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다니엘 청년농부·전남 영암

[한국농어민신문]

친환경 농사의 기본은 벌레나 균을 완전히 박멸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한 개체가 다른 작물의 성장에 피해를 입힐 만큼 우세하지 않도록 생태계의 균형을 유지시켜 작물들이 자랄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 기후 현상들이 나타나면서 이러한 균형을 유지하는 일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보름 조금 넘게 걸린 모내기가 마무리 되었다. 4월 말부터 볍씨를 골라 소독을 하고, 종자를 틔워 모판을 만든 것을 생각하면 거의 두 달에 걸친 대장정을 마친 것이다. 옛 어른들은 모만 잘 키워도 한해 농사의 반은 했다라고 말하곤 하셨는데, 그에 따르자면 올해 농사도 절반을 더했다. 마지막으로 논을 갈던 트랙터와 모를 심느라 흙탕물을 뒤집어 쓴 이앙기를 깨끗하게 씻겨 창고 한 켠에 들여 놓으니 정말 올해 일은 다 한 것 같이 홀가분하다.

여느 해 같으면 당분간은 이른 새벽과 해질녘 논을 돌아보면 된다. 논의 물 높이를 조절해 우렁이들이 풀을 잘 뜯을 수 있게 해 주고, 군데군데 모가 빠진 부분을 남은 모를 심어 메꿔 준다. 간혹 우렁이가 먹지 않는 풀들이 나는 논에서 김을 매고, 다시 자라기 시작한 논둑의 풀을 베는 일이 버겁기는 하지만, 그래도 한낮에는 쉬엄쉬엄 한가로이 보낼 수 있다. 그러다 장맛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며칠간은 하염없이 낮잠을 청하며 지친 몸을 쉬어 가기도 한다.

하지만 올해는 그럴 짬을 낼 틈도 없이 이 논 저 논을 쫓아다니며 방제를 시작해야 했다. 모내기를 마친 모들이 뿌리도 내리기 전에 먹노린재가 기승을 부렸기 때문이다. 늦게 모내기를 시작한 우리네는 아직 일을 다 마치기 전인데, 모내기를 마친 논을 돌아보시던 이웃 농부들은 벌써부터 야단법석들이었다. 먹노린재가 논 마다 깔려 버렸다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농업기술센터에서도 먹노린재 개체 수를 줄여 큰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하기 위해 시기를 놓치지 않고 방제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예찰을 강화해 줄 것을 강조하는 문자를 여러 차례 보내왔다. 정보가 빠른 농가에서는 농업기술원의 연구 결과에 따라 먹노린재가 좋아한다는 옥수수를 논둑 중간 중간에 심기도 했고, 약통을 등에 지고 논둑을 돌아다니며 부지런히 약을 하는 농가도 있었다.

모내기를 마치고 논 속으로 뻗어가는 풀을 정리하기 위해 논을 둘러보며 다니다 보니 우리 논에도 먹노린재가 서 너 마리씩 눈에 띄었다. 이웃 농가들처럼 심각한 정도는 아니지만, 그냥 두었다가 번식하기 시작하면 그 때는 정말 손을 쓸 수 없게 되기에, 서둘러 친환경 약재를 주문했다. 작년에도 먹노린재가 갑자기 많아져 벼 잎들이 다 크기도 전에 말라 꼬꾸라진 것을 생각하면 모내기로 쌓인 피로가 풀리기를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며칠에 걸쳐 이 논 저 논을 쫓아다니며 방제를 하면서도 마음이 놓이지는 않았다. 친환경 약재로 먹노린재가 얼마나 잡힐지 모르기 때문이다. 농업기술센터에서는 여러 종류의 친환경 약재를 바꾸어가며 사용할 것을 권고하고 있지만, 이웃 마을 이장님이 친환경 약재의 원재료를 공급하는 업체에 문의해 본 결과 우리나라에서 사용되는 친환경 약재 중 먹노린재를 완전히 퇴치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했단다.

실제로 드론이나 헬기를 이용해 친환경 약재를 살포할 때는 먹노린재들이 떠올라 죽은 줄 알았는데, 시간이 좀 지나면 다시 살아나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친환경 농사를 짓는 농민들 사이에서는 먹노린재가 더 심해지면 친환경을 포기하고 농약을 사용해야지 어쩌겠느냐며 걱정 어린 소리도 들린다.

사실 약재로 해충을 없애 농사를 지으려는 것은 친환경의 원리는 아니다. 친환경 농사의 기본은 벌레나 균을 완전히 박멸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한 개체가 다른 작물의 성장에 피해를 입힐 만큼 우세하지 않도록 생태계의 균형을 유지시켜 작물들이 자랄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주는 것이다. 식물 추출물 등의 약재를 사용하는 것도 해충들을 회피해 작물에 피해를 입히지 않도록 예방하는 차원이다. 그런데 이상 기후 현상들이 나타나면서 이러한 균형을 유지하는 일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먹노린재의 경우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리 심각한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겨울이 되었는데도 따뜻한 날들이 계속되면서 먹노린재가 야산이나 풀숲 근처에 월동하며 번식을 했고, 더위가 찾아오자 벼가 아직 자라기도 전인데 먹이를 찾아 논으로 내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옛날에는 정월 초하루가 되면 논과 밭둑의 마른 풀을 태우는 쥐불놀이와 같은 풍습을 통해 해충들의 번식지를 제거하여 농사에 피해를 입히지 않도록 했다. 그런데 요즘은 겨울철 산불예방과 봄철 미세먼지 발생 등의 이유로 이러한 세시풍속 행사들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니 이제 와서 먹노린재를 친환경 약재로 방제한다고 하지만 역부족인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당장 화학농약을 사용한다면 먹노린재야 잡겠지만, 균형을 잃어버린 생태계의 파괴를 더 재촉할 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 다만 올 한해도 별 피해 없이 지나가기를 바랄 뿐인데, 과연 언제까지 이렇게 버틸 수 있을까. 농사도 우리네 삶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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