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수군 재건 대장정 시작된 곳

▲ 오리정(五里亭).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56호. 전북 남원시 사매면 월평리 17번 국도(춘향로)변에 있는 2층 누각. 예전 남원을 오고가는 사람들을 마중 나오거나 전송을 하던 곳이다.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하던 1597년(정유년) 4월 24일, ‘고을(남원)에서 15리(6km) 쯤 되는 곳에서 정철(丁哲) 등을 만났다’라는 내용이 난중일기에 나오는데, 거리상으로 보아 오리정에서 만났을 가능성이 크다.

지리산 이야기는 이번 호부터 ‘지리산권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로 이어가고자 한다. 1592년 4월 임진왜란 발발 이후, 1593년 3월부터 시작된 명나라와 일본과의 강화협상은 결국 1596년 9월 결렬되고, 왜군은 1597년 1월에 재침을 하게 된다. 즉 정유재란이 일어난 것이다. 이때 임금 선조는 이순신 장군에게 부산 앞바다로 나아가 왜군을 맞아 싸우라는 명령을 내리나, 장군은 몇 가지 이유를 들어 출진(出陣)하지 않는다. 그 후 조선 조정은 이러한 명령불복종 등을 이유로 이순신 장군을 탄핵하고, 2월 26일 한산도 통제영에서 체포하여 한양 의금부로 압송한다.(옛 날짜는 모두 음력 표기) 

옥에 갇혀 모진 고문을 당하고 사형이 임박할 즈음, 원로대신 판중추부사 정탁의 ‘신구차(伸救箚:목숨을 건 상소)’ 등에 힘입어 가까스로 사형을 면한 이순신 장군은 권율 도원수 휘하에서의 ‘백의종군’을 명받게 된다.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는 4월 1일 의금부에서 풀려난 이순신 장군이 남행하여, 6월 7일 권율 도원수의 군진이 있던 합천(초계)에 이르는 노정(路程)을 말한다. 또 7월 중순 원균이 이끌던 조선 수군이 궤멸적 타격을 입은 칠천량해전 직후인 7월 18일, 이순신 장군은 패전 후의 상황을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하여 남해안을 둘러보고, 진주 수곡 손경례의 집에 머물던 8월 3일 이곳에서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되는 교지를 받는데, 경우에 따라 이 노정을 백의종군로에 추가하기도 한다.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의 동선(動線)은 서울 종각(의금부)-남대문-수원-아산-논산-여산-전주-임실-남원-운봉-구례-순천-구례-하동-단성-삼가-합천으로 이어진다. 전 구간을 답사 완료한 (사)한국체육진흥회의 자료에 의하면 약 676km에 이르는 거리다. 그리고 여기서 ‘지리산권 백의종군로’라 함은 지리산 자락 전북 남원시에서 운봉읍을 거쳐 전남 구례군, 경남 하동군과 산청군 단성면으로 이어지는 길을 말한다.(남원시 덕과면 월평정류소에서 산청군 단성면 단성교까지 약 190Km : 순천 이동거리 제외)

삼도수군통제사로서 남해 바다를 왜군으로부터 지켜냄으로써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롭던 조선을 구해낸 영웅 이순신 장군이 남한 육지에서 가장 높은 민족의 영산 지리산 자락을 백의종군하며 지나갔다는 사실이 흥미롭기도 하지만, 이순신 장군과 지리산 자락과의 인연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백의종군 전, 한양으로 함거 압송되던 길은 통영별로를 이용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산청과 함양을 거쳐 운봉~남원으로 이동하여 한양으로 향하였을 것이다. 또 삼도수군통제사 재수임 후, 하동을 거쳐 구례에서 곡성으로 이동하는 조선 수군 재건의 대장정이 시작되는 곳도 지리산 자락이다. 이렇듯 정유재란기의 숨 막히는 전쟁의 전개와 이순신 장군의 이동 흔적, 그리고 지리산 자락의 길이 맞물리며 조선은 절망을 딛고 희망으로 나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필자는 이 글 연재의 첫 기고인 ‘여원치 가는 길’(2017년 5월) 편에서, ‘여원재 옛길’을 두고, ‘사람들은 길을 버렸고 길은 스스로 몸을 감추며 침묵하고 있다’며 지리산 권역의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가 완성되는 여원치(재) 옛길이 빠른 시일 내에 복원되길 기대한다는 소망을 피력한 바 있다. 그러한 필자의 바람은 다행스럽게도 의외로 빨리 그해 가을에 이루어졌다. 기초자치단체로는 드물게 남원시가 백의종군로의 옛길 정비에 나섰고, 약 53km에 이르는 남원권 백의종군로에 이정표와 안내판을 곳곳에 세운 것이다. 전남과 경남은 광역자치단체에서 많은 예산을 들여 백의종군로 조성을 이미 완료한 상태였으니, 남원시의 백의종군로가 복원·조성됨으로써 지리산 자락의 생태와 역사문화, 그리고 임진왜란과 이순신이라는 역사적 사건과 인물이 어우러지는 ‘지리산권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가 완성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에 대한 관심은 아직도 그리 크지 않은 듯하다.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 정신과 리더십을 회고하고, 백의종군로에 대한 관심을 높임과 동시에 ‘지리산권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가 생태와 역사가 어우러진 명품 길로 자리매김하였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길의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 전북 남원시는 매년 가을, 남원시민과 관광객들이 참여하는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 걷기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제3회 행사가 오는 11월 16일(토) 열린다고 한다(주천 외평마을~지리산 유스캠프, 약 4km). 모쪼록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동참이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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