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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2030, 그들이 사는 법] 저 높고 푸른 가을 하늘 아래

[한국농어민신문]

박다니엘 청년농부·전남 영암

가을비가 계속되던 9월을 보내며 올 가을 추수는 어떻게 해야 하나 염려가 많았다. 계속된 비로 논은 마르지 않았고, 품종에 따라 곧게 서 있는데도 수발아 현상이 나타나는 벼도 있었다. 그럼에도 시간은 흐르고 계절은 바뀌었다. 10월에 들어서자 언제 그랬냐는 듯, 푸르고 맑은 하늘은 높아만 가고 건조하고 찬바람이 불었다. 새벽녘 안개가 마을을 감싸긴 하지만 이내 걷히고 가을 햇살이 들녘을 품었다.

흙이 질어 빠질 것 같은데도 이곳저곳의 논에서 수확을 하고 있는 콤바인들이 눈에 띄었고, 들판은 하나 둘 비어 가기 시작했다. 우리 마을에서도 먼저 익은 조생종 흑미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추수철에 접어들었다. 그러던 지난 주말, 충남 홍성에서 살고 있는 한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매해 여름과 겨울에 열리는 강학회에 참석하여 만났던 친구였다. 갈 때마다 언제 한 번 영암에 놀러 오겠다고 했는데, 어떻게 시간이 되는지 찾아가도 되겠느냐는 전화였다. 나는 바쁜 농사철이라 오게 되면 같이 일을 해야 하는데 괜찮겠느냐고 했고, 친구는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다.

멀리서 손님이 찾아 왔지만 우리의 일상은 변함이 없었다. 아침나절에는 전날 수확하여 건조기에 말린 벼를 꺼내 창고에 쌓았다. 그리고 새벽에 내린 이슬이 걷히면 논으로 나가 콤바인으로 수확한 나락을 싣고 공동 건조장에 날랐다. 그 사이사이에 콤바인 작업을 할 논에 미리 가서 모퉁이에 있는 벼를 베어 놓거나, 콤바인에 넣어 타작할 수 있게 볏단을 옮겨 놓기도 했다. 친구도 나를 따라 이런 저런 일을 하면서 하루를 보냈다.

저녁을 먹고서야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친구는 지난 2년 여간 젊은협업농장에서 유기농 쌈 채소를 가꾸는 일을 하며 생활했는데, 이제 독립할 계획으로 농장을 나왔다고 한다. 진작부터 와보고 싶었는데 농장에 있을 때는 시간내기가 어려웠고, 이제 여유가 좀 생겨 우리 집에 올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친구는 충남도에서 친환경 농창업 지원 사업에 선정되어 내년부터 하우스를 지어 유기농 고추 농사를 해볼 생각이라고 한다. 쌈채소는 연중 쉬지 않고 일해야 하지만, 고추 농사는 겨울에는 감자나 무를 심고 쉬어 갈 수 있어 자기에게 맞을 것 같단다. 2년 동안 유기농사를 짓는 경험도 쌓았고,  유기농 고추를 재배하고 있는 멘토를 만나 도움도 받기로 했다고 한다. 내년 초부터 모종을 기르는 일을 도와 드리며 하나하나 배워 갈 것이란다. 그리고 5년 정도 지나 농사가 안정되면 학교 밖 친구들 한 두 명과 함께 사회적 농업을 시도해 볼 계획도 세우고 있었다. 나는 노지에서 벼만 재배해 왔지 하우스에서 하는 시설 재배에 대해서는 잘 모르기에 앞마을에 귀농하여 방울토마토를 키우고 있는 형님이 계시는데 가보지 않겠느냐고 하자, 같이 가보고 싶다고 했다.

다음날 오후 논에 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잠깐 형님네 하우스에 들렀다. 그런데 1000평 정도의 연동으로 된 시설하우스에 들어서자마자 친구는 깜짝 놀라는 표정이었다. 하우스 안에는 흙이 아닌 배지에서 토마토가 자라고 있었고, 일을 하면서도 흙을 밟을 일이 없게 되어 있었다. 배양액을 자동으로 공급하는 장치를 통해 토마토를 연중 생산할 수 있고, 기온에 따라 창이 자동으로 개폐되는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이런 스마트팜을 처음 접하면서 자신이 알고 있던 농사와는 거리가 느껴져 당황스러웠던 것 같았다. 친구가 작은 하우스 두 동을 지어 유기농 고추를 길러 보려고 하며 나중에는 노지 농사꾼이 되고 싶다고 이야기를 하자, 형님께서는 하우스를 한번 지어 놓으면 시설을 다시 하기 힘드니 고생하지 않으려면 잘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자신도 친환경 농사의 꿈을 품고 농사를 시작했는데, 대량생산을 해야 하는 시설 하우스를 운영하여 가족들과 생활해 가야 하는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며 새롭게 시작하려는 친구를 염려해 주셨다. 반면 친구는 대규모 자본 투자가 뒷받침 되어야 하는 스마트시스템을 갖춘 시설하우스가 우리 농업 현실에서 지속 가능할 수 있을지를 의문이라며, 그렇게 큰 위험 부담을 안고 농업에 발을 들여 놓는 것이 우려된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오며 친구는 우리나라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삶의 양식은 정말 다양한 것 같다고 했다. 각자가 다른 여건에서 농업이라는 새로운 분야로 들어왔기에 각자가 농업을 대하는 태도나 방법이 다를 것이고 그런 다양함이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자신은 욕심을 부리지 않고 땅을 가는 농사를 지으며 농촌에서 이렇게도 살 수 있구나 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오늘 친구가 돌아가고 나는 들녘에 나갔다가 다시 건조장으로 돌아 왔다. 가을 내내 마을 공동 건조장을 맡아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을 하고 있는 나를 보며 친구의 질문을 곱씹어 보게 된다. 우리는 저 높고 푸른 가을 하늘 아래 어떤 꿈을 꾸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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