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원치마애불(전라북도유형문화재 제 162호). 고려말 이성계의 황산전투와 관련된 설화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눈부신 연록의 산자락이 색의 무게를 더하는 계절, 달구어진 대기에 폭발하듯 터진 꽃가루와 씨방들의 여행으로 5월은 혼돈스럽다. 그런가하면 선홍색 철쭉으로 천상의 화원을 이룬 지리산 바래봉 산자락은 ‘꽃불이야!’ 외치는 시인의 외침을 신호로 수많은 사람들을 꽃불잔치로 불러들이고 있는 중이다. 노곤한 심신을 기분 좋은 산멀미에 맡겨버리고 싶은 5월의 날, ‘지리산의 고장’ 남원 시가지를 관통하는 24호선 국도를 타고 동쪽으로 향했다.

남원시가지를 벗어나 이백면 변전소에서 구불구불 이어지는 도로를 약 3km 정도 오르면 여원치 고갯마루에 닿는다. ‘여원재’, 혹은 연재라고도 부르는 곳이다. 고개를 넘어 그대로 진행하면 광활한 평지를 이루는 지리산의 고원마을 운봉으로 들어서게 된다. 여원치는 백두대간마루금이 지리산으로 들어서는 관문으로 산악인들에게는 잘 알려진 곳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심코 지나쳐버리는 한갓진 국도상의 고개이다. 하지만 이곳은 예사롭지 않은 역사적 사건들이 켜켜이 쌓여있는 역사의 현장일 뿐만 아니라, 때로는 뜻밖의 풍경들을 드러내며 많은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있다.  

여원치에서 남쪽 지리산으로 향하는 백두대간마루금은 수정봉을 지나 고리봉에서 비로소 지리산의 산줄기와 만나, 정령치-만복대-노고단을 거쳐 천왕봉을 향해 함께 달려가게 된다. 대간과 정맥의 산줄기가 지니는 속성은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이다. 즉 이곳의 물길(水系)은 백두대간에 의해 낙동강과 섬진강으로 나뉜다. 마루금 서쪽으로 흐르는 물길이 모여 남원의 요천을 이루며 섬진강으로 흐르는 것은 쉽게 수긍이 가는데, 고개 동쪽 전북 남원시 운봉에서 이룬 물길이 낙동강의 최상류를 이루며 부산 앞바다로 흘러들어간다는 사실은 뜻밖이다.

여원치에서 서쪽 방향 올라왔던 도로로 약 100m 정도 내려가면 ‘여원치마애불(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62호)’ 안내 푯말이 보인다. 이곳에서 산자락 아래로 신작로 같은 너른 숲길이 이어진다. 산자락 아래 이백면 양가리와 여원치를 잇는 ‘여원치 옛길’이고, 남원과 인월-함양을 잇던 조선시대 간선도로인 통영별로 ‘응령역-인월역’ 구간을 이루던 길이다. 숲길을 잠시 내려서면 오른쪽 절벽 바위에 음각으로 새겨진 마애불을 만난다. 이 바위 오른쪽에는 1901년 운봉현감 박귀진이 태조 이성계와의 인연설화를 새긴 명문이 있다. 즉 고려말 이성계 장군이 길가는 노파의 계시를 받아 왜구를 섬멸하였고, 이는 산신이 나타났던 것으로 여겨 불각을 짓고 모시게 하였다는 이야기이다.

마애불에서 아래쪽으로 나아가니 갑자기 길이 사라져버린다. 쓰러진 나무와 초목이 뒤엉켜 어지럽고 빽빽한 숲은 발 디딜 곳을 찾을 수 없어 진행하기가 쉽지 않다. 사람들은 이 길을 버렸고, 길은 스스로 몸을 감추며 침묵하고 있다. 420년 전 1597년(정유년) 6월 9일(음력 4.25일) 낮, 백의종군길에 오른 이순신 장군은 권율 도원수부가 있는 경남 초계(합천)로 가기 위해 이 길을 지나 운봉 박롱(혹은 박산취)의 집으로 갔다. 비가 몹시 내려 진행을 멈추고 있는 사이, 도원수가 전라도 순천으로 갔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다음날 구례로 향하게 된다. 바로 남원-구례-하동-산청으로 이어지는 ‘지리산권역 백의종군로’가 이루어지는 순간인 것이다. 

마애불에서 약 50여분 길 없는 길을 헤쳐 내려서면,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 유정이 두 번 이 길을 지나갔다며 ‘유정부과(劉綎復過)’ 글을 새겨놓은 거대한 바위에 닿는다. 돌탑이 함께 있는 이곳은 여원치 아래 ‘황산로 690번’ 표시판이 있는 도로변 공터로도 길이 이어진다. 정유재란 막바지, 이순신 장군의 수군과 협공하기로 한 약속을 어겨 순천왜성에 주둔하던 일본군의 일망타진을 무산시킨 유정이 ‘여원치 옛길’을 지나간 것은 1594년 음력 3월이다. 그로부터 약 3년 뒤 백의종군을 하며 이 길을 지나가던 이순신 장군은 이 바위를 보았을까? 지리산권역의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가 비로소 완성되는 ‘여원치 옛길’이 빠른 시일 내에 복원되길 기대해 본다.
 

 
조용섭/‘지리산권 마실’ 대표
대학 1학년이던 스무 살에 지리산을 만나 40여년을 지리산에 빠져 살고 있다. 지금은 고향 부산을 떠나 전북 남원으로 귀농귀촌하여 지리산을 생활의 터전으로 삼고 있다. 발효식품을 생산하는 지리산두류실을 운영하며, ‘인문학으로 걷는 지리산’ 프로그램으로 사람들과 소통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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