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 지리산 대성마을. 단 두 가구가 살고 있으며, 의신마을에서 약 1시간 거리에 있다. 민박을 치며, 산채비빔밥 등 음식물과 고로쇠 등 을 팔고 있다.

쥐잡기 작전 벌이던 백야전전투사령부
대성골로 몰려든 빨치산 부대 토벌 
67년 전 스러진 그들의 ‘해원’을 빌다 


지난 겨울(2017년 12월) 청허휴정스님(서산대사)의 출가처인 ‘원통암’ 가는 길에 들렀던 하동군 화개면 의신마을을 다시 찾았다. 의신마을에서 약 2.5km 거리에 있는 산중마을인 대성마을을 찾기 위함이다. 원통암 가는 갈림길에 있는 민박집 ‘벽소령산장’에서 오른쪽으로 향하면 대성골을 거쳐 세석고원으로 이어지는 산길이 나오는데, 이 길을 따라가다 보면 단 두 가구가 살고 있는 대성마을을 만나게 된다. 산허리를 가로지르며 나있는 길을 몇 구비 넘으면 우렁찬 물소리가 들리는 계곡을 만나며, 길은 계곡과 나란히 이어진다. 

의신마을은 16세기 꺼져가던 조선불교의 불씨를 되살린 청허휴정대사(서산대사)의 흔적이 곳곳에 서려있는 곳인데, 특히 서산대사가 수도를 하였다는 ‘능인암’이 이곳 대성골 가는 길에 있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오늘 이곳으로 걸음을 하는 이유는 오롯한 정신세계를 추구하던 옛사람을 회고하거나, 아름다운 지리산의 자연세계를 만나기 위함이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67년 전 1월 중순에 일어났던 우리 현대사의 아픈 사건을 더듬어보기 위해서이다.   

6.25전쟁이 잠시 소강상태로 들어가던 1951년 11월, 지리산과 전남북 산악지대에서 후방을 교란하던 빨치산 토벌을 위해 백선엽 장군을 사령관으로 하는 백야전전투사령부가 설치되며 남원에 지휘소를 두게 된다. 육군 수도사단과 8사단 등으로 편성된 백야전전투사령부는 1951년 12월 2일부터 ‘쥐잡기 작전(Operation rat killer)’이라는 이름의 빨치산 토벌작전을 4차례에 걸쳐 실시한다. 이 중 1952년 1월 중순에 있었던 제 3기 작전에서 대성골로 몰려든 빨치산들을 집중적으로 공격하며 토벌작전이 전개된다. 이때 경남도당의 빨치산부대(57사단)는 거의 전멸되다시피 하였고, 총사령관 이현상이 이끌던 남부군도 괴멸상태에 이르게 된다. 빨치산으로 활동하였던 이태는 그의 수기 ‘남부군’에서 이때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궤멸하는 남부군 - 남부군 최악의 날

‘세석고원의 서쪽 가장자리이자 대성골의 막다른 끝이 되는 칠성봉 아래에 이르렀을 때 대열은 수를 알 수 없는 국군부대의 포위공격을 받게 되었다.(중략) 산이 무너지는 듯한 포화소리, 교차되는 예광탄, 수류탄의 작렬음, 피아의 함성소리가 한 시간 가까이 고원의 밤공기를 뒤흔드는 동안 바위 벼랑 밑에서 예비대격으로 대기하고 있었다.(중략) 탈출구는 바위 벼랑 밑을 따라 대성골을 이루는 계곡 밖에 없었다’

또한 경남도당 57사단에서 활동하던 최후의 망실공비 정순덕도 네이팜탄으로 대성골이 밤낮없이 5일 동안 불타올라 바위틈새에서 선 채로 버텼다고 한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던 이태는 지리산 산자락을 전전하다가 2개월 뒤 산청군 거림에서 토벌대에 붙잡히게 된다. 지리산 최고의 기도처인 영신대가 있고, 수많은 선승들의 수도처이기도 했던 대성골의 산자락이 현대에 이르러서는 이렇듯 이념투쟁의 공간이 되어 빨치산에게는 끔찍하고도 처절한 아비규환의 현장이 되었던 것이다.   

두 가구가 나란히 들어서 있는 대성마을에는 인기척이라고는 없고, 낯선 방문객을 맞이하는 개 짖는 소리만 적막한 골짜기를 메운다. 오랜만의 반가운 만남에 대한 기대를 접고 되돌아서려는 순간, 어르신 한 분이 산 위에서 내려오신다. 대성마을에서 민박을 치고 음식도 파는 임성우(73세, 055-883-1818)라는 분이시다. 요즘은 고로쇠수액 채취 작업이 한창으로 산에서 작업하는 시간이 많다며 반기신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시는데, 산자락에 숲이 별로 없던 20여 년 전만해도 이곳에서 인골과 소총 등이 자주 발견되었다고 한다. 계곡으로 산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지자 무심코 지나치던 거대한 바위들이 문득 눈에 들어온다. 신령스런 기운이 깃든 이 골짜기가 부디 해원이 이루어지는 공간이 되길 염원하며 발걸음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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