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다니엘 청년농부·전남 영암

[한국농어민신문]

22개 시·군 곳곳의 마을에서 모아진 물품들을 ‘전라남도 마을이 드리는 행복상자’에 담으면서 갑작스레 한 활동가가 작은 꽃 한 송이를 함께 보내자는 제안을 했다.…외롭고 두려운 일상을 견뎌내고 있을 ‘한 마을 사람들’에게 설핏한 봄내음이라도 전해지길 바라면서 말이다.


조용했던 시골마을 골목에서 아이들이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코로나19로 회관이 굳게 잠긴 터라 매일 마주치던 이웃들의 모습은 보기 어렵지만, 학교에 가지 못한 아이들은 답답한 집을 빠져 나와 들판을 뛰어다닌다. 철부지들은 그렇게 자전거를 타고 논길을 내달리거나 들꽃이 흐드러지게 핀 풀밭에 풀썩 주저앉아 흙놀이를 벌였다. 개학이 미뤄지면서 온 종일 집에서만 지내는 게 지겨워진 얄개들은 어른들의 걱정에는 아랑곳없이 이리저리 마을을 쏘다녔다.

마을 아이들이야 손에 꼽을 정도니 얼굴을 모르지 않지만 얼핏 지나치다 보면 더러 설익은 녀석들도 있었다. 도시에 사는 맞벌이 부모가 유치원이나 학교에 보내지 못한 아이들을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맡긴 것이다. 할머니의 마음은 금이야 옥이야 손주들을 아끼시지만 하루 세끼 입히고 먹이는 일이 어디 그리 쉬운가. 진즉 육아를 졸업한 할머니들께 손주들과의 봄방학은 어쩌면 농사일보다 힘든 일이다. 저희들 때문에 얼이 쏙 빠진 할머니의 사정을 이해라도 한 듯 도시아이들은 이웃집을 기웃거리다가 금세 시골아이들과 친구가 되어 어울려 다녔다. 그나마 아직 확진자가 없는 시골마을이라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지만, 주위에 이런 복을 누리는 아이들이 얼마나 될까. 매일 늘어나는 확진자 수와 이웃 도시에 감염자가 생겼다는 뉴스가 마음 한구석에 불안감을 일으킬 때도 있었지만, 봄을 맞아 농사일에 분주해진 일상을 살다 보면 어느새 코로나19를 까무룩 잊곤 했다.

그런데 페이스북을 통해 접하게 된 대구경북 지역의 상황은 내가 생각지도 못할 정도였다. 어떤 이는 대구에 살고 있는 노모의 건강이 악화되어 고향에 내려갔는데 하필이면 다음 날 코로나 확진자가 갑작스레 늘어나면서 혼란에 빠진 도시의 한 가운데 있게 된 경험을 나누었다. 자신이 감기 증상을 보이자 어머니를 돌보던 요양보호사도 발길을 끊었고, 혹시나 바이러스 감염 진단을 받을 수 있을까 의료기관에 연락해봤지만 당장은 아무런 조치도 받을 수 없다는 안내만 받고 두 주간 고립된 생활을 했다고 한다. 설상가상으로 고향의 노모 곁에 살고 있던 자매가 코로나19에 감염되어 별다른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글쓴이를 비롯해 가족들이 느꼈을 두려움과 당혹감, 크나큰 슬픔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그렇게 코로나19의 실상을 깨닫게 될 즈음, 전남의 한 마을활동가로부터 대구경북 마을을 도울 방법을 함께 찾아보자는 연락이 왔다. 마을에 산다는 것은 이웃의 아픔이 결코 나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는 의미일 텐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구경북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그 취지에 공감한 이들이 알음알음 초대되어 이틀 만에 70여명이 넘는 마을활동가들이 단체 채팅방에 모였다. 구체적으로 누구를 어떻게 도와야 할지 의논하면서 대구의 마을활동가로부터 소식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의료진과 물품이 부족해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기도 하고 경제활동이 중단되면서 겪는 생활의 어려움도 있지만, 바이러스에 전염되지 않을까 경계하며 이웃을 불신하는 분위기가 더욱 안타깝다는 것이었다.

많은 물품을 모아 전달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전남마을들의 마음을 담아 용기와 희망을 전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지난 겨울 할머니들이 아랫목에 앉아 손질한 콩을 보내겠다는 마을에서부터, 방 안에만 있을 독거 장애인들에게 줄 파김치를 새로 담아 보내겠다는 마을도 있었다. 귀농귀촌인과 다문화가족들은 며칠 동안 손수 바느질을 해서 마스크를 만들겠다고 했고, 손 세정제를 만들어 보내겠다는 단체도 있었다. 각 마을의 특산품은 물론 지역의 사회적 기업에서 생산한 생활용품까지 다양한 물품들이 모아졌다. 목포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돌봄교실 친구들이 식사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며 환자를 치료하고 있는 의료진들과 보건당국 담당자들에게 감사와 위로의 메시지가 담긴 편지를 보내겠다고 했다.

22개 시·군 곳곳의 마을에서 모아진 물품들을 ‘전라남도 마을이 드리는 행복상자’에 담으면서 갑작스레 한 활동가가 작은 꽃 한 송이를 함께 보내자는 제안을 했다. 당장 생필품도 부족한데 무슨 감상적인 얘기냐며 나무라는 소리도 있었지만, 우리가 보내려는 것이 무엇인지는 모두 공감하고 있었기에 서둘러 꽃을 준비해 함께 보내기로 했다. 비록 시골 마을 아이들이 들판을 뛰어 다니며 만난 들꽃 향기에 비하지는 못하겠지만, 외롭고 두려운 일상을 견뎌내고 있을 ‘한 마을 사람들’에게 설핏한 봄내음이라도 전해지길 바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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