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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섭의 지리산이야기 <14> 역사(歷史)로 걷는 길, 운봉(雲峰) ①‘외침 숙명’ 타고난 곡창지대 관문
   
▲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화수리에 있는 황산대첩비. 고려 말 도순찰사였던 이성계가 황산(荒山)에서 왜군을 무찌른 사실을 기록한 승전비다. 1577년(선조 10) 당시의 승전 사실을 전하기 위하여 호조판서 김귀영(金貴榮, 1520∼1593)이 글을 짓고 송인(宋寅, 1517∼1584)의 글씨로 건립되었으나 일제강점기 때 일제에 의해 폭파되었다. 지금의 비는 광복 후 옛 비석을 복구하였다가 1972년에 한글로 글을 지어 새롭게 세운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깨어진 비석 조각들은 파비각(破碑閣)에 보관되고 있다.

고려 말 이성계가 이끌었던
‘황산대첩’의 격전지
왜구에 희롱 당해 자결한 주모
여원재의 전설로 남아

지리산 자락 운봉을 들썩이게 하던 사람의 물결도, 바래봉 철쭉의 선홍빛 꽃물결도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그렇게 산자락이 온통 붉은 색으로 분주하던 사이, 운봉 국도 변에 도열한 이팝나무는 흰 꽃을 피우며 또 다른 5월의 시절을 위무하고 있다.

운봉은 조선시대 예언서에 사람이 살아갈 만 한 곳, 즉 ‘이상향’으로 일컬어지는 ‘십승지지(十勝之地)’ 중의 하나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곳이다. 그런데 십승지지의 주요 입지조건이 ‘자연환경이 좋고’, ‘외침(外侵)이나 정치적인 박해가 없으며’, ‘자족적인 경제활동이 충족되는 곳’이라는 것에서 볼 때,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운봉이 지리산 자락 경치 좋은 곳에, 넓고 기름진 땅을 지니고 있는 곳이니 분명 두 가지 조건은 충족되는 곳이기는 하나, 외침으로 인해 온 나라를 뒤흔든 전쟁을 피해가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그 전쟁이라 함은 왜구의 침략에 의해 일어난 14세기 고려 말의 ‘황산전투’와 16세기 말 조선을 처참한 전란의 시기로 몰아넣은 임진왜란을 말한다. 경상도에서 전라도로 이어지는 큰 길의 길목, 곡창지대 호남의 관문 역할을 하는 운봉은 전쟁의 피해가 막심할 수밖에 없는 그런 지정학적 숙명을 안고 있는 곳이다.

조선 숙종대의 성리학자 우담 정시한은 구례와 하동의 지리산자락 절집에서 한 철을 보낸 후, 구례에서 숙성치를 넘어 남원시 이백면 응령역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하룻밤을 머물고는 이튿날 백두대간고개 ‘여원재(女院峙)’를 넘어 운봉으로 들어서는데, 우담은 그의 『산중일기』에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긴다.

‘운봉현을 지나 비전(碑殿)에 이르렀다. 그곳에는 우리 태조(太祖)가 황산에서 대첩을 이룬 사적을 기록한 비석이 있었다.(중략中略) 경건한 마음으로 오랫동안 감상하다가 승장의 방에 들어가서 점심을 먹고, 신시 무렵에 실상사에 도착하였다.’(1686년 8월 22일)

여기서 ‘우리 태조’라 함은 고려 말, 왜장 아지발도가 이끄는 왜구와의 전투를 대승으로 이끈 ‘황산대첩’의 영웅으로, 후일 조선을 개국하는 이성계 장군을 일컬음이다. 황산대첩비는 선조 때(1577년, 선조10) 황산전투의 승전 사실을 알리기 위해 건립되었으니, 우담은 그 후 약 109년 뒤에 이 비전(비를 보호하는 건물)에 들른 것이다. 예전에는 황산대첩비에 이르기 전 하마비와 하마정이 있었고, 이곳을 지나는 관리나 사대부들은 우담처럼 말에서 내려 비전에 이르러 예를 갖추어야만 했다.

고려 말인 1380년(우왕6) 8월, 왜구들이 곡식을 노략질하기 위해 500척에 이르는 대선단을 이끌고 금강하구 ‘진포’로 들이닥쳤다. 이때 나세, 최무선이 이끄는 고려군은 우리 해전 사상 최초로 화포를 사용하여 왜구의 배를 모조리 불태워버리고 대승을 거두게 된다. 이른바 ‘진포대첩’이다. 이때 해상으로의 퇴각로가 끊긴 왜구는 살육과 약탈을 일삼으며 내륙으로 이동하였고, 병력을 집결하여 경남 함양으로 들이닥친다. 고려군은 도원수 배극렴을 비롯한 아홉 장수가 이들을 맞아 사근산성에서 대혈전을 벌이지만, 중과부적으로 장수 2명이 전사하고 500여명의 고려병사들이 전사하는 참패를 당하고 만다. 이후 왜구는 기세를 몰아 운봉을 거쳐 남원성까지 진출하였다가 다시 되돌아와 인월역에 진을 치고 고려군과의 일전에 대비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운봉현은 왜구에 의해 온통 불살라졌다고 기록은 전한다.

남원시 이백면과 운봉읍을 잇는 큰 고개 여원재에는 왜구를 토벌하기 위해 출정한 이성계 장군과 관련된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이성계 장군이 남원성을 거쳐 여원재 인근에 머물 무렵, 꿈에 한 노파가 나타나 왜구를 쳐부술 비책을 알려주었는데, 그 노파는 다름 아닌 왜구에게 희롱당하고 자결한 여원재 주모의 원혼이었다는 이야기이다. 고개 아래 ‘여원치마애불상’에 그 전설의 흔적이 있다.

고려 말 한반도 중부 이남지역에 극심한 피해를 입힌 왜구와의 전쟁은 1380년 9월 운봉에서 벌어진 황산대첩의 승리로 그 막을 내린다. 그리고 그 후 10여년 뒤 조선 개국으로 역사의 흐름은 바뀌게 된다. 그 운명적 역사의 현장에 운봉이 있었다.

/‘지리산권 마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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