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향한 도원수 소식에 ‘행로 급변’

▲ 여원재. 여원치 혹은 연재라고도 부른다. 남원시 운봉읍과 이백면의 경계를 이루며 국도 24호선이 지나간다. 백두대간 산줄기 상의 고개이자, 조선시대 대로인 통영별로 상의 고개이기도 하다. 서쪽 아래 여원치마애불상 있는 곳으로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가 복원 조성되어 있다.

1597년 4월 25일(음력) 아침 일찍 남원부를 출발하여 운봉에 도착한 이순신 장군은 박롱(朴巃)이라는 사람의 집에 들르는데, 억수같이 퍼붓는 비에 더 이상의 진행을 중지하고 그 집에 머물게 된다. 그런데 이곳에서 백의종군 행로에 중요한 변수를 맞이하게 된다. 합천(율곡면)의 군영에 있던 권율 도원수가 순천으로 향했다는 소식을 접한 것이다. 이때 장군은 급히 남원부에 있던 금부도사에게 사람을 보내어 그대로 머물러 있으라고 연락하는데, 순천으로 행선지를 바꾸자고 의논을 하였던 듯하다. 금부도사가 한양에서부터 장군과 동행한 이유는 ‘백의종군’의 형벌에 처해진 죄인을 호송하여 도원수에게 인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날 거처를 제공한 박롱은 열흘 뒤(5월 14일) 난중일기에 ‘운봉의 박롱이 왔다.’라는 내용이 나오는 것을 보아 예전부터 잘 알고 지내던 사이인 듯하다. 운봉 박롱의 집은 고증하기가 어려워 백의종군로는 예전 운봉객사가 있던 운봉초등학교로 이어져 있다.

이렇게 해서 조선시대 대로(大路) 중 하나인 ‘통영별로’를 이용하여, 한양에서 전주~남원을 거쳐 운봉에 이른 뒤, 함양에서 지금의 국도 24호선과 비슷한 경로로 초계(지금의 합천군 율곡면)로 가려했던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 행로는 크게 변하게 된다. 즉 운봉에서 구례를 거쳐 순천으로 갔다가, 다시 구례로 돌아온 후, 하동~산청을 거쳐 합천에 이르는 동선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이번 구간의 백의종군 행로는 지난 구간 운봉으로 왔던 길로 되돌아 나와 여원재에서 옛길로 내려선 뒤, 이백면사무소에서 주천면 외평마을로 이동하여 밤재에 이르는 길이다. 운봉초등학교를 출발하여 서림공원을 거쳐 경마축산고교 앞에 이르면 이곳에서부터 여원재까지 이차선 국도24호선을 걸어야 한다. 갓길이 없어 걷기에 위험한 곳이 있으니 주의를 요한다. 백두대간 고개 여원재 아래에 있는 ‘여원치 마애불상’ 이정표 방향으로 들어서서 여원재 옛길을 따라 양가제~목가리~이백초등학교를 거쳐 이백면사무소에 닿는다.

이백면사무소에서 과립리 마을의 좁은 길을 지나면 농로를 거쳐 효기마을로 이어진다. 이곳에서 만나는 4거리에 ‘응령역 터’를 가리키는 이정표(600m)가 서있다. 예전 남원부 동도역에서 운봉현 인월역 사이에 응령역이 있었음을 알리고 있으나, 여원재로 이어지는 동선으로 보아 현재 ‘응령역 터’ 기념조형물의 위치는 다소 벗어나 있는 듯하다.

효기리 마을 입석이 있는 곳에서 약사암 이정표를 따라 가면 충혼탑이 있는 효촌삼거리를 만난다. 백의종군로는 왼쪽으로 4차선 장백산로와 함께 이어지다가 지리산둘레길 안솔치마을 입구를 지나고 이내 주천면 외평마을에 닿는다. 이곳은 예전 남원과 구례를 잇는 주요 교통로에 있던 지역으로 숙박을 할 수 있는 ‘원(院)’이 있었고, 지금도 ‘원터거리’라는 지명이 남아 있다. 또한 정유재란기에는 왜군이 구례에서 남원으로 넘어오던 주요 길목이기도 한 곳이다. 외평마을에서 밤재에 이르는 길은 지리산둘레길 ‘주천 외평마을~밤재’ 구간과 함께 이어진다. 옛길은 외평마을에서 안용궁마을을 거쳐 숙성치(숙성령)를 넘어 지금의 구례군 산동면 원달리로 이어졌으나, 사유지 문제 등으로 ‘밤재(율치栗峙)’로 대체로가 나있다. 약 7km에 이르는 주천~밤재 구간은 마을길, 숲길, 임도로 이어진다. 이 구간에서 만나는 ‘정문동’은 효자 류익경의 정려가 내려진 곳이라 하여 이름 지어진 듯하다.

무너미를 지나면 계곡이 함께하는 정갈한 숲길을 지나고, 지리산유스캠프 앞으로 이어진다. 이곳에서 19번국도 아래 통로를 지나 다소 지루한 임도 구간을 걷게 되며, 차량 지나는 소리가 뚝 끊어지면 이내 ‘밤재’ 이정표를 만난다. 이순신 장군이 벡의종군하며 구례로 넘어간 후 불과 넉 날도 채 못 지난 1597년 8월 중순, 5만6000여명의 대군을 이룬 왜군이 이곳의 고개(숙성치, 밤재, 둔산치)를 넘어 만여 명이 지키던 남원성으로 향하였던 것이다. 숙성치는 밤재에서 지리산 만복대 방향 2.1km 지점에 있다. 운봉초등학교에서 전북 남원과 전남 구례의 경계를 이루는 밤재까지는 약 20km에 이르며, 답사에 약 7시간 정도 소요된다.

조용섭/협동조합 지리산권 마실 대표

지리산 이야기가 어느덧 세 번 째 새해를 맞이하였습니다. 2020년 경자년을 맞이하며, 독자 여러분의 건강과 행운을 기원합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