궤멸된 수군 재건을 위한 행로

▲ 손인필 비각. 손인필은 구례 태생으로 임진왜란 당시 군수품 조달 관련 일을 맡았던 인물이다.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할 때와 수군 재건을 위하여 구례를 들렀을 당시 거처를 제공하였으며, 그와 아들도 장군을 따라 종군하여 노량해전에서 함께 전사하였다. 손인필의 집은 현재 남아 있지 않으나 집터로 추정되는 구례종합운동장에서 구례경찰서 로터리 중간 지점 도로변에 손인필 비각이 자리하고 있다.(구례군 향토문화유산 제25호)

이순신 장군은 백의종군 장소인 경남 합천(율곡면. 당시 초계군) 권율 도원수의 군영으로 가기 위해 남원부를 거쳐 운봉현에 도착하여 머물다가, 도원수가 순천부로 이동하였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4월 26일 아침 일찍 출발하여 구례현으로 향하였다. 지금의 동선(動線)으로는 운봉에서 여원재로 되돌아와, 남원 주천면에서 밤재(고증은 숙성치)를 넘어 구례읍에 이르는 행로이다. 약 48km에 이르는 만만찮은 거리로, 초여름(양력 6월 10일) 날씨에 고개를 두 곳이나 오르내리는 강행군을 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지리산권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는 지난 호에 이어 이번 구간까지 두 구간으로 나누었다.  

4월 26일 흐리고 개지 않았다. 일찍 아침밥을 먹고 길을 떠나 구례현에 이르니 금부도사가 먼저 와있었다. 손인필의 집에 거처를 정하였더니, 구례현감(이원춘)이 보러 나와서 매우 정성껏 대접하였다. 금부도사도 와서 만났다. 내가 현감을 시켜 금부도사에게 술을 권하게 했더니, 현감이 성심을 다했다고 한다. 밤에 앉아있으니 비통함을 어찌 말로 다하랴.[난중일기/노승석 역]

전날 장군의 전갈을 받고 남원부에 머물고 있던 금부도사 일행은 먼저 구례에 도착한 후, 순천부에 있던 도원수에게 이순신 장군의 도착 예정 소식을 보고하였을 것이다. 이제 장군의 호송책임을 맡은 의금부 관원들의 임무가 거의 마무리되는 것이다. 일기의 ‘구례 현감을 시켜 금부도사에게 술을 권하게 하였다’라는 글의 행간에는 한 달 가까이 동행하면서 적지 않은 편의를 봐준 금부도사에게 은근히 고마움을 전하는 뜻이 느껴진다. 그리고 이날 이후로는 난중일기에 금부도사와 관련된 내용은 일절 나오지 않는다.

숙소로 정한 집의 주인인 손인필은 구례출신으로 임진왜란 당시 군수품 조달관련 일을 맡고 있었다고 한다. 장군은 다음날 순천으로 가서 17일간 머물다가 다시 구례로 되돌아오는데(5월 14일), 그때에도 바로 그의 집으로 가는 것으로 보아 상당히 신뢰하였던 인물로 보인다. 8월 3일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된 이순신 장군은 칠천량해전 패배로 궤멸된 수군을 재건하기 위하여 구례-곡성-순천-보성-장흥-벽파진으로 이어지는 행로를 지나며 장병들을 모으고 군수품을 조달한다. 이 노정에서 첫날 장군이 구례를 들렀을 때 손인필은 군량미를 가지고 와서 큰아들과 함께 장군을 따라 종군하였고, 이듬해 노량해전에서 전사하게 된다. 또 이날 만난 구례현감 이원춘은 이후 장군이 구례에 머무는 동안(5.14~26) 거의 매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극진하게 대해주어 미안하다’라는 기록을 남기며 고마움과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있다. 이원춘은 칠천량해전 이후 남원으로 향하던 일본군으로부터 ‘석주관’을 지키지 못하고 남원으로 피하였다가, 남원성전투에서 순절하게 된다.

밤재에서 구례읍에 이르는 백의종군로는 산길을 내려선 후 산동면소재지가 있는 원천마을에 이르고, 이곳에서부터는 ‘서시천’ 물길을 따라 이어진다. 밤재 아래 독가촌 앞의 길을 따라 내려서면 편백나무 숲을 지나 계척마을에 닿는다. 구례군 산동면의 상징처럼 되어있는 산수유나무의 시목지가 있는 이곳에는 전라남도의 ‘남도 이순신길’ 사업으로 조성된 백의종군 관련 대형 석조조형물이 세워져있다. 이순신 장군의 행적과 백의종군의 의의를 알리려는 뜻은 이해하겠으나, 고증되어 있는 길의 동선을 볼 때 그 위치 선정에는 다소 아쉬움을 느끼게 한다. 숙성치를 넘어와서 만나게 되는 산동면사무소 원천마을 즈음이면  어떠하였을까 하는 생각이다. 지리산 만복대 산자락에서 시원을 이루며 섬진강으로 흘러들어가는 서시천은 진시황의 불로초를 구하기 위하여 지리산으로 향하던 서시(서복, 서불)가 이곳을 지나갔다는 이야기에서 그 이름이 유래한다.

서시천을 따라 구만제(저수지)와 광의면사무소 앞을 경유하여 구례종합운동장으로 이어지는 백의종군로는, 운동장 로터리에서 손인필 비각을 지나고 구례읍사무소 앞에 이르며 이번 구간을 종료하게 된다. 밤재~구례읍사무소 구간은 약 28km에 이르며, 답사에는 약 7시간(식사시간 포함) 남짓 소요된다.  

/조용섭/협동조합 지리산권 마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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