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군과 백성들이 순절한 현장

▲ 여원재 옛길에 있는 '유정부과' 각석(刻石). ‘왜군을 정벌하러온 명나라 장수 유정이 1594년 3월 두 번 째 지나가다’라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원문은 ‘萬曆 二十二年 甲午歲 季春月 征倭 都督 豫障 省吾 劉綎 復過((만력 이십이년 갑오세 계춘월 정왜 도독 예장 성오 유정 부과)이다. 이곳에서 300m 길 아래에는 유정이 1593년 5월에 지나갔다는 내용의 유정과차(劉綎過此) 각석이 있다.

“4월24일 맑음. 일찍 출발하여 남원에 이르렀는데, 고을에서 15리 쯤 되는 곳에서 정철(丁哲) 등을 만났다. 남원부 5리 안까지 이르러서 내가 가는 것을 송별하였고, 나는 곧장 10리 밖의 동쪽(東面) 이희경(李喜慶)의 종 집으로 갔다. 애통한 심정을 어찌하리오.”[난중일기]

의금부에 투옥된 후 28일 만인 1597년(정유년) 4월 1일(음력) 석방된 이순신 장군은 이틀을 한양에 머문 후, 4월 3일 권율 도원수 휘하에서 백의종군을 하기 위하여 경남 합천(초계)으로 향한다. 이 남행길 백의종군 노정에서 출발 22일 만에 남원으로 들어선 것이다. 남원부로 들어선 곳은 남원성 북문, 지금은 폐역이 된 옛남원역 바로 그 자리이다. 장군이 이곳을 지나간 후 넉 달도 채 지나지 않아 남원성은 일본군에 의해 함락되는데(8월 16일), 북문은 전라병사 이복남을 비롯한 조선군과 백성들 대부분이 순절한 역사의 현장이다. 일기에서 고을 앞 15리쯤에서 만났다고 하는 정철은 여수 출신으로, 임진왜란이 발발하였을 때 형제 및 조카들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이순신 장군 휘하에서 활약하였고, 또 장군이 의금부에 투옥된 후에는 구명운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선 인물이다.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하며 남원에 도착하였을 무렵은 전쟁(정유재란)에 대비하여 군량미를 확보하고 백성들을 위무하기 위하여 전라도로 내려온 호조판서 김수가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여러 기록에 나온다. 아마도 고을 전체가 팽팽한 긴장감에 싸여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장군은 정철 일행들과의 대화나 당시 남원부의 상황에 대해서는 일절 이야기를 남기지 않고 있다. 장군이 남원부에 들어와 하룻밤을 머문 동쪽 10리 밖은 지금의 남원시 월락동 즈음으로 추정된다.

지리산권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 첫 구간은 옛남원역에서 운봉초등학교까지로 잡았다. 옛남원역 앞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법원(남원지원)4거리 쪽으로 향하며 백의종군로가 시작된다. 4거리에서는 ‘용성로’를 만나는데 이 길을 따라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시외버스터미널-동림4거리 방향으로 진행한다. ‘용성’은 남원의 오래된 역사를 상징하는 옛이름이다. 동림4거리에서는 좁고 복잡한 시가지를 피해 남쪽 약 100여m 거리에서 용성로와 나란히 나있는 ‘요천로’로 길이 이어져있다.

백의종군로는 요천을 가로지르는 동림교에서 ‘요천숲길’을 따라 월락3거리로 향한다. 월락3거리에서는 남원경찰서 도통지구대 쪽으로 길을 건너 오른쪽 ‘이백로’로 방향을 튼다. 이백면사무소로 이어지는 길이다. 대부분의 마을이 백두대간 산자락과 인접해있는 이백면은 백파면과 백암면이 합쳐지며 지어진 이름인데, 백두대간에 백의종군로가 더해져 ‘백(白)’이라는 의미를 4개나 지닌 곳이 되겠다. 

이백면사무소 앞에서 진행방향 왼쪽에 있는 ‘과립교’를 건너 이백초등학교 앞을 지나면, 농로로 길이 이어지며 목가리 마을회관 앞에 닿는다. 이곳은 지금은 매우 한적한 시골마을이지만, 24번 국도가 개통되기 전만해도 양조장과 주막이 있을 정도로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했던 곳이다. 여원재 고개 아래 남원과 운봉·함양을 잇는 조선시대 대로인 ‘통영별로’가 지나가던 곳이다.

목가리에서 양가저수지에 이르면 여원재 옛길이 나온다. 백의종군로를 조성하며 복원된 길이다. 산자락으로 나있는 아름다운 길이지만, 일부 사유지를 우회하는 곳으로는 작은 계곡을 건너야하는 곳이 있으니 진행에 주의를 요한다. 약 3km에 이르는 이 길에서는 한반도를 뒤흔든 역사적 사건과 관련된 옛사람들의 흔적을 만나게 된다.

양가저수지에서 약 40분 정도(2km) 진행하면 임진왜란 때에 구원병으로 참전한 명나라 장수 유정이 지나갔다는 내용이 새겨진 거대한 바위, 즉 ‘유정과차(劉綎過此)’, ‘유정부과(劉綎復過)’ 각석(刻石)을 만나고, ‘나주임씨삼세충의비’와 ‘여원치마애불상’을 차례로 지나게 된다. ‘여원치마애불상’이 있는 곳은 고려 말 황산전투에서 왜구를 토벌한 이성계의 전설이 서려있는 곳이다.

마애불상을 지나면 백두대간 고개 여원재가 지척이다. 고개를 넘으면 운봉으로 들어서게 되고, 목적지인 운봉초등학교까지는 이제 약 3.5km 남게 된다.  갓길이 없는 2차선 24번 국도를 걸어야 하니 진행에 주의를 기울여야겠다. 경마축산교 앞 마산교를 지나 사과과수원 있는 곳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농로를 걷다보면 서림공원을 만난다. 이제 500m만 진행하면 목적지인 운봉초등학교에 닿는다. 구간 거리 약 17km, 시간은 5시간 정도 소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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