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기고ㆍ독자투고
[농촌 2030, 그들이 사는 법] 쌉싸래한 봄날
   
 

[한국농어민신문]

박다니엘 청년농부·전남 영암

봄이 되었는데도 마땅히 먹을 만한 푸른 채소는 구할 수도 없고 갑자기 힘을 써야 하니 몸은 고단하고 입은 써 밥맛이 없던 시절, 가족들을 건사해야 했던 할머니는 쓰디 쓴 싸랑부리 나물로 봄을 견뎌내셨으리라.


지난 주말, 봄을 시샘하는 찬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기 전까지 남녘의 들판이 미세먼지로 뒤덮였다. 겨우내 토양과 미생물에 대한 공부를 같이 했던 마을 형님들과 경남 산청에 있는 농장으로 견학을 갔는데, 정말이지 차창 밖에 펼쳐진 하늘은 숨이 막히다 못해 씁쓸할 지경이었다. 푸르름을 머금고 있을 산과 들도 흑백 사진에 갇혀 버린 것 같았다. 수년 전부터 미생물을 이용해 딸기의 맛과 수확량에서 큰 효과를 보셨다는 주인 아저씨께서 딸기 맛도 보여주시고 미생물 배양법에 대한 이야기도 해 주시는데, 농사 이야기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고 답답한 마음만 가득한 날이었다. 다행히 주말이 되며 비가 내리고 파란 하늘이 보이자 “이런 날도 있구나”라는 감탄 아닌 탄식이 새어나오는데, 또 다시 먼지가 내려 앉아 건너 마을 뒤로 우뚝 솟아 있는 월출산의 봉우리는 보이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날은 풀리는데 들일을 더 이상 미룰 수는 없어 오늘은 아침 일찍부터 온 가족이 들로 나섰다. 아버지가 먼저 트랙터에 퇴비를 가득 싣고 논으로 향하셨다. 어머니와 나는 삽과 낫을 들고 뒤따랐다. 아버지가 퇴비 살포기로 거름을 싣고 와 논에 뿌리시는 동안 우리는 논 둘레를 돌며 둑을 둘러보았다. 둑이 무너져 있거나 틈이 생긴 곳에는 흙을 붙여 다졌다.

제초제를 쓰지 않고 우렁이의 도움으로 벼농사를 지으려면 논에 물을 깊게 담아 두어야 한다. 그래서 논 둑을 높여 주는 것이 유기농 논 농사의 기본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지난해 우거졌다가 말라 있는 풀은 모아서 논 가운데로 던져 놓거나 둑이 높은 곳에서는 불을 놓아 태우기도 한다. 혹시 모를 벌레들이 겨우내 잠복하고 있을 서식지를 정리해 어린 모들이 자라면서 피해를 입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대형 트랙터가 논에 들락날락 하다 보니 논의 한 쪽 귀퉁이로 흙이 몰려 쌓여 있는 곳에서는 흙을 퍼내 낮은 곳으로 옮겨 놓기도 하고, 콤바인이 돌아다니다 지푸라기를 한 곳에 뭉쳐서 떨쳐 놓은 것이 있으면 논 이곳저곳으로 고루 펼쳐서 썩게 하기도 한다.

논 길을 따라 걸으며 둑의 상태를 확인하느라 종종걸음을 걷고 있는데, 저 건너로 가시던 어머니가 멈춰 앉아 호미질을 하신다. 삽으로 대강 하면 될 텐데 꼼꼼한 어머니는 또 뭘 그렇게 손 보시려고 저러신다 생각하며 가까이 가보니, 나물을 캐고 계셨다. 보통 날이 풀리면서 나오기 시작하는 풀들은 농부에게 골칫거리인 경우가 많지만 간혹 만나게 되는 쑥이나 냉이 같은 나물은 그냥 지나치기 힘든 반가운 친구들이리라. 그것도 모르고 나는 논 둑 붙이러 와서 또 뭐하는 거냐고 하니, 어머니는 “느그 골미댁이 좋아하던 싸랑부리가 많네”라고 하시며 털썩 주저앉으신다.

일찍 할아버지를 여의고 평생을 논과 밭에 지내며 가족들을 돌보셨던 할머니께서는 이맘 때가 되면 씀바귀라고도 하는 싸랑부리 나물을 무치곤 하셨다. 나는 어디서 나는지도 몰랐는데, 뒷산 너머에 있는 논에 다녀오실 때면 꼭 싸랑부리를 캐 오셨던 것 같다. 초등학교 시절, 밥 위에 올려 주시며 한 번 먹어보라고 하셨는데, 입에 넣어 씹기도 전에 올라오는 쓰디 쓴 향 때문에 다시는 젓가락을 대지 않으려 했던 것 같다. 그때는 다른 먹을 것도 많은데 왜 저렇게 쓴 걸 드시는 거지 하며, 나이든 할머니의 독특한 취향 정도로만 생각했다.

지금에 와 돌이켜 보면, 봄이 되었는데도 마땅히 먹을 만한 푸른 채소는 구할 수도 없고 갑자기 힘을 써야 하니 몸은 고단하고 입은 써 밥맛이 없던 시절, 쓰디 쓴 싸랑부리가 식욕을 돋우어 주신다는 것을 아신 할머니께서는 논두렁을 돌며 나물을 캐 오셔서 밥상에 올리셨던 것 같다. 그러면 가족들은 다른 반찬이 없어도 싸랑부리 나물을 밥에 비벼 끼니를 때우고 다시 들로 일을 나갔다. 지금이야 마트에 가면 계절에 상관없이 푸른 채소를 구할 수 있고 수입된 과일까지 넘쳐나니 어떤 것을 먹을지 걱정해야 하지만, 곡식이 떨어져 가고 마땅한 반찬거리가 없는 계절을 보내며 가족들을 건사해야 했던 할머니는 쓰디 쓴 싸랑부리 나물로 봄을 견뎌내셨으리라.

논 둑을 붙이던 일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엄마 옆에 앉았다. 밥상에 올라와 있는 양념이 된 싸랑부리를 보았을 뿐, 들에 있는 것을 본 것은 처음이어서 다른 풀들을 같이 뽑기도 하고, 뿌리까지 잘 뽑아야 하는데 잎만 따면 어떻게 하느냐고 핀잔을 들으면서도, 아무 대꾸도 않고 싸랑부리를 캤다. 할머니는 내가 당신처럼 싸랑부리를 캐며 봄을 맞을 날이 오리라는 것을 상상이나 하셨을까? 그리고 당신이 사셨던 시절 보다 잘 살고 있다고, 살만한 세상이 되었다고 하실까? 그나저나 오늘 저녁엔 싸랑부리 나물에 밥을 비벼 먹어야겠다. 할머니가 그러셨던 것처럼. 쌉싸래한 봄날을 지나며 싹이 돋고 푸르러질 들판으로 나서려면 말이다.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국농어민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