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다니엘 청년농부·전남 영암

[한국농어민신문]

그 모습을 들여다보며 사람들의 하루하루가 쌓여 축제가 되었구나 싶었다. 수고한 만큼의 소출은 거두지 못했지만, 올해의 날들도 삶이라는 축제의 일부분이 되겠구나 생각하니 헛헛한 마음이 조금이나마 누그러지는 듯 했다.


가을걷이가 끝난 들판이 한가롭기만 하다. 무더위가 끝날 즈음 태풍이 들판을 할퀴고 지나갔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벼 베기가 끝난 논은 아무런 흔적도 없다. 벌써 새싹이 돋아나고 있는 벼 그루터기도 있다. 다만 채워지지 않은 곳간을 바라보는 농부들의 마음이 쓸쓸한 것은 찬바람이 불기 시작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보리씨를 뿌리는 것으로 올 가을 일을 마무리 하려는데, 이웃 마을에서 축제가 열린다는 연락이 왔다. 월출산 남쪽 자락에 있는 유천마을에서 추수 감사제를 연다는 소식이었다. 2013년 귀농한 농부들이 마을 어르신들과 함께 마을기업을 설립하여 친환경 농산물을 도시 회원들에게 보내주는 꾸러미를 시작한 곳이다. 귀농한 청년들은 한 해 농사를 마무리 할 즈음, 꾸러미 회원들과 도시에 사는 친구들을 초대하여 수확 체험을 하고 친환경 농사를 짓는 현장들도 둘러보게 했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해를 지날수록 마을 잔치로 커졌고, 이제 지역의 주민들과 관내 초등학교 학생들까지 모두가 함께 하는 축제가 되었다.

입동이 지나고 첫 서리가 내린 지난 토요일 아침, 쌀쌀한 산골마을에서 풍물패의 가락이 울려 퍼졌다. 신명 나는 길놀이에 이어 개회가 선언되었고, 첫 마당으로 전통 혼례식이 펼쳐졌다. 마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어르신 부부의 결혼식이 옛 방식으로 치러진 것이다. 자녀들을 키우고 손주들을 볼 때까지 알콩달콩 정답게 사신 마을 노부부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 준비한 순서였다. 혼주 자리에는 자녀들이 앉았고, 한복을 곱게 입고 연지 곤지를 찍은 흰 머리의 신랑신부는 쑥스러운 모습이 역력했다.

모두의 축복 속에 결혼식이 끝나고 점심시간이 되었다. 마을 회관 건너편에 있는 비닐하우스에는 멍석이 깔렸고, 접수처에서 구입한 쿠폰으로 마을 어르신들이 직접 담근 김치와 여러 가지 나물, 전과 돼지고기까지 푸짐하게 먹을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는 회관 앞마당에 자리 잡은 부스들을 돌아보았다. 방문객들은 꾸러미에 들어가는 김치를 직접 담아 보고, 떡메를 쳐서 인절미를 만들기도 하며 유쾌한 시간을 보냈다. 한 켠에는 솜사탕을 만드는 기계도 있었는데, 전기를 일으키는 자전거 두 대가 비치되어 열심히 페달을 굴리면 솜사탕을 먹을 수 있었다.

다양한 먹거리뿐만 아니라 전래 놀이를 체험할 수 있는 코너도 있었다. 아이들이 마을 어르신의 도움을 받아 볏짚을 가지고 새끼를 꼬아 신발이나 바구니를 만들거나, 나무로 깎아 만든 팽이를 가지고 팽이 싸움도 했다. 날씬하게 깎인 팽이를 보니 손재주가 좋은 형들이 팽이를 매끈하게 깎던 것을 부러워했던 일이 떠올랐다. 스마트폰을 가지고 노는 요즘 아이들에게는 생소한 부러움이겠지만 말이다. 마당을 한 바퀴 다 돌아볼 즈음 마당 한 가운데 달아 놓았던 박 터트리기가 진행되었다. 하늘을 향해 오자미를 던지던 아이들은 박이 터지자 쏟아지는 꽃가루를 맞으며 사탕과 편지를 주우려고 난리였다.

한 바탕 소동이 그치고 초등학생들의 공연이 이어졌다. 트로트 곡에 맞추어 춤을 추는 귀여운 아이들을 보며 모두들 함박웃음을 지었고, 마을 주민들 중에서는 올해 농사의 시름은 잊은 듯 신나게 몸을 흔드는 이들도 있었다. 공연을 마친 아이들은 마을 앞 논 한 가운데에 마련된 인공수조에서 미꾸라지를 잡았다. 논둑에 서서 지켜보던 젊은 엄마들은 '저걸 잡아 어쩌려는 지 모르겠다'면서도 물속으로 달려 들어가는 아이들을 말리지는 못했다.

마지막 순서는 행운권 추첨이었다. 주민들이 집에서 직접 기른 콩나물부터 향우가 보내 준 여행용 가방까지 풍성한 선물들을 추첨하는데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내 옆에는 서울에서 친구 집에 내려왔다가 축제에 함께 온 가족이 있었는데, 끝까지 자리를 지키더니 토종닭을 선물로 받았다. 아침부터 닭을 기대하고 있었다던 아버지는 자기의 번호가 불리자 소리를 지르며 무대로 뛰어 나갔다. 살아있는 닭을 선물로 받은 아이들이 기뻐하면서도 움찔하는 모습에 모두들 덩달아 즐거워했다.

번호가 불리지 않은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화장실을 찾아 회관 뒤로 돌아갔더니, 골목길을 따라 전시된 주민들의 가족사진이 보였다. 젊은 시절 부부의 모습이나 결혼사진, 아이들의 어린 시절과 온 가족이 함께 찍은 사진들이 눈에 띄었다. 초등학교를 함께 다녔던 친구의 어린 시절 사진도 있어 유독 눈길이 갔다. 지금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지 궁금했다. 누군가는 이 마을에서 나고 자랐지만 타지에 가서 살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타지에서 낳지만 이 마을로 와서 살아가는 모습이 사진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 모습을 들여다보며 사람들의 하루하루가 쌓여 축제가 되었구나 싶었다. 수고한 만큼의 소출은 거두지 못했지만, 올해의 날들도 삶이라는 축제의 일부분이 되겠구나 생각하니 헛헛한 마음이 조금이나마 누그러지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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