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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2030, 그들이 사는 법] 이 땅을 지키며 사는 사람들부터박다니엘 청년농부·전남 영암

[한국농어민신문]

문득 지금까지 농촌에서 땅을 일구어 온 농부들은 이런 자연의 아름다움을 얼마나 누리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땅을 지키며 사는 사람들부터 치유를 경험하는 농업이 되었으면 하는 것은 너무 큰 꿈일까.


한 해 농사를 마무리하는 농부들에게서 흥이 나지 않는다. 겉으로 보기에는 큰 탈 없이 벼가 잘 자란 것 같았는데, 실제 수확을 해 보니 수확량이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 차례의 태풍이 지나갔지만 그나마 우리 지역을 직접 관통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사상 최장 장마로 인해 일조량이 부족했던 탓인지 알곡들이 여물지 않았다. 이 정도일 줄 알았으면 가입해 놓았던 보험이라도 신고했어야 하는데, 수확을 해 버린 경우에는 피해 조사를 할 수 없어 접수조차 받지 않는다고 했다. 면소재지로 가는 길에 자연재해 피해에 대한 근본 대책을 마련하라는 농민회의 현수막이 보였다. 풍요로움과는 거리가 멀어진 들판을 바라보며 당혹해 하는 농민들의 모습 같아 씁쓸하기만 했다.

벼 수확이 끝나갈 즈음 여기저기서 교육과 회의 소식이 들려 왔다. 코로나19 감염 예방단계가 1단계로 낮추어지면서 그 동안 미루어졌던 행사들이 봇물 터지듯 했다. 지난 여름 선진지 마을 견학을 갔던 나주 화탑마을에서도 ‘치유농업아카데미’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가을걷이를 다 마치고 오랜만에 집을 나섰다. 행사 시간에 맞춰 간신히 마을에 도착했는데, 여러 어르신들이 교육장으로 들어오셨다. 지금까지 마을에서 진행한 프로그램에 참여해 오신 듯 했다. 나처럼 아카데미에 참여하기 위해 인근에서 일부러 찾아온 젊은이들도 몇 있었지만, 대다수는 이 마을 어르신들이라는 점이 놀라웠다.

오전에는 농촌진흥청에서 오신 선생님께서 치유농업의 개념과 현황에 대해 강의해 주셨다. 올해 3월 법률이 제정되면서 치유농업은 활성화의 계기가 마련되었지만, 아직까지는 연구개발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단계였다. 처음 이 분야의 연구를 시작했던 1990년대에는 농업 생산성 향상에만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치유농업과 관련된 연구들을 발표하면 상급자들로부터 핀잔을 많이 듣기도 했다고 한다. 종자개량이나 새로운 농법을 통해 생산량 증대를 목표로 했던 당시의 상황에서 객관적인 지표로 측정하기 힘든 농업의 정서적인 효과들에 대한 연구는 충분히 설득력을 갖지 못한,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로 여겨졌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최근에는 우울증을 겪거나 정서적인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이들이 삶의 의미를 찾고 건강을 회복하기 위한 공간으로서 농촌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한편 경제적인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과도한 농약과 비료를 투입했던 기존의 농업방식으로는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생각들이 점차 퍼져가고, 이러한 시각의 변화는 인위적인 노력을 통한 농산물 생산보다는 자연의 순리에 따라 산물을 얻으려는 시도들로 이어지고 있다. 바야흐로 2010년 이후에는 농업을 국민의 신체적인 부분과 함께 정서적인 건강을 증진시키는 치유산업으로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도시에서 생활하면서도 텃밭을 가꾸며 자급자족을 추구하는 도시농업이라든지, 사회에서 소외된 약자들을 공동체의 일원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사회적 농업이 대두되고 있다.

우리보다 앞서 이러한 고민을 했던 유럽의 국가들에서도 농업의 다양한 잠재력에 주목했다. 네덜란드에서는 2010년 당시 치유 농장들이 1000여 개가 넘을 정도로 확대되어 신체적인 재활이나 정서적인 안정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다시 사회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수행해 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치유농장들이 전국에 걸쳐 나타나고 있는데, 농진청에서는 현장의 어려움을 듣고 정책에 반영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렇지만 치유농장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농업 생산 이외에 교육활동에 필요한 시설을 갖추어야 하는데 타 부처의 관계 법령들을 준수해야 하기에 농가들이 주저하거나 포기하는 사례들도 많다고 한다.

오후에는 화탑 마을에서 올해 시범사업으로 진행한 치유농업 프로그램이 소개되었다. 장애를 가지고 있는 지역의 친구들과 함께 원예치료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이들은 식물을 가꾸는 활동들을 반복해도 매번 새롭게 느끼며, 속도는 더디지만 조금씩 숙달되어 가고 있다고 했다. 내년에는 이 친구들과 야외로 나가 허브정원을 꾸미고, 마을 인근의 산을 체험과 힐링의 공간으로 가꾸어 갈 계획이라고 한다. 마지막 시간에는 원예치료의 이론과 사례들에 관한 강의가 있었다. 농촌 마을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꽃과 나무 등의 소재를 이용한 활동을 통해 참여자들이 심리적인 안정을 찾고, 생명에 대한 책임감을 키우는 재활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강사 선생님께서는 프로그램에 참여한 분들이 식물들과 교감을 통해 변화해가는 모습을 보며 보람을 느낀다고 하셨다.

하루 종일 강의를 듣고 나오니, 수확이 끝난 논가에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억새가 눈에 들어왔다. 운전석에 앉아 따사로운 가을 햇살이 비추고 있는 마을의 풍경을 보니 한 폭의 그림 같았다. 강의를 통해 들은 치유의 효과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문득 지금까지 농촌에서 땅을 일구어 온 농부들은 이런 자연의 아름다움을 얼마나 누리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땅을 지키며 사는 사람들부터 치유를 경험하는 농업이 되었으면 하는 것은 너무 큰 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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