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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섭의 지리산이야기 <15>역사(歷史)로 걷는 길, 운봉(雲峰)②] ‘백의종군’ 충무공이 희망 싹틔운 곳
   
▲ 남원시 이백면 여원재 옛길에 있는 '유정과차(劉綎過此) 각석. '1593년 왜군을 정벌하러 온 명나라장수 유정이 이곳을 지나가다'라는 내용이다. 이듬해인 1594년 유정이 두 번째 지나가며 남겼다는 ‘유정부과(劉綎復過)’ 바위글씨도 바로 위에 있다. 남원시에서는 2017년 '충무공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를 복원하며 설명문을 세워놓았다.

투옥 뒤 합천 가던 이순신 장군
‘여원재’ 고개 넘어 운봉으로
다음해 유정과 왜교성 전투 협공


1592년 4월 14일, 부산 앞바다로 쳐들어온 왜군에 의해 한반도 전역은 임진왜란이라는 미증유의 전란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게 된다. 어둠처럼 번져가던 참혹한 전쟁의 기운은 지리산자락을 또 다시 공포의 분위기로 에워싸게 되었다. 고려 말 왜구와의 전쟁이 있은 지 212년만의 일이다.  

명나라와 왜군간의 강화협상이 시작되면서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던 전쟁은 1593년 6월, 오히려 지리산자락을 초긴장 상태로 몰아가게 된다. 10만 대군의 왜군이 진주성을 재침공한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진주성 후방, 전라도로 이어지는 길목에서 왜군과 맞닥뜨려야 하는 함양과 운봉지역은 극도의 공포와 긴장감에 휩싸인다. 함양 선비 정경운(鄭慶雲)은 그의 저서 ‘고대일록(孤臺日錄)’에 당시의 절망적인 상황과, 무기력한 조선군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권율(權慄)과 최원, 전라 방어사(全羅防禦使) 이자복(李自福)은 흩어져 달아나 아예 군사들을 통제할 뜻이 없었다. 사람들이 이 소식을 전해 듣고 놀라 모두가 흩어지려는 생각을 품었다. (중략) 사람들이 모두 두려움에 떨었고, 짐을 지고 달아나는 자의 행렬은 앞뒤로 백여 리에 이르고 있었다. 왜란이 발생한 이후 산에 몸을 숨기는 변고는 지금까지 세 번째이지만, 인심의 동요가 오늘과 같은 적은 없었다.(고대일록 1593년6월)”

그런가하면 남원의 의병장 조경남(趙慶男)은 마치 정경운의 글을 이어받기나 하는 듯, 그의 ‘난중잡록(亂中雜錄)‘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겨 당시 운봉의 긴박한 전황을 전하고 있다. 

“전라병사 선거이와 홍계남이 운봉에 진을 쳤다.(1593년 6월 19일) 진주성이 함락 당하여 6만여 명이 죽었고, 이빈(李賓)이 여러 장수를 거느리고 함양에서 물러나 원수에 임명된 권율과 함께 운봉에 주둔하였다.(6월 29일)”

그리고 1597년 2월, 소강상태에 있던 전쟁은 ‘전라도 점령’을 최우선 목표로 하는 정유재란이 발발하며 또다시 지리산자락을 공포에 휩싸이게 한다. 7월의 칠천량해전 승리 후, 섬진강을 거쳐 하동과 구례를 살육과 노략질하며 북진한 왜군은 결국 남원성을 함락하고 뒤이어 전주에 무혈입성하게 된다. 호남의 교두보 남원성이 비참하게 함락되던 날(1597년 8월 16일), 조경남의 난중잡록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들이 이어지며 남원과 운봉의 상황을 전하고 있다. 

“가등청정(加藤淸正)의 군대가 함양에서 운봉으로 진군하였다. 운봉 황산 부근에는 왜병으로 가득 차 득실거렸다. 남원성이 함락되었다. 성을 방어하던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과 부민(府民) 등 1만 여명이 전멸하였다. (중략) 왜군 양쪽의 군대가 모두 운봉으로 돌아가 며칠을 머물렀다. 이어 지리산으로 들어가 사찰에 유숙하거나 산꼭대기에서 노숙하면서 난을 피해 숨어들어간 우리 양민을 수색하여 죽이고 약탈하는 참상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다.(난중잡록 1597년 8.16~18)”

아름다운 지리산의 마을 운봉은 이렇듯 처참한 전란의 한가운데서 속절없이 스러져갔다. 오죽했으면 살아남은 사람이 적어 폐현(廢縣)에 이를 정도였을까. 하지만 그 사이 운봉으로 가는 길에는 한줄기 희망을 싹틔우는 걸음도 있었다. 지리산자락이 정유재란의 참상을 겪기 넉 달 전(1597년 4월 25일), 서울 의금부에 투옥되었던 이순신 장군이 출옥하여 합천으로 백의종군하러 가던 도중에 ‘여원재’ 고개를 넘어 운봉으로 들어선 것이다. 억수같이 내리는 비에 이곳 운봉에서 하룻밤을 보낸 장군은 도원수 권율 장군이 순천에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방향을 바꾸어 구례로 향하게 된다. 이순신 장군이 넘어온 여원재 옛길에는 명나라 장수 유정(劉綎)이 지나가며 바위에 새겼다는 ‘유정과차(劉綎過此, 1593년), ‘유정부과(劉綎復過, 1594년)’ 바위글씨가 두 곳에 남아 있다. 이 두 장수는 1598년 순천왜교성 전투에서 함께 수륙양공을 펼치게 된다. 우리 역사의 ‘타임캡슐’ 여원재와 운봉이 새롭게 깨어나, ‘역사로 걷는 운봉의 길’이 계속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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