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비 중에도 나선 백의종군길

▲ '섬진강 100리 테마로드' 하동 화개-악양 구간 풍경. 하동-악양 구간 약 8km에 이르는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는 '섬진강 100리 테마로드'로 이어져 있다. 섬진강을 바라보며 대나무밭, 차나무밭, 그리고 잘 조성된 쉼터를 지나며 이어지는 편안한 길이다.

어느덧 3월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몹쓸 병으로 온 세상이 어수선한 시절이지만, 지리산 자락에는 늘 그러했듯 눈부신 꽃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을 막기 위하여 벚꽃축제를 취소하였고, 또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낯선 캠페인으로 방문을 자제해달라고 현수막까지 내걸었지만, 평일 이른 시각임에도 불구하고 화개장터 인근은 상춘객들로 붐비고 있다.

지리산권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 답사는 이제 경남 하동으로 들어서게 된다. 화개면 ‘화개삼거리’에서 하동읍 ‘읍내삼거리’까지 이어지는 이번 구간은 약 27km에 이른다. 그런데 화개장터에 있는 이정표에는 ‘하동군청 19.5km’로 표시되어 있다. 아무래도 착오가 있는 듯하다.

구례에서 체찰사 이원익과의 만남 후, 계속해서 내리는 비에 출발을 미루고 있던 장군은 일정이 너무 늦어지는 것에 부담을 느꼈는지 5월 26일 큰 비가 내리는 중에도 다시 백의종군길에 나선다. 한산도통제영에서 체포되며 통제사에서 파직된 지 만 3개월이 된 날이다. 장군은 출발 전날 ‘시골집에 기대고 있으니 떠오르는 생각이 만 가지다. 슬픔과 그리움을 어찌하겠는가’라며 비통한 심경을 일기에 밝히고 있다.  


5월 26일. 종일 큰비가 내렸다. 비를 맞으면서 길에 올라 막 떠나려는데, (중략) 석주관의 관문에 가니 비가 퍼붓듯이 내렸다. 말을 쉬게 하고 엎어지고 자빠지면서 간신히 악양 이정란의 집에 도착했는데, 문을 닫고 거절하였다. (중략) 이정란의 집은 김덕령의 아우 덕린이 빌려 거주하고 있었다. 나는 아들 열을 시켜 억지로 말하여 들어가 잤다. 행장이 다 젖었다.(난중일기/노승석 역)


석주관에서 악양에 이르는 길에는 지리산 자락에서 발원하여 섬진강으로 흘러드는 송정, 피아골입구, 그리고 화개천의 큰 하천을 세 번이나 건너야 한다. 특히 큰 비가 내리는 중에, 강폭이 너른 화개천을 건너는 일은 매우 힘이 들었을 것이다. 이순신 장군이 하동에 들어서서 하룻밤을 묵은 악양 입구 평사리에는 예전 ‘평사역’이 있었다고 한다. 일기에서 집의 주인으로 언급되는 이정란은 임진왜란 초기 수성장으로 전주성 수성에 힘썼고, 정유재란 발발 후 전주성이 함락된 이후에는 전주성의 보전을 조정에 건의하여 전주부윤에 임명된 인물이다. 또한 김덕린은 장군이 순천에 머물면서 부체찰사 한효순과 안부를 주고받을 때 부체찰사가 보낸 인물이니 장군과는 잘 아는 사이였다. 미리 언질을 주고받았을 터인데도 이렇듯 난감한 상황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악양에서 하룻밤을 머문 장군은 다음날 젖은 옷을 말리는 등 시간을 보내다 늦게 출발하는데, 이날은 악양에서 약 14~15km로 거리에 있는 두치(현재 두곡마을) 최춘룡의 집에서 하룻밤을 머문다. 경남의 백의종군로 조성자료에 의하면, 당시 두치에는 하동읍에서 규모가 큰 장시(場市)인 ‘두치장’이 있었다고 한다. 두곡마을에서 잠시 진행하면 읍내삼거리가 나온다. 이곳에는 ‘해량’이라는 이름이 전해지고 있는데, 객점이 들어서고 마방거리가 형성되면서 외지인들이 많이 드나들던 곳이라고 한다. 마을 뒤로는 ‘마방로’라는 도로 이름이 남아 옛 역사를 전하고 있다. 참고로 ‘해량’이라는 지명은 삼국지에 나오는 촉한 관우의 고향과 같은 이름으로, 예전 이곳 언덕에 관우를 신으로 모신 ‘관성묘’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서해량‘이라는 마을 이름이 남아 있다.

이번 구간 백의종군로는 대체로 19번국도와 방향을 같이 하나, 답사를 시작하여 악양에 이르는 8km는 도로 아래에 조성된 ‘섬진강 100리 테마로드’로 이어져 있다. 섬진강을 바라보며 대나무밭, 차나무밭, 그리고 잘 조성된 쉼터를 잇는 편안한 길이다. 악양 최참판댁 입구로 가기 위해서는 ‘섬진강 100리 테마로드’를 벗어나, 왼쪽으로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인 도로를 건너야 한다. 질주하는 차량에 길 건너기가 쉽지 않으니 주의를 요한다. 악양에서는 평사리에서 악양면소재지를 둘러 나와 미점리 개치마을에서 다시 19번 국도와 만난다. 한동안 반듯하게 진행되던 길은 홍룡마을을 거쳐 화심에 이르러서는 산허리를 두르는 ‘화심길’을 거쳐 두곡교차로로 이어진다. 교차로에서 왼쪽 국도 옆의 길을 걸어 두곡마을을 지나면 이내 서해량 ‘읍내삼거리’를 만난다. 7시간 남짓 소요되었다. 

/협동조합 지리산권 마실 대표 조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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