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다니엘 청년농부·전남 영암

[한국농어민신문]

농산촌유토피아는 우리 곁에 있는 생태계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기후 변화에 코로나까지 겹쳐 ‘올해 농사는 또 어떻게 되려나’ 걱정만 하고 있던 나에게 고향 어르신의 책은 무심코 지나쳤던 들녘에 보물이 감추어져 있으니 얼른 찾아 나서라고 재촉하는 것 같았다.

고요했던 시골 마을이 발칵 뒤집혔다. 연말연시 어떤 이가 지인 댁에 내려와 보름 정도를 지내다 서울로 돌아갔는데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것이다. 그가 머물렀던 마을의 주민들에 대한 검사가 이루어졌고, 오가던 이웃마을 주민 가운데 수십 명이 양성으로 판정되면서 군 전체에 비상이 걸렸다. 면사무소는 곧바로 임시폐쇄 되었고 면소재지에서 열리던 오일장은 한 주 동안 문을 닫는다고 했다. 혹시 모를 전파자를 찾기 위해 모든 면민을 대상으로 검체 채취가 이루어졌다.

하루에도 수 백 명씩 국내 확진자가 발생하는 상황을 바라보며 마을회관을 닫았다 열기를 반복하긴 했지만 시골마을에 사는 우리와는 먼 일로 여겼는데, 바로 옆 마을에서 확진자가 생겼다는 소식을 듣자 마을사람을 만나는 것은 물론 집 밖으로 나가는 일 조차 망설여졌다. 그렇게 집에 갇혀 지내고 있는데 책 한 권이 도착했다. 이웃마을인 광암 출신으로 농협중앙회와 농민신문사에 근무했고, 현재는 한일농업농촌문화연구소 대표이신 현의송 선생님이 지난 연말 출간한 ‘농산촌유토피아를 아시나요’라는 책이었다. 시시각각 울리는 재난문자와 마을 방송 소리에 외출은 포기한 채 따끈따끈한 책을 들고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현 대표님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타지 생활을 하셨지만 고향에 관심을 갖고 자주 찾으셨다. 아버지를 통해 대표님에 대해 전해 듣다가 내가 고향으로 내려온 2017년 봄 농업기술센터에서 열린 특강에서 만나 뵙게 되었다. ‘일본의 농업 농촌과 우리의 미래’라는 제목으로 영암의 농업발전 방향에 대한 열강을 해주셨다. 강연 중에 일본의 어느 농협 조합장이 ‘여행은 최고의 학문’이라고 하면서, 한국에서 많은 돈을 들여 견학을 왔으면서도 깊이 배우려 하진 않고 사진만 찍고 가는 이들이 많다고 귀띔해 주셨다는 이야기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저자는 지난 해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바깥 활동이 어려워지자 매일 아침 청계산 자락에 있는 텃밭으로 나가셨다. 그곳에서 이십 여종이 넘는 작물들을 심고 가꾸며 싹이 트고 열매를 맺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고, 한 여름 비가 계속되는 날씨 탓에 농막에서 책을 읽으며 인류가 처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글과 그림에 담아 책으로 엮었다.

그의 책은 인간이 자연과 멀어질수록 질병과 가까워진다고 했던 고대 의학자 히포크라테스의 말을 인용하며 시작된다. 산업혁명 이후 생태계의 가치를 무시하고 자연을 파괴하면서 도시를 확장하는데 열을 올리고 경제적 욕망을 성취하려고만 했던 인류가 결국 제 발등을 찍은 꼴이 되었다는 것이다. 세계 각국에서 백신 확보를 위해 애쓰고 있고 우리나라도 곧 백신 접종을 시작한다고 하는데, 근본적으로 인간 사회를 자연과 공존하는 생태적 삶으로 전환하지 않는다면 또 다른 재앙이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저자는 이러한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자연의 복원력을 닮은 농가들의 ‘농업력’과 지역 주민과 단체들의 협력을 통해 만들어진 ‘지역력’을 바탕으로 한 ‘농산촌유토피아’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이미 유럽과 일본의 농산촌은 생태계가 보존된 자연 경관과 역사 유적을 자원으로 삼아 도시민들에게 힐링의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한편 국내에서도 지역 경제망을 구축하여 고령의 농민들이 가벼운 농사일을 통해 생산한 농산물을 로컬 푸드 매장에 판매함으로써 경제적인 자립과 건강한 일상을 유지하도록 하는 지자체와 농협의 상생 프로젝트들이 시도되고 있다. 그는 이처럼 지역의 특색이 담긴 지속가능한 프로젝트를 발굴하고 실현해 가기 위해서는 협동 정신 위에 세워진 농협의 역할을 무엇보다 강조한다. 특히 일본 농협이 아베 정권에 의해 개혁의 대상이 된 상황을 설명하면서 우리 농협도 자기 혁신을 통해 농민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농협으로 탈바꿈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책을 읽으며 인상적이었던 것은 저자가 도회지에 살면서 어려울 때마다 고향의 아름다운 산천을 찾으면 자연스레 힘이 나고, 작은 텃밭을 가꾸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을 자연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 시간으로 여긴다는 점이었다. 결국 한 권의 종이책을 통해 저자가 소개한 농산촌유토피아는 우리 곁에 있는 생태계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기후 변화에 코로나까지 겹쳐 ‘올해 농사는 또 어떻게 되려나’ 걱정만 하고 있던 나에게 고향 어르신의 책은 무심코 지나쳤던 들녘에 보물이 감추어져 있으니 얼른 찾아 나서라고 재촉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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