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다니엘 청년농부·전남 영암

[한국농어민신문]

집으로 향하며 모내기를 준비하고 있는 논을 둘러보았다. 지금이야 기계로 모를 심지만 과거에는 마을 주민 모두가 며칠씩 서로의 논을 돌며 품앗이로 모내기를 했었다. 그 시절에는 마음이 하나로 모이지 않을까 봐 근심할 일도, 학교가 문을 닫아 아이들이 뛰놀 곳을 잃을 일도 없었다.

아침 저녁으로 찬바람이 불어 쌀쌀하지만 어느새 마을은 봄을 지나 여름에 손 내밀었다. 화려하게 피었던 꽃잎들은 바람에 흩날리고 새로 돋아난 잎새들은 점점 초록빛으로 짙어졌다. 코로나19로 온 세상이 멈추어 있어야 할 것 같지만, 자연은 계절을 따라 또 나이테를 그려가고 그 품에 모여 사는 농부들은 한 해의 농사를 위해 몸풀기를 시작했다. 바야흐로 일 년 중 가장 바쁜 유월에 들어서며 얼치기농부는 못자리에서 크고 있는 모에 물을 주고, 장에 나가 오이와 가지 모종을 사다 심었다. 이웃에서 구한 고구마 순을 자투리땅에 옮겨 심고, 흙을 돋아 이랑을 만들어 깨 씨도 뿌렸다. 논에 밑거름을 뿌리고 물을 채워 로터리를 치며 모내기 준비를 서둘렀고, 잠시 짬을 내어 지난 가을 심어둔 마늘과 양파를 어머니와 함께 수확했다.

그런데 눈 돌릴 틈 없는 이런 농번기에 올해는 갑작스레 집을 나서야 하는 일들이 많아졌다. 코로나19 확진자가 줄어들면서 ‘생활 속 거리두기’로 방역 정책이 완화되었고, 그러다 보니 그 동안 미뤄두었던 회의와 교육들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여기저기서 연락이 왔지만, 철 따라 짓는 농사에 시간을 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마을에서 함께 해 나가야 할 일들을 준비하는 모임에까지 빠질 수는 없었다. ‘마을교육공동체’ 모임과 ‘마을공동체만들기’ 활동가들의 모임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이른 새벽부터 분주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지만 힘을 모아야 할  일들이기에  일손을  잠시 내려놓고  외출에  나섰다.

전남의 22개 시군에서 마을학교를 운영하는 대표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전남의 미래 교육에 대한 발제와 코로나 19 시대의 마을학교 운영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그 동안 새로운 가능성으로만 여겨져 오던 온라인 교육은 정상적인 등교가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에서 본격적으로 도입되었고, 곧 도래할 것으로 예측되던 4차산업혁명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비대면 교육을 통해 학생들의 생활에 깊숙이 스며들게 되었다. 발제를 맡은 전남교육청 장학관은 머잖아 학교가 사라질 것이라는 부정적인 견해도 있지만 그러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학교가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야 할 상황에서 마을교육공동체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고 강조했다.

교육부의 지침에 따라 개학을 연기한 상황에서 마을학교도 공식적으로는 운영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학교에 갈 수 없는 아이들과 함께 하는 새로운 시도들이 마을 곳곳에서 이루어졌다. 열 명 미만의 학생들과 숲으로 들어가 자연을 배우는 체험을 하는 곳도 있었고, 학생들로부터 각 가정에서 필요한  식재료를 신청 받아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중심으로 공동구매를 하고 ‘드라이브-스루’ 방식으로 전달하는 마을학교도 있었다. 연 초에 계획했던 프로그램들은 진행하기 어려웠지만, 기발한 생각들을 통해 마을은 학교에서 해 줄 수 없는 교육과 돌봄을 해나가고 있었다. 이번 모임을 통해 코로나19라는 위기 속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쉽게 체념할 게 아니라, 방역 지침을 지켜가며 마을에서 할 수 있는 창의적 활동들을 더욱 발굴하고 공유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나누었다.

한편, 전남 마을활동가들의 모임에서는 지금까지 ‘마을 만들기’ 에 대해 가져왔던 오해를 해소하는 강의와 이를 위해 활동가들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에 대해 의견을 모으는 워크숍이 진행되었다. 올해 새로 뽑힌 전라남도마을공동체만들기지원센터 센터장은 마을공동체만들기를 환경 개선이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공모사업으로 오해하고 있다면서 마을은 주민들이 생활의 필요를 함께 해결해 나갈 수 있는 공동체로서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다고 비유했다. 그러면서 마을이 스스로 자립하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이 마을에 대해 지속적으로 공부하고 미래를 계획해 마을만의 고유한 빛깔을 만들어 가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남의 여러 곳에서 모인 마을 활동가들은 마을공동체의 활성화를 돕기 위해 할 수 있는, 그리고 해야 할 일들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아직 자신들을 마을활동가로 부르기에는 많이 부족하다고 여기는 분들도 있었지만, 저마다 주민들이 마을의 참 주인이 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필요한 교육과 활동들을 활발하게 제안했다. 또 마을에서 활동을 하다가 겪게 되는 어려움에 대해 나누면서 마을 구성원들과 마음을 모으는 노하우도 공유했다. 모임 도중에 잠깐이었지만 앞으로 전남의 마을소식과 활동들을 전하게 될 ‘마을방송국’과 마을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벌어지는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책자에 담게 될 연구회에 대한 소개도 이어졌다.

모임을 마치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집으로 향하며 모내기를 준비하고 있는 논을 둘러보았다. 지금이야 기계로 모를 심지만 과거에는 마을 주민 모두가 며칠씩 서로의 논을 돌며 품앗이로 모내기를 했었다. 그 시절에는 마음이 하나로 모이지 않을까 봐 근심할 일도, 학교가 문을 닫아 아이들이 뛰놀 곳을 잃을 일도 없었다. 바쁜 시간을 쪼개어 갔던 이번 모임에서 이루어진 논의들은 마치 속도에 밀려 넋을 잃고 지내온 우리가 아주 멀리까지 흘려보낸 소중한 풍경들을 떠오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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