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테마 교육&문화
[조용섭의 지리산이야기 <25>달궁 이야기] 2천년 전 세운 ‘달의 궁전’을 찾아서

[한국농어민신문]

▲ 달궁계곡. 달궁힐링야영장 옆에 있는 계곡 풍경. 인근에 빨치산 남원군당 달궁비트가 있었던 광산골 입구가 있다.

고리봉·만복대·반야봉 주변
마한의 효왕이 쌓았다는 도성
오랜 무관심에 버려진 듯 해도
최근 유물유적 발견 등 성과 


한바탕 벌어진 철쭉 꽃불잔치의 여운이 서서히 사그라져가는 5월 하순, 지리산자락은 이제 온통 눈 시린 초록 융단을 펼치며, 어느새 다가온 여름 맞이에 분주한 모습이다. 뜨거운 햇살이 한풀 꺾인 오후, 지난달에 이어 또 다시 뱀사골 입구의 반선으로 들어섰다. 풀리지 않는 이야기 때문에 외면하여 오던 미스터리의 공간 ‘달궁마을’을 찾기 위함이다. 무려 2천 년 전 마한의 효왕이 백제와 진한, 그리고 변한의 세력을 피하기 위해, 고리봉과 만복대, 반야봉의 산줄기에 둘러싸여 천험의 요새를 이루는 이 지리산 자락에 들어와 도성을 쌓고, 그때 ‘달의 궁전’을 세웠다는 것이다. 신비함마저 느껴지는 이 이름은 음차 되었는지 현재는 달궁으로 표기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은 놀랍게도 청허당 서산대사(휴정)가 1560년 지은 「지리산 황령암기」라는 기록에 나온다. 이 글은 첫머리의 웅혼한 문장으로 감동을 주기도 하지만, 지리산이 세상에 처음 드러나는 ‘지리산 개산’의 역사적 상징성과, 정령과 황령, 황령암이라는 장소성이 더해져 지리산 역사복원에 매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산은 혼돈(태초에 하늘과 땅이 갈리지 않았을 때의 모양)의 뼈요, 바다는 혼돈의 피다. 동해에 한 산이 있으니 이름은 지리산이라 하고, 그 산의 북쪽 기슭에 한 봉우리가 있으니 이름은 반야봉이라 하며 그 봉우리 좌우에 두 재가 있으니 이름은 황령과 정령이라 한다. 옛날에 한나라 소제가 즉위한 지 3년에, 마한의 왕이 진한과 변한의 난리를 피하여 이곳에 도성을 쌓을 때, 황·정의 두 장군을 시켜 공사를 감독하였으므로 두 사람의 성을 따서 재(고개)를 이름하고, 도성을 72년 동안 보호하였다. 그 뒤 신라 진지왕  원년에 운집대사가 중국에서 나와 황령 남쪽에 절을 세우고, 그 이름을 따라 황령암이라 하였다.”(서산대사/지리산 황령암기)

조선 중종 대인 1538년, 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절집들은 모조리 불태워버리는 이른바 ‘무술법란’ 때에 훼철되었던 황령암을 성희법사가 중건하였을 때 서산대사가 남긴 글인데, 법당, 연못 등의 구체적인 묘사를 보아 낙성식에 참석을 하였던 듯하다. 정령은 지금의 정령치휴게소 있는 곳을 말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면 진지왕 원년(576년)부터 이 깊은 지리산 자락에 존재하였다는 황령암은 어디에 있었을까. 또 황령은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459년 전 기록에 등장하는 달궁을 중심으로 한 공간은 지자체나 학계의 무관심과 침묵이 오랫동안 이어져 마치 버림받은 듯한 느낌마저 든다. 그러나 지리산의 역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동아리를 결성하여 벌써 수많은 답사를 하였고, 또 유물유적 등의 발견 등 상당한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요즘 대부분의 지자체가 생태와 역사문화가 어우러지는 ‘이야기가 있는 길’ 조성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스토리텔링 콘텐츠 발굴과 제작에 적극적이다. 어느 정도의 검증과 확인은 필요하겠지만, 재야 연구자나 활동가들이 거둔 성과를 활용한 스토리는 픽션의 그것보다 훨씬 설득력이 있고 임팩트도 강해 많은 문화수요자들을 감동시킬 수 있을 것이다.  

오랜만에 들른 달궁마을 주차장 주변으로는 자동차야영장과 야영장이 잘 조성되어 지리산 관광의 주요 지역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필자는 18년 전인 2001년 5월 이맘때쯤, 이곳 주차장에서 처음으로 개최된 ‘생명평화 민족화해 지리산위령제’에 참여한 적이 있다. 6.25전쟁 발발 50여년 만에 좌우 이데올로기를 떠나 지리산에서 이념대립으로 숨진 모든 영혼을 달래는 첫 위령제였다. 그러고 보니 남원 출신으로 전북도당 남원군당 간부를 지낸 최정범의 일대기인 『지리산 달궁 비트』에 의하면 남원군당의 비트가 바로 이곳 부근 광산골 입구에 있었고, 가끔 토벌대의 비행기가 날아와 포격을 하고 갔다고 전한다. 이렇듯 아득한 지리산 심산유곡에 위치한 달궁은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시대의 흐름을 조금도 비켜가지 않은 역사의 현장으로 존재했던 것이다.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국농어민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icon관련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