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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2030, 그들이 사는 법] ‘매콤짭조름한 한낮’

박다니엘 청년농부·전남 영암

다음 날부터 어머니는 한 나절씩 마을에 나갔다 오셨는데, 집으로 돌아오실 때면 김치 한 포기가 꼭 손에 들려 있었다. 그렇게 밥상 위에는 날마다 갓 담은 김치가 올라왔다. 어느 집 김치는 짜고 어느 집 김치는 매웠다. 젓갈 맛이 많이 나는 것도 있었다. 집집마다 넣는 재료가 다르고 좋아하는 맛이 다르다 보니 차이는 당연하다.


찬 서리가 내려앉은 이른 아침. 한 겨울로 접어든 시골마을에는 간간이 담을 넘던 길고양이들도 보이질 않는다. 농사철이면 새벽부터 바지런히 움직이시는 할머니들도 늑장을 부리시다 정오가 되어서야 간신히 점심을 때워볼 요량으로 마을회관에 모이신다. 헤아려봐야 겨우 대여섯 분이 단출하게 둘러 앉아 밥 한술을 뜨신다. 갑작스레 날씨가 추워지는 날이면 이웃마을 어르신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간혹 들려오고, 그럴 때면 고인과의 옛 추억이 이야깃거리가 된다. 마을어르신들은 머잖아 자신들의 이름도 불릴 거라며 흘러간 세월을 안타까워하신다.

그렇게 가는 세월 앞에 구슬픈 할머니들이 12월이 되자 너나 할 것 없이 분주해 지셨다. 한 해의 마지막을 장식할 큰 일이 남아 있어서다. 바로 이듬해 먹을 김치를 담그는 일이다. 홀로 지내시거나 부부만 사는 집들이라 김치가 많이 필요하지 않는데도 가끔 오는 자식들의 몫까지 미리 셈을 해 김장 준비에 열을 내신다. 다음 주에나 할까 하시던 어머니도 덩달아 텃밭에 심어둔 배춧잎이 말라가는 것 같다며 김장을 서두르셨다.

작년 이맘때쯤 텃밭에 심어둔 배추가 잘 자랐다고 생각하고 뽑았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속이 썩어 하나도 쓸 수가 없었다. 부랴부랴 이웃들의 밭에 남은 배추를 얻어다가 겨우 김장을 할 수 있었다. 그런 경험이 있어서 올해는 유난히 신경이 쓰였다. 초가을부터 불어 닥친 태풍 때문에 작황이 좋지 않다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왔지만 다행히 이번 배추는 속이 꽉 찼다.

김장준비를 하자는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아침을 후다닥 해치우고 배추를 뽑기 위해 텃밭으로 나섰다. 적당한 크기의 배추를 골라 겉잎을 떼어내고 마당으로 배추 포기를 날랐다. 그런 다음 밑동에 칼집을 넣어 배추를 두 조각으로 쪼개고 그 위에 소금을 한 주먹씩 얹어 대야에 차곡차곡 쌓았다. 서른 포기 정도만 하자고 하시던 어머니는 대야가 차지 않자 몇 차례 바삐 밭을 오가시더니, 결국 마흔 포기 넘는 배추를 소금에 절이셨다.

새파란 배추를 소금에 절인 후 우리 모자는 본격적으로 양념을 준비했다. 어머니는 며칠 전부터 뒷방이며 냉장고에 고이 모셔놓은 갖가지 재료들을 꺼내와 손질을 시작하셨다. 다시마와 무, 양파, 큰 멸치를 찜통에 넣어 불에 올리고, 당근과 대파를 비롯한 여러 야채를 적당한 크기로 자르셨다. 나는 마늘과 생강을 까 절구통에 찧었다. 양이 얼마 되지 않는 것 같아 우습게 여겼는데 오후 내내 매운 맛을 보아야 했다.

해가 넘어가기 전에 배추를 건지려고 살펴보니 충분히 소금에 절여지지 않아 할 수 없이 저녁을 먹고 배추를 건지기로 했다. 낮에는 그다지 춥지 않더니 겨울은 겨울인지라 어둑해지자 찬바람에 물 묻은 손이 시려왔다. 손에는 목장갑과 고무장갑을 끼고 겹겹이 겉옷을 껴입었다. 내 임무는 배추 절임통 옆에 깨끗한 물이 채워진 대야를 놓고 소금이 밴 배추를 하나씩 건져 올려 씻는 일이었다. 어머니는 간간해진 배추를 마지막으로 헹궈 비닐이 깔린 평상 위에 차곡차곡 쌓으셨다.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절인 배추에 양념을 바르려고 했는데 새벽에 친구 아버지께서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연락이 왔다. 추운 날씨에 지병이 악화되어 결국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다. 양념은 오후에 돌아와서 버무리기로 하고 허겁지겁 집을 나섰다. 

점심때가 지나 돌아와 보니 마당에 쌓아 둔 배추가 보이질 않았다. 어찌된 일인지 집안에 들어가 보니 마을 할머니들께서 배추에 속을 넣고 계셨고, 어머니는 양념이 잘 발린 김치를 용기에 담고 계셨다. 미리 말씀을 드리지 않았는데도 용케 ‘그날’을 아시고 일을 거들고자 모이신 것이다. 어르신들은 뒤늦게 등장한 나를 올려다보시며 김치가 담긴 김치통이나 얼른 나르라고 웃으셨다. 

어머니는 수육을 준비하지 못해 죄송해하며 할머니들 몫의 김치를 담아 드렸다. 내게는 집집마다 김치 한 포기씩을 가져다 드리고 오라고 하셨다. 어머니께  이웃마을로 귀농한 친한 형님네도 주면 좋겠다고 했더니 김치 한 통을 통째로 꺼내 주셨다. 나는 한 일도 없이 ‘김장하느라 고생했다, 잘 먹겠다’는 인사를 받으며 마을을  돌았다.

하지만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었다. 다음 날부터 어머니는 한 나절씩 마을에 나갔다 오셨는데, 집으로 돌아오실 때면 김치 한 포기가 꼭 손에 들려 있었다. 그렇게 밥상 위에는 날마다 갓 담은 김치가 올라왔다. 어느 집 김치는 짜고 어느 집 김치는 매웠다. 젓갈 맛이 많이 나는 것도 있었다. 집집마다 넣는 재료가 다르고 좋아하는 맛이 다르다 보니 차이는 당연하다. 

보름 가까이 걸려 저마다의 ‘매콤짭조름한 한낮’은 지나갔고, 몸살과 감기를 상으로 받은 어르신들은 그렇게 한 해의 끝에 닻을 내리셨다. 더 정확히 말해 길고도 짧은 인생의 묵은해를 떠나보내고, 새로울 것 없는, 그러나 언제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시작’을 준비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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