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다니엘 청년농부·전남 영암

[한국농어민신문]

열악해진 마을 현실을 바라볼 때 규모는 작지만 좀 더 촘촘한 공동체를 통한 ‘민민 돌봄’이 이루어져야 하며, 마을 활동가들이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키면서 소모임 단위로 주민들을 찾아가 활기를 찾도록 돕는 노력들이 필요하다는데 공감했다.

올 겨울은 유난히 추울 것이라는 예보가 있었던 것 같은데, 아직은 여느 해 같은 초겨울 날씨다. 새벽에는 흰 서리가 내리고 물이 얼기도 하지만, 해가 떠오르면 금세 녹아내린다. 그런데 계절이 바뀌면 코로나가 확산될 것이라는 예측은 여지없이 들어맞아 겨울의 문턱에서 확진자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가을이 깊어갈 무렵 일일 확진자가 100명을 넘어서더니, 12월에 접어들자 600여명 대 확진자들이 매일 발생하고 있다. 하루 종일 확진자 수를 보도하는 뉴스를 보며 지난 여름 집에만 머물러 있어야 했던 마을 어르신들은 또 경로당을 닫게 되는 것 아니냐며 침울한 기색들이시다. 아직 방역단계가 높아지기 전이지만, 이장단 반상회가 열린다는 문자를 받은 지 며칠 만에 모임이 서면으로 바뀌었다. 도지사께서 참석 예정이시라 가능하면 진행해 보겠다던 친환경 농업인 한마음대회도 도내 확진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들리자 결국 취소되었다.

매년 연말이면 한 해의 사업성과를 보고하고 함께 수고한 이들에게 감사를 전하는 모임들도 대부분 취소하거나 축소되었다. 전남 400여개 마을들이 참여할 계획이었던 마을공동체 한마당도 마찬가지였다. 작년에는 순천의 체육관에 모여 각 시군별 마을소개 부스도 마련하고 우수마을 선정 행사도 가졌는데, 올해는 지역별로 몇몇 활동가들이 모여 화상으로 모임을 나누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행사 내용도 코로나 시대에 마을 활동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지 의견을 모으는 원탁 토론과 마을 공동체 사업을 하고 있는 마을들을 지원하기 위해 이루어진 자원조사, 컨설팅, 그리고 회계정산 활동 사례를 발표하는 것으로 간소해졌다.

코로나 시대에 마을을 주제로 한 토론에서 무엇보다 강하게 제기되었던 것은 비대면이 당연시 되는 시류를 거스르는 측면이 있지만, 마을 단위의 공동체 활동은 이전보다 더욱 활발해져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행정에서는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해 경로당을 폐쇄하고 집에 머물러 있을 것을 강조하지만, 생활 공동체로서 매일 만날 수밖에 없는 마을 주민들에게는 적절한 대안이 되기 어렵다. 오히려 경로당에서 이루어지던 공동급식이 중단되면서 홀로 사는 어르신들은 라면국물로 가까스로 식사를 잇는 경우도 많아졌다. 열악해진 마을 현실을 바라볼 때 규모는 작지만 좀 더 촘촘한 공동체를 통한 ‘민민 돌봄’이 이루어져야 하며, 마을 활동가들이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키면서 소모임 단위로 주민들을 찾아가 활기를 찾도록 돕는 노력들이 필요하다는데 공감했다.

마을 차원에서는 코로나 이전보다 더 자주 이웃들을 돌보는 끈끈한 공동체 활동이 이루어져야 하지만 교육이나 모임방식은 기존과는 다른 전면적인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는데도 모두 동의하는 분위기였다. 이번 행사처럼 대면 모임은 최소화하고 온라인 플랫폼을 이용해 마을을 소개하고 활동가들이 교류하는 새로운 체계가 상시적으로 갖추어져야 한다는데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또한 마을마다 주민들 몇몇이 모여 공부하는 학습동아리가 자리잡아갈 수 있도록 힘쓰자는 의견도 나왔다. 이러한 활동방식의 변화를 위해 전남마을방송국이 공식 출범하게 된다는 반가운 소식과 이를 통해 전남 8400여개의 마을소식이 활발히 전해질 수 있도록 활동가들의 동참을 호소하는 방송국 대표님의 경과보고도 있었다.

이어서 활동가들이 공모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마을들을 돌며 공동체 활동을 지원했던 사례들을 나누었다. 전라남도에서는 올해 처음으로 진행된 마을지원 활동이었는데, 그래서인지 발표에 나선 활동가들 모두 ‘활동가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에 대한 나름의 답을 전하는데 마음을 쓰는 표정들이 역력했다. 마을 활동가는 마을 주민들에게 어떤 지식을 전달하거나 사업을 잘 수행하고 있는지의 여부를 감시하는 대상이 아닌, 주민들 곁에서 그들과 함께 하는 마을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점이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거론되었다. 행정상으로든 조직으로든 ‘한 마을’로 규정되고 공동체 활동을 해나간다고 하지만, 함께 하는 주민들의 마음이 온전히 하나일 순 없기에 이를 조율해 가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애환에 귀 기울이는 일에서부터 마을 활동가들의 활동이 이루어져야 한다는데 절감했다.

이날 활동가들의 소감뿐만 아니라 현장의 목소리도 전달되었다. 전남의 2개 시군에 있는 마을들은 도시와 농촌 그리고 그 사이에 끼인 마을 등,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는데 이에 적합한 지원 모델들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또 마을공동체만들기사업이 3년간의 지원 후 자립을 골자로 하는데, 고령화된 농촌 현실에서 수익창출을 통한 자립은 요원하기에 정책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시시각각 확진자의 증가세가 들려오는 싸늘한 ‘코로나 블루’ 상황에서 잔잔하지만 심지 굳은 불꽃이 여기저기서 피어 올라 활활 타오를 때 즈음, 깜짝 공연으로 마을활동가 커플이 나와 ‘바위처럼’이라는 노래를 불렀다. 90년대 라떼시절 운동권에서 불리던 노래인 것 같은데, 마을활동가들이 이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니 아직도 마을이 가야 할 길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단 코로나 때문은 아닌 것 같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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