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다니엘 청년농부·전남 영암

[한국농어민신문]

늘 주변에 있어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이 자원조사를 통해 마을의 특색으로 하나하나 정리되는 걸 보니 뿌듯했다. 특히 어르신들이 재주가 많으신데 그 동안 그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내기 준비로 한창 바빠지는데 면사무소에서 연락이 왔다. 마을만들기 사업 수요조사가 있으니 신청서를 준비해 달라는 것이었다. 연초에 면장님께서 마을에 오셨을 때 우리 마을도 마을사업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전했는데, 잊지 않고 계시다가 연락을 주신 것이다. 담당자에게 물었더니 올해부터 정부지원 없이 지자체에서 마을만들기 사업을 진행한다고 했다. 먼저 사업에 참여할 의향이 있는 마을의 신청을 받아 한 해 동안 몇 차례의 현장 포럼과 소액 사업을 진행하면서 주민들의 역량과 가능성을 평가해 결정한다고 했다.

모내기가 마무리 된 7월이 되어서야 마을 주민들이 모여 첫 포럼을 열었다. 지금까지는 관에서 결정된 사업에 대해서 통보를 받아 왔는데, 현장 포럼이라는 것을 한다고 하니 주민들 모두 생소해 했다. 그것도 한 차례가 아닌 네 차례나 진행한다고 하니 더 그랬다. 그래도 마을발전을 위한 자리라는 소식에 스무 명 남짓한 주민들이 마을회관에 모였다. 먼저 군 담당자가 마을 사업에 대한 개요와 올 한 해 진행될 일정을 안내하고, 포럼을 맡은 교수님이 지금까지 마을사업들이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지 설명해 주셨다.

이후 두 번째 모임에서는 주민들을 세 조로 나누어 마을 지도를 그리고, 마을에 있는 자원들을 조사했다.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은 처음 접해보는 회의 방식이어서 낯설어 하시면서도 퍼실리테이터 선생님들의 질문과 예시를 듣고 우리 마을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풀어내셨다. 지금은 흔적도 남아 있지 않지만 마을에 샘터가 있었던 이야기며, 냇가 주변에 소나무 숲이 우거지고 큰 바위가 있었다는 이야기, 여름만 되면 아이들이 하천에서 멱을 감고 겨울에는 뒷동산에서 나무를 베어 연과 팽이를 만들었다는, 옛 풍경들에 대한 왁자지껄한 회상들이 이어졌다.

마을을 둘러싼 들녘에서 친환경으로 벼를 기르기에 맑은 하천과 생태계가 잘 보존되어 있는데 이를 활용하지 못해 아쉽다는 목소리와 마을에서 생산된 건강한 농산물을 판매하고 이를 가공해 전통음식을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외에도 마을에 있는 물적, 인적 자원에 대한 다양한 언급이 있었다.

포스트잇에 적힌 내용들을 정리하시던 교수님께서는 작은 마을에 이렇게나 많은 자원들이 있는 줄 몰랐다며 놀라워하셨다. 늘 주변에 있어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이 자원조사를 통해 마을의 특색으로 하나하나 정리되는 걸 보니 뿌듯했다. 특히 어르신들이 재주가 많으신데 그 동안 그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마을 계획을 세우기에 앞서 다른 마을 탐방에 나섰다.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방문을 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았지만, 우리 마을과 여건이 비슷한 순천의 문성마을과 나주의 화탑마을을 추천 받아 방문했다. 문성마을은 주민들이 출자하여 법인회사를 세우고 마을에서 생산된 콩을 이용해 두부와 된장을 만드는 체험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또 장기 계획을 세워 매년 마을 구석구석을 가꾸어 가고 있었다.

우릴 안내해 주신 사무장님은 한 시간 가량의 강연을 통해 마을사업을 통한 농가소득 증대와 대한민국이 이렇게나 발전하기까지 마을을 지키며 살아내신 어르신들의 헌신적인 수고를 강조하셨다. 그는 어르신들이 자기가 한 일이 뭐가 있느냐고 말씀들 하시지만 오히려 자부심을 가지고 합당한 대우를 받으셔야 한다고 열띤 목소리로 말했다. 또 마을에서 뭔가를 하자고 하면 나이든 이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마을 일은 곧 나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매일 자신을 위해 출근을 하며 120세까지 사셨던 세계 최고령 자메이카 할머니를 소개하며 ‘일어나, 다시 한 번 해 보는 거야’라는 마음을 가지고 마을 일을 주도적으로 해 나가시라고 권했다. 한 시간을 꽉 채운 열강을 들으며 지금의 마을이 있게 해 주신 어르신들의 노고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옆에서 함께 강의를 들으시던 이웃집 할머니께서는 삶의 질곡을 넘어 마을을 일궈주신 어르신들께 감사하다는 사무장님의 인사에 뭉클한 표정이 되셨다.

어르신들을 진심으로 존경하던 문성마을의 사무장님을 뒤로하고 오후에는 화탑마을에 들렀다. 이 마을은 특별한 자원이 없는 평범한 농촌인데 마을에서 생산된 배와 한우를 판매하는 영농조합법인으로 시작하여, 지금은 작은 마을도서관을 비롯해 사회적 농업과 치유 농업까지 다양한 사업들을 펼쳐 나가고 있었다. 암소 한우고기를 찾아 마을에 오는 도시민들이 그냥 돌아가지 않고 마을에 머무를 수 있도록 여러 체험활동을 통해 지속적인 관계를 이어나가려 부단히 노력하고 있었다. 몇 차례의 시행착오로 어려움도 겪었지만 오히려 이를 통해 주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광주를 오가며 자주 지나쳤던 마을이기에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하는 아쉬움과 함께 앞으로 자주 찾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잰걸음으로 두 마을을 살펴보며 우리 마을도 아직은 불확실하지만, 세대를 아우르는 무언가를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면서도 지구 온난화로 이상 기후 현상이 일상이 되어버린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농촌 마을은 또 어떤 모습으로 바뀌어야 할 지 깊은 부담감도 느꼈다. 마을어르신들은 우리와 다를 바 없는, 그러나 이미 달라진 이웃들의 일상을 돌아보시며 무엇을 느끼셨을지 마지막 포럼이 기대 되고 걱정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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