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물길 모이는 만수천 
옛사람 흔적따라 자연 교감


유난히 뜨거운 초여름이다. 지리산자락 운봉(雲峰)을 찾은 6월 중순의 어느 날, 당초 계획과는 달리 차에서 내리지 않고 곧장 남원시 산내면 ‘지리산로(路)’로 향했다. 이 길은 지리산 산악관광 1번지로 잘 알려진 ‘뱀사골’로 들어서는 길이고, 이번 호 지리산 이야기 ‘만수천 물길과의 만남’ 대부분을 함께하는 길이다.  

남원시 산내면소재지에서 ‘지리산로’ 도로를 타고 뱀사골 방향으로 들어가다 보면, 왼쪽으로 강폭이 너른 하천이 끝까지 함께 따라가게 된다. 바로 ‘만수천’이다. 지리산의 수많은 물길이 모인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뜻밖에 목숨 수(壽)자를 쓰고 있다.

지리산으로 들어가기 위해 수없이 지나쳤던 이곳이 필자에게 처음으로 다가온 것은, 이 하천의 ‘도탄(桃灘)’이라는 곳에서 초옥을 짓고 살아가던 조선시대 한 선비가 쓴 ‘유두류록(遊頭流錄)’이라는 글을 접하면서이다. 그이는 바로 도탄 변사정(桃灘 邊士貞, 1529~1596)이다. 변사정이 호(號)로도 사용하고 있는 ‘도탄’이라는 곳은 만수천 어딘가 ‘복숭아나무가 많고, 물소리가 세차게 들리는 여울이 있는 곳’을 의미한다.

도탄은 현재 남원시 산내면 내령리의 외령마을 일대이고, ‘영대촌’이라는 이름으로 지리산유람록에 가끔 등장하는 곳이다. 변사정은 27세에 이곳에 들어와 농사짓고 독서하며 지냈으며, 임진왜란 때는 의병장으로 활약한 인물이다. 남원사람으로 역시 의병장으로 활약했던 양대박은 1586년 9월 이곳을 들렀다가, ‘산옹(山翁, 변사정을 일컬음)이 이곳을 떠나자 이 주변의 모든 것이 황량해졌다’라는 글을 남기고 있다. 1580년 변사정이 도탄을 찾은 지인들과 함께 지리산 유람을 한 것을 비추어 보면, 그는 50대 초중반 즈음에 이곳 도탄을 떠난 것으로 짐작된다. 

만수천은 뱀사골 입구 반선에서 지리산 뱀사골과 달궁계곡의 옥수(玉水)가 합쳐지며 흐르다가 실상사 앞에서 함양 마천으로 방향을 튼다. 같은 물길이지만 이름도 ‘임천’으로 바뀌며 백무동계곡, 칠선계곡 등 지리산 북부자락 깊은 골짜기들의 물을 차례로 받아들이며 흐르다가, 남강으로 흘러 낙동강을 이루며 부산 앞바다로 향한다. 

뜻밖에 만수천은 트레킹하기에 좋은 여건들을 지니고 있다. 하천 곳곳에 크고 작은 바위들이 많아 이를 디디며 진행하는 하천트레킹의 묘미를 잘 느낄 수 있다. 진행방향 왼쪽 강가로는 숲이 우거져 있고, 군데군데 넓은 공간도 있어 휴식하기에도 좋다. 또 오른쪽으로는 도로(지리산로)로 올라설 수 있어 상황에 따라 답사거리와 시간을 조정하기에도 용이하다. 트레킹의 출발은 산내면사무소에서 약 2Km 지점에 있는 ‘순국경찰관합동묘지’ 약 200m 위 지점에서 만수천으로 내려서서 하는 게 좋다.

도탄 변사정의 흔적을 알 수 있는 바위 각자(桃灘卞先生遺基-도탄변선생유기)도 이 부근에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거대한 바위에 억겁의 시간과 물길이 빚어놓은 기묘한 문양과 예사롭지 않은 형상을 들여다보는 재미도 적지 않다.

출발점에서 산속 오지마을 독가촌인 개선마을 가는 다리가 걸쳐져 있는 곳(지리산 뱀사골 고로쇠 영농조합 창고 인근)까지는 약 3.5km 거리이고, 산내면 입석리 만수천 하류에서 최상류인 뱀사골 반선까지는 도로 기준으로 약 8km 정도 거리에 있다. 트레킹 시간과 동행자들의 구성을 고려해 코스를 다양하게 조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산행(트레킹)이나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하천 트레킹을 할 때는 무엇보다도 안전수칙에 잘 따라야 한다. 비가 많이 내릴 때는 무조건 운행을 중지하여야 하고, 홀로 답사하기보다는 여럿이 모여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보조자일(로프) 정도는 준비해서 진행하였으면 좋겠다. 올 여름, 지리산 만수천을 걸으면서 이곳이 지니고 있는 자연세계와 교감하며, 오롯한 정신으로 한 시대를 살다간 옛사람의 흔적을 더듬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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