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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2030, 그들이 사는 법] 한여름 밤의 하모니카

[한국농어민신문]

박다니엘 청년농부·전남 영암

어제 밤, 며칠 동안 멈췄던 장맛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봄날이 가고 여름을 맞으며 시작된 장마는 모내기를 하느라 수고하고 지친 농부를 잠시 쉬어가게 한다. 헌데 집 앞 텃밭에 옥수수를 심은 후로는 장맛비가 가져다 주는 여유를 마음 편히 즐길 수 없게 되었다.


유기농 벼농사에 전념하면서 집을 에워싼 텃밭을 가꾸는 것이 점점 부담스러워 졌다. 모내기로 바쁜 철에 밭에 심을 작물의 파종시기를 맞춘다는 것이 쉽지 않았고, 어머니는 마당에 풀을 메는 것만으로도 힘겨워 하셨다. 그래서 이웃집 어르신들께 밭을 벌어 보시겠느냐고 여쭤보았다. 할머니들께서는 먼 밭까지 가지 않아도 되고, 터가 크지도 않으니 짬짬이 돌아보실 수 있다면서 좋아라 하셨다.

우리는 한 켠에 가족들이 먹을 오이, 방울토마토, 가지, 쌈채소 등을 심고, 나머지 땅에는 할머니들이 원하시는 고추와 깨,  콩과 팥 등을 심도록 했다. 그런데 장마철에 접어들면서 문제가 생겼다. 이틀이나 사흘 걸러 비가 내리자 어르신들은 지금까지의 방식대로 고추 밭에 농약을 뿌리셨다. 거기다 손수 풀을 메기 힘드니 제초제도 쓰셨다. 밭에 붙어 있는 우리 집에서는 문만 열면 농약 냄새로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그런데도 이미 땅을 내어 드렸기에 도중에 뭐라 말씀드리기가 어려웠다. 설사 친환경 농사법을 소개해 드린다고 해도, 어르신들이 새로운 농사법을 따르기는 쉽지 않을 일이었다. 결국 가을걷이가 마무리되고서야 땅을 돌려주시라 말씀드렸다.

내주었던 밭이 다시 우리 품으로 돌아오자, 어떻게 하면 농약을 쓰지 않고 농사를 지을 수 있을지 고심하게 되었다. 병충해에 강하면서 풀이 좀 나도 수확을 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을 작물을 찾아보다가 옥수수에 주목하게 되었다. 옥수수는 논 일이 시작되기 전인 3월 말 경에 포트에 씨앗을 심어 모종을 기르고 4월 중순 밭에 옮겨 심는다. 모내기로 바쁜 철이 지나 수확을 할 수 있으니 일손 걱정을 덜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판매는 생각지도 않고, 제초제를 안 해도 된다는 점 때문에 유기농 옥수수 농사를 시작했다.

옥수수가 익어갈 즈음이면 거의 매일 밭에 나가 얼마나 여물었는지 살핀다. 여물이 덜든 옥수수도 며칠 만에 딱딱해 지기 때문이다. 알이 튼실히 찬 것을 확인하면 그 날 바로 수확을 시작한다. 매일 숨을 쉬며 자라나기에 알맞은 시기에 따야만 쫀득쫀득하고 고소한 옥수수를 맛볼 수 있다. 그런데 옥수수가 익을 즈음이면 꼭 장맛비가 내린다. 이른 새벽 옥수수 밭으로 들어가면 후텁지근한 기운이 온몸을 감싸고, 해가 떠오르면 이내 땀으로 흠뻑 젖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사람 키를 훌쩍 넘는 옥수수 잎사귀에 얼굴이 쓸리지 않으려 양파자루를 머리에 뒤집어 쓰고 밭고랑으로 들어가다 보니 종종 숨이 턱턱 막히기도 한다. 그렇지만 옥수수를 꺾는 손맛에 이마에 땀을 훔치며 풀숲 사이를 헤매다 보면 어느덧 점심 시간이 된다.

한 나절 동안 수확한 옥수수는 미리 예약을 한 분들께 택배로 보내드린다. 인터넷 판매를 시작한 첫해에는 고객으로부터 옥수수에 벌레가 있다느니, 크기가 작고 여물이 덜 든 것들도 있다느니 하는 불평들도 많이 들었다. 그 때마다 농약을 치지 않으니 벌레가 있을 수 있고, 화학비료를 쓰지 않으니 옥수수 크기가 제각각 일 수 밖에는 없다고 설명을 드렸다. 그럼에도 막무가내인 손님들께는 환불을 해드렸다. 그래서 다음 해부터는 유기농 옥수수 재배 과정에 대해 미리 알려 드리거나 때때로 짧은 편지와 안내문을 택배 상자에 넣어 보냈다. 이후, 예약이 줄어들긴 했지만  옥수수를 받아보고 항의하시는 분은 없었다.

인터넷 판매를 하기 전에는 공판장으로 옥수수를 가져간 적이 있었는데, 기름값도 벌기 어려워 다시는 가지 않았다. 옥수수를 따서 두면 하루이틀만 지나도 금방 딱딱해져 부드러운 식감을 맛 볼 수 없기에 며칠 두었다가 보내드릴 순 없었다. 결국 수확 당일까지 구입의사를 밝힌 분들께만 옥수수를 보내드리고 남은 것들은 동네 어르신들과 나누어 먹기로 했다. 평소 살뜰히 챙기지 못했던 이웃사촌들과 함께 맛있는 하모니카를 불 수 있는 한 여름 밤이면 족했다. 별 것 아닌데도 고마워 하시는 어르신들의 덕담을 듣다 보면 새벽부터 쌓인 피로를 시원하게 날려버릴 수 있었다.

그나저나 장맛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하니 어제 새벽까지 베다 남은 옥수수대를 언제 다 마무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옥수수대 사이에 심어놓은 팥 씨앗이 싹을 틔우고 자라려면 옥수숫대를 얼른 베어줘야 할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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