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 경남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공원 앞 저물녘 겨울 섬진강 풍경. 박경리 소설 ‘토지'에서 ‘여인네 살갗처럼 부드러웠다’고 묘사되는 이곳의 눈부신 백사장은 ‘은모래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짧은 겨울햇살, 백운산 자락으로 기울자
‘여인의 살갗처럼 부드러웠던’
은모래길 백사장에도 쓸쓸함이 가득


어느덧 한 해가 저물어간다. 여기저기에서 즐거웠던 모임의 후일담들이 실시간으로 속속 들려오고 있다. 그런데 그런 소식들을 접할수록 괜스레 상념에 빠져들며, 뜬금없이 외로움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부사(浮査) 성여신(成汝信, 1546~1632)이 지리산 유람을 하고 쓴 「방장산, 선유일기方丈山仙遊日記」에 나오는 ‘세한심’이라는 글귀를 떠올려본다.

‘세한’이라는 글의 의미는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1786~1856)가 그린 ‘세한도’에 의해서 잘 알려져 있다. 초라한 집 한 채와 고목 몇 그루가 한겨울 추위 속에 서 있는 그 그림이다. ‘겨울이 되어서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알게 된다.(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 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라는 『논어』, 「자한」 편'에 나오는 글의 앞부분인데, 이는 변함없는 사제 간의 의리나 친구와의 우정, 그리고 절개를 의미한다고 한다.

부사는 과거를 포기하고 만년에 고향 진주에서 후학들을 가르치며 은일의 삶을 살아간다. 그러던 중, 그의 나이 71세 되던 해인 1616년 가을, 7명과 더불어 지리산 쌍계사 유람을 하기 위해 길을 나선다. 이번 유람에 동행한 이들과 제일 연장자인 부사와의 나이 차이는 적게는 7살, 많게는 30살이고 일행에는 아들 두 명도 포함되어있다. 이때 남겨진 글이 「방장산선유일기」이다. 방장산은 지리산의 다른 이름, 즉 신선이 산다는 삼신산(三神山) 중의 한 곳을 일컬음인데, 신선들의 유람을 기록하였다는 ‘선유일기’라는 제목은 그런 의미에 부합되게 지은 것이다.

부사 일행은 4박5일 동안의 쌍계사와 신흥사 유람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하동군 흥룡마을을 들러, 인근 섬진강에 배를 띄워 술자리를 열고 일행들과 시문을 주고받으며 한밤중까지 시간을 보낸다. 요즘 말로 답사 뒤풀이가 벌어진 것인데, 부사 주재 하에 ‘문자음(文字飮)’이라는 고품격 이벤트로 열린 것이다. 이때 진주를 비롯한 지역에 은거하며 오롯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일행들에게 부사는 다음과 같은 글로 자신의 마음을 드러낸다.

‘그대들이여, 우리가 함께 지리산을 이렇게 신선처럼 노닐고 가는 것은 결코 우연하게 온 일이 아니라네. 앞으로도 우리 서로 변치 말고,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서로 영원히 잊지 마세나.(此日仙遊非偶爾, 謂君休負歲寒心 차일선유비우이, 위군휴부세한심)

세대별 여론이 다르고 소통이 어려워지는 오늘날, 노소(老少)와 부자(父子)의 관계를 초월하여 무려 30년 차이의 세대차를 아우르며 ‘세한심’을 당부하는 부사의 글에서 은은한 울림과 함께 한줄기 따스한 바람을 느낀다.

400여 년 전 부사 일행이 뱃놀이를 하였을 하동군 흥룡마을 앞 섬진강변은 세월이 나르고 물길이 쌓은 모래톱이 강폭보다 넓어, 평상시에는 흐르는 강물이 잘 보이지도 않을 정도이다. 조금 더 상류 쪽으로 차를 몰아 악양면 평사리공원으로 들어섰다. 곳곳에 서있는 ‘섬진강 100리 테마로드’라는 이정표는 의욕적으로 ‘감성의 강, 섬진강’을 이야기하려는 듯하지만, 강 주변은 도로 확포장공사로 극도로 어수선한 모습이다.

짧은 겨울 햇살이 백운산 산자락으로 기울자, 대기는 점점 붉어지며 강으로 스며들고 있다. 이따금씩 들려오는 왜가리 소리에 겨울 강의 풍경은 더욱 처연하고, 박경리 소설 ‘토지’에서 ‘여인의 살갗처럼 부드러웠다’고 이야기하던 ‘은모래길’ 백사장도 쓸쓸함이 가득하다. 한동안 물빛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의 타래를 푼다. 세한, 그 쓸쓸함을 그리움으로 읽으며 안온해진 강에서 벗들을 그린다.

/‘협동조합 지리산권 마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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