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다니엘 청년농부·전남 영암

[한국농어민신문]

아이들이 지구에게 쓴 편지를 읽으면서 어른들의 그릇된 삶의 방식으로 인해 오늘날 지구가 견디기 힘든 상황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조목조목 알려주어야 한다는 게 미안하고 속상했다.…어른의 한 사람으로서 그 동안의 잘못을 뉘우치고 솔직한 고백을 나누었다.

긴 장마가 끝나고 무더운 여름인가 싶었는데 금세 찬바람이 분다. 코로나19로 어수선한 사이 어느덧 한 해가 지나가 버린 듯하다. 마을회관은 열고 닫기를 반복했고, 지역 축제나 행사는 대부분 취소되었다. 반면 비대면 활동들이 많아지면서 지역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온라인 강좌들을 들을 수 있는 새로운 기회가 열렸다. 덕분에 여름내 틈틈이 여러 강의들을 들을 수 있었다.
그 가운데 지구의 생태계와 기후변화에 대한 강의는 이제껏 인류가 걸어온 발자취가 어떠했는지를 직시하게 해주었고, 동시에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풀기 어려운 숙제를 던져주었다. 8주에 걸친 긴 과정을 마무리하면서 주최 측으로부터 그 동안 배운 내용을 토대로 지역에서 ‘지구돌봄서클’을 진행해 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해보고는 싶었지만 어쩐지 막막해 주저하고 있는데, 친절하게도 프로그램에 관한 자료와 안내서를 보내준다기에 용기를 냈다. 그리고 고민 끝에 집 근처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마을학교 프로그램으로 진행해보고자 담당 선생님께 말씀 드렸더니 유익한 시간이 될 것 같다며 선뜻 자리를 마련해 주셨다.

몇 해 전부터 아이들과 자전거를 타고 마을을 돌아다닌 터라 어린 친구들을 만나는 일이 어색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처음 해보는 수업이고, 특히 초등학생들이 환경에 대해 어떤 생각을 지니고 있는지 몰라 내심 긴장이 되었다. 아이들이 들어오기 전에 교실 중앙에 지구본을 놓고 빙 둘러 지구의 여러 모습이 담긴 사진을 내려놓았다. 종소리가 울리고 친구들이 교실로 들어와 둥글게 모여 앉았다. 익숙한 얼굴도 있었지만 낯선 얼굴들도 있어서 간단히 자기소개를 하기로 했다. 자기소개는 각자의 이름과 지금의 몸 상태를 숫자로 적고, 코로나19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단어를 하나씩 종이 위에 쓴 다음 발표하기로 했다. 한 명씩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하자 아이들은 코로나19로 답답하고 힘든 감정들을 꾸밈없이 표현했다. 씩씩거리며 분노에 찬 감정을 표출하는 친구도 있었다. 학생 수가 적은 시골학교라서 정상적인 등교가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어린 아이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어른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이들의 감정이 고스란히 와 닿자 마음이 무거워졌다.

자기소개를 마친 후 교실 바닥에 놓인 사진을 한 장씩 골라 지구에게 어떤 마음이 드는지 나누었다. 탐스러운 과일 사진을 들고 자연이 맛있는 먹을거리를 준 것에 감사하는 친구도 있었고, 환하게 핀 꽃 사진을 보면서 향기를 맡으면 미소 지을 수 있어 지구에게 고맙다는 친구도 있었다. 넓게 펼쳐진 초원의 노을 사진을 고른 친구는 낮과 밤을 만들어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게 해 준 지구에게 서툰 감사를 전했다.

아이들과 지구를 향해 감사인사를 전한 후 스티브 커츠의 ‘맨(man)’ 이라는 동영상을 보았다. 지금까지 인류가 걸어온 길을 풍자적으로 그린 3분짜리 에니메이션이었다. 주인공이 벌레를 죽이는 장면을 보면서 몇 친구가 ‘아싸’하고 외쳤다. 마치 게임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동물들을 죽이고 자연을 파괴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이어지자 여기 저기서 ‘으~ 잔인해’라는 비명소리가 들렸다. 거대한 도시를 건설한 주인공이 쓰레기로 가득 찬 산 위에 올라 왕으로 군림하는 장면으로 마무리되자 다들 너무 한다며 아우성들이었다. 영상이 끝나고 친구들에게 이 작품의 제목이 영어로 ‘맨’인데 그 뜻이 뭐냐고 물었다. ‘남자요’라는 대답이 들리자 또 다른 뜻은 없느냐고 물었더니 한 친구가 ‘사람이요’이라고 답했다. 이 말에 얼른 맞장구를 치며  “그렇지! 자, 그럼 이 교실에 있는 ‘사람’은 모두 손을 들어 보자”라고 했더니 아이들이 하나 둘 손을 들기 시작했고 이내 굳어진 표정들이 보였다. 영상 속 주인공을 비난하던 목소리가 갑자기 잠잠해졌다. 한 친구가 “우리 엄마도 저랬어요?”라는 엉뚱하지만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영상에서 본 것처럼 인류가 오랜 세월 지구를 어떻게 대해왔는지 사진을 통해 계속 이야기해 보기로 했다. 매일 버린 쓰레기가 윈드서핑을 하는 파도에 섞여 있는 사진, 가뭄으로 인해 숲이 파괴되고 사막화로 황폐해져 가는 사진, 코로나19를 상징하는 바이러스의 이미지까지, 인간이 병들게 한 지구의 참담한 모습들을 함께 들여다보았다. 사진을 보고 난 친구들에게 이번엔 지구에게 어떤 마음이 드는지 짧은 편지를 쓰고 앞으로의 다짐들을 적어 보자고 제안했다. 친구들은 ‘지구야’하고 큰 소리로 부르고는 ‘미안해’라는 말로 편지를 시작했다. 지구가 얼마나 아파하고 있는지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며, 마구잡이로 쓰레기를 버린 행동을 후회했다. 그러면서 이젠 함부로 쓰레기를 버리지 않고 분리배출을 잘 하겠다고 약속을 하거나, 여름에 에어컨을 켜고서 이불을 뒤집어쓰지 않겠다는 귀여운 맹세를 늘어놓기도 했다.

아이들이 지구에게 쓴 편지를 읽으면서 어른들의 그릇된 삶의 방식으로 인해 오늘날 지구가 견디기 힘든 상황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조목조목 알려주어야 한다는 게 미안하고 속상했다. 하지만 인류가 지구상에서 살아가려면 현실을 직시하고 지금이라도 삶의 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되기에, 어른의 한 사람으로서 그 동안의 잘못을 뉘우치고 솔직한 고백을 나누었다. 늦었지만, 더는 지구에게 미안한 삶을 살고 싶지 않아 크고 작은 다짐을 담은 ‘초록별 러브레터’를 아이들과 함께 써 내렸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