영암

보름 동안 논을 돌아다니다 보니, 모내기를 마치고도 부지런히 논에 다니시던 어르신들이 생각났다. 그리고 별로 하는 일도 없는 것 같은데 수시로 물꼬를 살피고 논둑을 밟으며 돌아다니신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모내기를 무사히 마쳤다. 지난해 보다 일찍 마친 것 같아 일지를 뒤적여 보니 일주일 정도 빨랐다. 6월이 다 되도록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날씨에 키가 자라지 않은 모들이 있어 마음을 졸이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는 뭐든 빨리 된다는 어르신들 말처럼 보리와 밀이 빨리 익었다. 망종을 전후로 수확을 마치고 이모작 모내기를 이어갔다. 어느 해에는 모내기를 한참 하다가 소나기가 내리기도 하고, 일찍 시작된 장마인 듯 며칠씩 비가 내리기도 했다. 그런데 올해 비 소식은 저 멀리 밀려나 있다. 그러다 보니 모내기를 밀리지 않고 일찍 마칠 수 있었던 것 같다.

막바지 모내기를 하는데, 진작 봄 일을 마친 이웃 마을 어르신들은 수시로 논을 둘러보러 다니셨다. 고된 모내기를 끝냈으니 며칠은 쉬면서 숨을 돌려도 좋을 듯 한데, 아침저녁은 물론 낮에도 몇 차례나 논을 둘러보러 다니셨다. 못자리에서 모를 싣고 가다 마주치면 아직 많이 남았느냐고 물어 보신다. 우리도 곧 끝난다고 말씀드리면 고생했다는 인사를 건네셨다. 그렇게 올 봄 모내기를 마쳤다.

‘모내기가 다 끝났으니 이제 늦잠을 자도 되겠다’ 생각했는데, 이른 새벽에 눈이 떠졌다. 당장 해야 할 급한 일은 없지만 동이 트자마자 논을 둘러보려고 집을 나섰다. 모내기를 하던 중에는 먼저 모를 심어 놓은 논들을 돌아보면서 물이 끊기지는 않았는지 물꼬만 보고 다녔다. 한창 바쁠 때는 다 돌아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논들도 있었다. 그런 논들부터 차근차근 둘러보려고 했다.

자전거를 길가에 세워 놓고 논두렁을 따라 걸어 들어갔다. 어느새 어린 모들이 자라 짙은 녹색을 띄며 새끼치기가 한창이었다. 논둑의 풀들도 많이 커서 곧 제초 작업도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논 중간 정도 들어가니 논두렁에서 뻗어 나온 풀들이 모를 둘러싸며 논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장갑도 끼지 않고 풀을 뜯기 시작했다. 지난해에도 마을 입구에 있는 논에서 봤던 녀석인데, 여기 논에도 생겼다 싶어 얼른 뜯어내고 가야지 싶었다.

집으로 돌아와 부모님과 아침을 먹으며 새벽에 나가 논두렁에 풀을 뜯고 왔다고 말씀드렸더니, 그 논만 그런 것이 아닌 것 같다며 논 마다 뒤져봐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밥을 먹고 뒷산 너머에 있는 논으로 갔더니 그곳에도 같은 풀이 논으로 뻗어가고 있었다. 잠깐 풀을 뜯는데 구름이 걷히자 땀이 나기 시작했다. 이마에 흐르던 땀이 눈으로 들어가는데 흙이 묻은 손이라 땀을 닦아 낼 수가 없었다. 구부리고 앉아 풀을 뜯어야 하니 허리도 아프기 시작했다. 깊이 들어 갈수록 더 많은 풀이 논 속으로 뻗어가고 있었다. 해가 벌써 중천에 떠올라 ‘다 마무리하긴 힘들겠다’ 싶어 다음 날 다시 오기로 했다. 그날부터 매일 새벽 논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뒷산 너머의 논들을 돌아 볼 때는 논두렁에서 자란 풀만 뽑으면 되나 싶었는데, 마을 앞 냇가 아래에 있는 논에도 풀과 피가 자라고 있었다. 수로에서 물이 잘 들어가고 있는지만 확인하고 다녔더니, 논 안쪽에 흙이 좀 높은 곳에는 물이 닫지 않은 때가 있었던 것 같다. 모내기를 하면서 우렁이를 넣어 주었지만 물이 마른 틈에 금세 풀이 나서 지금은 물이 가득한데도 우렁이가 먹지 못할 만큼 단단해져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논에 들어가 한나절을 뽑았지만 결국 다 뽑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지난해에는 풀이 있는 곳이 얼마 안 되고 잠깐씩 가서 뽑았던 것 같은데, 올해 유난히 풀이 많은 것처럼 느껴졌다. 며칠 다른 논들을 돌아다니다가 뽑다 남겨 두었던 논에 가 보았더니 이제 손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가 되어 있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있었는데, 이웃에서 농사짓는 형님이 제초날을 예초기에 달아 논을 갈고 다니는 동영상을 카톡방에 올렸다. 당장 전화를 했더니 빌려가도 된다 하셔서 다음 날 기계를 가져왔다.

예초기를 등에 매고 논에 들어갔는데 발이 빠져 하마터면 넘어질 뻔 했다. 겨우 균형을 잡고 걷는데 손잡이 조절이 서툴러 풀과 함께 벼를 잘라먹기도 했다. 흙이 얼굴까지 튀어 오르고 온몸이 흙 범벅이 되긴 했지만 그래도 한나절 정도 논을 뒤지고 다녔더니 어느 정도 정리가 되는 듯해 마음이 후련했다.

그렇게 보름 동안 논을 돌아다니다 보니, 모내기를 마치고도 부지런히 논에 다니시던 어르신들이 생각났다. 그리고 별로 하는 일도 없는 것 같은데 수시로 물꼬를 살피고 논둑을 밟으며 돌아다니신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우렁이를 논에 넣어 주고 물만 잘 들어가게 해 주면 되니 모내기만 마치면 일을 다 한 것처럼 늦잠을 자곤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동안 친환경 농사를 그리 어렵지 않게 생각하고 지어 올 수 있었던 것은 새벽부터 논에 나가 풀을 뽑다 들어오신 부모님이 늦은 아침상을 차리며 나를 깨우셨던 날들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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