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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섭의 지리산이야기 <8>쌍계사 가는 길] 겨울 찾아든 십리벚꽃길서 ‘깊은 묵상’
   
▲ 하동 쌍계사 일주문. 편액에는 삼신산 쌍계사로 되어 있다.

눈 덮인 지리산을 헤매다
12월인데도 봄처럼 따듯하고
칡꽃이 반발하는 곳 찾아
혜능대사 머리뼈 봉안하였으니…


산자락 가득 메운 낙엽 뒹구는 소리에 사라진 가을을 아쉬워하는 사이, 지리산 능선은 기다렸다는 듯 설산으로 변해 흰옷으로 갈아입기 시작했다. 한겨울 눈이 쌓인 곳에서도 꽃이 피었다는 이야기를 마을 이름에 담은 곳, 경남 하동군 화개면(花開面)을 찾았다.

지리산 남쪽 산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화개면은 온전히 지리산의 품안에 안겨있는 지역이다. 화개에 들어서서 조금만 산자락 쪽으로 다가가면,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길이 마치 부채살처럼 펼쳐진다. 그래서 섬진강변 19번국도 가까이 있는 ‘화개터미널’은 지리산으로 가는 남쪽 관문이 된다. 이런 지형적인 특성으로 이곳에는 옛날부터 지리산을 넘나들며 물품거래가 이루어지는 큰 장시가 열렸으니, 바로 조영남이 노래한 ‘화개장터’이다.

화개를 들어서면 쌍계사 가는 길이 나온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지리산 유람에서도 쌍계사는 가히 ‘지리산답사 일번지’라 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들었던 곳이다. 화개를 들어서서 쌍계사 가는 길은 ‘십리벚꽃길’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벚꽃이 필 때쯤 이곳 화개는 눈부신 꽃길을 연다. 바라보는 사람의 몸과 마음도 마치 나비처럼 가벼워지게 만드는 그런 황홀한 눈부심이다. 양 도로변의 벚나무들이 가지를 뻗어 손을 맞잡고 환상적인 벚꽃터널을 이루던 이곳은 이제 겨울나무들이 깊은 묵상에 잠겨 새로운 세상을 기다리고 있다.
쌍계사의 이름은 절 앞에 두 골짜기가 만나는 곳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하지만 신라시대(840년) 이 절이 창건될 당시의 이름은 ‘옥천사’였고, 이후 886년 신라 정강왕이 한 고을에 같은 이름을 쓰는 것은 혼란을 준다고 해서 바꾼 이름이 바로 쌍계사이다. 쌍계사(雙磎寺)의 창건설화를 들여다보면 긴박감 넘치는 한 장면이 머리에 떠오른다.

그것은 신라 스님 삼법화상이 당나라로 가서(722년), 중국 선불교를 크게 일으킨 육조(六祖) 혜능대사의 머리뼈(頂相)을 취하여 오는 기이한 광경이다. 삼법화상은 혜능대사를 너무도 흠모하였는데, 혜능대사 입적 후 당나라로 가서 은밀하게 정상을 모시고 귀국하게 된다. 그리고는 김유신의 부인이었던 법정비구니가 머무는 영묘사에서 밤마다 육조의 정상에 공양을 올렸는데, 어느 날 꿈에 한 스님이 나타나 자신의 인연 터는 지리산 아래 눈 속에서도 칡꽃이 핀 곳이니 그곳으로 옮기라고 명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눈 덮인 지리산을 헤매던 중, 12월인데도 따뜻하기가 봄과 같고 칡꽃이 만발하는 곳을 찾아 이곳에서 돌을 쪼아 함을 만들고 정상을 봉안하였으니 바로 쌍계사가 창건되는 이야기이다. 이 터에 840년 당나라에서 선종을 공부하고 온 진감선사가 절집을 중창하면서 비로소 대가람인 오늘날의 쌍계사가 된다.

겨울 쌍계사는 적막하다. 불일폭포가 제 몸을 부수어 내원골 깊은 골짜기의 물을 모으며 내려온 물길도 숨죽이듯 소리를 낮추었다. 일주문 현판에는 뜻밖에도 지리산이 아닌 ‘삼신산 쌍계사’로 되어있다. 삼신산은 신선이 사는 곳, 즉 지리산(방장산), 금강산(봉래산), 한라산(영주산)의 세 곳을 말한다. 쌍계사의 가람배치 구조는 특이하다. 경내에 들어서면 왼쪽 옛 영역인 ‘금당 영역’과, 정면 팔영루 넘어 ‘대웅전 영역’으로 구분된다. 3단으로 이루어진 금당영역의 하단에는 청학루, 2단의 공간에는 팔상전과 영주당, 방장실, 봉래당이 있고, 맨 위 3단의 공간에는 금당과 동방장, 서방장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육조 혜능대사의 정상이 모셔져 있는 곳이 금당이다. 그러고 보니 이곳 전각의 이름에 봉래, 영주, 방장의 삼신산이 다 들어있다. 삼신산 쌍계사로 쓴 이유를 알 듯하다. 대웅전 영역 절 마당에 있는 ‘진감선사대공령탑비(국보제47호)’는 최치원의 사산비명의 하나로 신라 하대 불교사에 있어 귀중한 보물이다. 고운 최치원이 만년에 세속의 모든 것을 버리고 이곳에서 스님들과 교류하며 지낼 때, 그가 왕명을 받아 글을 짓고 직접 쓴 것이다. 화개, 지리산 자락의 온 공간을 불향 가득한 곳으로 이끈 이름이어라.

/‘지리산권 마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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