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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2030, 그들이 사는 법] 그래도 봄은 오는데

박다니엘 청년농부·전남 영암

어르신은 경로당에 오지 못하고 집에만 있으려니 답답하다고 볼멘소리를 하시면서도 어쩔 수 있겠느냐며 우리가 서로 조심하자고 하셨다. 그렇게 보통의  봄날을 맞던 시골마을은 때 아닌 겨울을 향해 거꾸로 걷고 있다.


설날이 지나고 논밭을 둘러보니 마음이 다급해졌다. 여느 해 같으면 2월에도 심심찮게 눈이 내렸지만 올해는 어려울 것 같다. 따뜻했던 겨울 탓에 텃밭에 심어 놓은 양파와 마늘 사이로 벌써 쭈뼛쭈뼛 풀이 자라고 있다. 지난 가을 벼를 수확한 뒤 뿌려 놓은 보리도 훌쩍 커 일찍 웃거름을 해야 했다.

풀매기를 해야겠다는 생각만 하던 찰나 이웃집 할머니들이 호미를 들고 집으로 오셨다.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한 풀이 더 번지기 전에 손을 써야 일이 커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계셔서다. 할머니들은 잰  손놀림으로 풀을 뽑으면서도 군데군데 솟아오른 양파와 마늘 뿌리에 흙을 덮어 눌러 주셨다.

어르신들은 밭에 있는 풀을 죄다 천덕꾸러기 취급하는 얼치기 농부와는 달리 먹을 수 있는 착한 풀들을 골라내셨다. 그 중에서 유독 곰밤부리를 가리키며 ‘이것이 거시기다, 조금 더 캐서 저녁에 나물로 무쳐 먹어라’하셨다. 부모님과 셋이서 한다면 족히 이삼 일이 걸릴 일을 할머니들의 도움으로 하루 만에 거뜬히 해낼 수 있었지만, 겨우내 움츠려 있던 몸은 여기저기서 아우성이었다.

밭을 돌아보는 사이 트랙터 소리가 들렸다. 이웃농가에서 조사료용으로 쓸 풀을 갈아놓은 논과 보리밭에 웃거름을 하러 가는 모양이었다. 눈 속에 파묻혀 있어야 할 보리가 따뜻한 겨울 탓에 많이 자랐기 때문이다. 다른 해보다 일주일에서 열흘 빨리 웃거름을 살포하는 것이 좋을 거라는 농촌지도소의 조언을 듣고 비료를 사러 농협에 가보니 유기농사에 쓸 수 있는 자재는 없었다. 간신히 업체를 수소문해 다른 농가들보다는 며칠 늦었지만 다행히 비가 내리기 전에 유기질 비료를 뿌릴 수 있었다.

그런데 비료를 얼마나 뿌려야 할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았다. 평년보다 일찍 뿌리긴 하지만 벌써 웃자란 보리에 비료를 얼마나 써야 할 지 감이 오질 않았다. 지난해와 비슷한 양을 뿌려서 더 잘 자라게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보리가 이삭을 일찍 패어 서리를 맞기라도 한다면 수확이 어려울지도 몰랐다. 결국 아버지와 상의해 논마다 평년보다 한 가마니 정도 적게 뿌리는 것으로 웃거름에 대한 고민을 끝냈다. 얼마나 거둘 수 있을지는 언제나 그렇듯 하늘에 맡겼다.

겨우내 바깥출입이 없으셨던 마을어르신들도 이런저런 일을 보러 집 밖으로 나오기 시작하셨다. 면사무소에 가시기도 하고 논밭을 둘러보고 회관에도 들르셨다. 어르신일자리사업에 참여하는 분들은 오전에는 마을청소를 하시고 오후에는 회관에서 긴 낮잠과 수다를 나누셨다. 지난해 몇 차례 지급되었던 경로당 부식비가 올해부터는 매달 지급된다고 하니 ‘어찌 함께 밥을 지어 먹을꼬’ 관심도 많으셨다. 면사무소에서 마을통장으로 부식비가 입금되었다는 연락이 오자 부녀회장이 찬거리를 사와 음식을 준비하고, 매 주 두세 차례 함께 모여 식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시골마을은 사뿐사뿐 봄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지난달부터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국내에 전파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지만 먼 나라 이야기인 듯 했다. 중국이나 동남아를 다녀온 사람들 중에 확진자가 몇 명 발생하기는 했지만 곧 잦아들 거라고 여겼다.

보통의 봄날처럼 농부들은 논에 거름을 내고 밭에 나와 풀을 뽑았다. 점심이 되면 마을회관에 두런두런 모여 함께 식사를 했다. 식사 중에는 올해 친환경 농사와 수매 계약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갔다. 그러다 지난주부터 갑자기 코로나19 확진자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양상을 보이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매일 마스크 착용과 손 씻기를 강조하는 마을 방송과 안내 문자가 날아들기는 했지만 시골마을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였는데, 위기경보단계가 심각으로 격상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매달 열리던 이장단 반상회와 간간히 잡혀있던 기관 회의 및 교육이 모두 취소되었다. 그사이 마을회관에서 이루어지던 급식과 어르신일자리사업도 추후통보가 있을 때까지 중단되었다. 면사무소에서는 마을이장을 통해 마스크를 집집마다 지급했고, 어르신들이 경로당에 모이는 것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했다. 급기야 마을경로당을 임시 휴관 한다는 안내문이 붙었다.

얼마 안 가 마을회관은 빈집처럼 썰렁해졌고 주민들의 봄 마실도 이내 뜸해졌다. 드시던 혈압약이 떨어져 보건소에 다녀오신 이웃집 할머니는 ‘사람을 건물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게 하더라, 앞으로는 장보러 나가기도 어렵겠다’고 걱정하셨다. 어르신은 경로당에 오지 못하고 집에만 있으려니 답답하다고 볼멘소리를 하시면서도 어쩔 수 있겠느냐며 우리가 서로 조심하자고 하셨다. 그렇게 보통의  봄날을 맞던 시골마을은 때 아닌 겨울을 향해 거꾸로 걷고 있다. 그래도 담장 너머 목련은 벌써 봉오리를 터트리기 시작했고, 논둑에 들풀들은 꽃을 피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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