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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섭의 지리산 이야기 <4>백무동(百武洞) 가는 길/웅장한 풍경 감상하며 '탁족' 즐겨
   
 

조선팔도 무속인 배출 근원
오랫동안 설화 전해져 온 곳
4계절 내내 사람들 많이 모여


장마와 폭염이 정신없이 오고가는 사이, 어느새 7월도 훌쩍 하순으로 접어들었다. 습기를 머금은 짙은 숲에서 이명(耳鳴)처럼 다가온 매미소리와 화사한 꽃망울을 터뜨리는 배롱나무에서 흐트러짐 없는 세월의 흐름을 느끼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지리산 서북쪽, ‘노고단과 반야봉’의 깊은 산자락에서 발원한 물길이 모인 만수천이 ‘임천’이라는 이름으로 바뀌면서 함양군으로 들어서는 곳이 마천면(馬川面)이다. 이곳에는 지리산 주능선 중북부 산자락 아래에 있는 천왕봉, 세석, 벽소령 등으로 오르는 산길이 열려 있다. 그리고 이 산자락에 드리워진 칠선계곡, 백무동계곡 등 웅장하고 아름다운 계곡으로 4계절 내내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들고 있다.

남원시 산내면 실상사에서 도로를 따라 잠시 동쪽으로 나아가면 함양군 마천면으로 들어서며, 곧 ‘지리방장 제일금대’라는 표지석을 만난다. 이곳에서 왼쪽으로 약 2.5km 좁은 산길 도로를 따라 오르면 ‘금대암’에 닿게 되는데, 금대암은 신라 태종 무열왕 때 창건된 고찰로, 지리산 천왕봉을 비롯한 주능선의 산줄기를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지리방장(智異方丈)’이라는 의미는 ‘지리산과 방장산’, 즉 둘 다 지리산을 일컫는다.

백무동으로 들어서는 다리(가흥교)를 지나면 오른쪽으로 삼정산 자락 군자리 가는 길이 나온다. 예전 ‘군자사’라는 절집이 있던 곳으로,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유람록에 많이 등장하는 곳이다. 1686년 4월 15일, 우담 정시한은 군자사에 도착한 후, 금대암과 무주암 등 근처의 사암(寺庵)에 머물며 지낼 곳을 찾는데, 그가 남긴 ‘산중일기’에서 그 모습을 잘 볼 수 있다. 산중일기에 나오는 암자들은 ‘지리산 7암자산행’이라는 테마산행으로 몇 해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우담이 머물거나 방문했던 삼정산 자락 도솔암, 영원사, 상무주암, 문수암, 삼불사, 약수암, 실상사의 7개 사암을 잇는 코스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지리산 유람에 있어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곳이 바로 ‘군자사’이다. 군자사는 지금 폐사되고 없으나, 함양군 마천면 군자리라는 마을 이름을 남겨 그 흔적을 가늠할 수 있다. 유람록에 나타나듯 가마를 메는 스님, 길 안내를 하는 스님까지 있었을 정도이니 사찰의 규모도 꽤 컸을 것으로 짐작된다. 언젠가 군자사 발굴을 위한 조사에 착수했으나, 현재의 마을 집들 대부분이 옛 절터여서 더 이상의 발굴을 포기했다고 한다. 아무튼 군자사는 지리산 유람에 나선 사대부들에게는 ‘재워주고, 먹여주고, 길 안내해주고, 또 가마로 데려다주기’도 하는 그야말로 지리산 유람 풀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곳이었다.

군자리를 벗어나 지리산 주능선 산자락 쪽으로 가다보면 ‘송알삼거리’가 나온다. 백무동 가는 길은 왼쪽 강청마을 방향으로 들어서야 한다. 백무동이라는 이름은 百巫洞, 白霧洞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지금은 百武洞으로 쓰고 있다. ‘법우화상과 천왕성모’가 결합해 낳은 딸들이 백무촌을 이루고, 조선팔도 무속인들을 배출하는 근원이 되었다는 설화가 오랫동안 전해져 내려온다.

마을 어르신들의 말에 의하면, 이곳 백무동에 있던 한 할머니로부터 ‘증명서’를 발급받아야만 전국에서 무속활동을 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한다. 느티나무 산장에서 세석 가는 길 2.7Km 거리에 있는 가내소폭포를 다녀오려면 왕복 약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이 길을 걸으며 웅장하고 아름다운 백무동계곡의 풍경을 감상하고 탁족을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이 여름에 백무동을 찾은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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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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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랑자 2017-08-31 11:00:14

    지금 이글이 우리칭구 조용섭이 쓴 글 인가?
    백무동 정말 신선들이 사는 곳이지요.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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