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 년 농사 지으며 단맛 쓴맛 다 봤죠”

[한국농어민신문 안형준 기자]

▲ 30여년 동안 쉬지 않고 낙농과 화훼, 쌀과 양파 농사를 지은 전남 함평의 이종순 여성농업인.

맨손으로 야산 개간 목초지 조성 
젖소 두 마리서 쉰 마리까지 키워 

목장 옆 화훼 하우스 짓고
안개꽃·국화 등 재배
태풍 앞에 손도 못쓰고 좌절하기도

쌀·양파로 눈 돌려 ‘재미’
작년부터 양파값 하락세…올해도 걱정
그래도 ‘자식농사’ 성공했으니 감사


“남편과 둘이서 맨손으로 야산을 개간하고 목초지를 조성했다고 말하면 안 믿기시죠?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했는지 상상도 못하겠네요.”

전남 함평군 대동면에서 쌀과 양파 농사를 짓고 있는 이종순(62) 씨의 손은 힘들고 굴곡진 세월만큼 투박했다. 그가 농사에 처음 발을 들인 건 지난 1984년이다. 남편 조강우(65)씨가 총각 시절 쿠웨이트 건설 현장에서 모아온 돈 900만원과 1984년 농업 후계자로 선정돼 지원받은 정부 자금 700만원 등 총 1600여만원으로 인근의 야산 3만9669m2(1만2000평)과 젖소 2마리를 사서 목장을 시작했다.

당시 정부의 초지 조성 사업에 참여하면 젖소를 반값에 구매할 수 있다는 말에 혹해 평지가 아닌 야산에 목장을 세운 게 고생의 시작이었다. 야산에 제대로 된 길조차 나있지 않은 상태라 기계 없이 지게와 리어카를 이용해 나무와 자재를 실어 날랐다. 또 일일이 나무를 베고 씨를 뿌리는 등의 고생이 많았다.

이종순 씨는 “아침과 저녁에는 젖소의 젖을 짜고, 그 외의 시간에는 초지를 조성하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다”라며 “제대로 된 길도 없어서 젖을 짜놓은 스테인리스 통을 지게로 메고 산 아래로 배달했다”라고 회상했다.

젖소가 50마리로 늘고, 목장도 어느 정도 안정화되자 다른 작목에 눈을 돌렸다. 그들이 선택한 건 화훼였다. 목장 옆에 400평짜리 하우스 5동을 세우고 안개꽃과 국화, 카네이션 등을 재배했다. 하지만 불운의 연속이었다. 화훼가 시설 산업이다 보니 투자금도 많고 인건비도 많이 드는 탓에 애지중지 여겼던 목장 규모를 조금씩 줄여나갔다. 게다가 태풍 애니위아와 매미를 겪으며 시설 하우스가 파손되는 아픔도 겪었다.

그는 “시설 하우스를 봄에 지었는데 그해 가을에 큰 태풍이 왔다. 눈앞에서 하우스가 바람에 들려 날아가는 모습을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는데 너무 허망했다”라고 말했다. 

국내 화훼 소비는 줄어드는데 인건비와 난방비 등의 고정 비용이 많이 들어 2013년에 결국 목장과 화훼 하우스 모두를 정리했다. 정들었던 야산 생활을 정리하고 인근 마을로 내려와 8만5950m2(약 2만6000평) 규모로 쌀과 양파 농사를 시작했다. 그동안의 고생에 보답이라도 한 듯 양파 농사는 작황이 좋았고 2017년까지 가격도 높아 나름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2018년 국내 양파 생산량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양파 수입량도 증가해 큰 손해를 봤다. 게다가 올해에는 벌써부터 인근 농협에서 조생종 양파를 폐기하라는 안내 문자가 날아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종순 씨는 “지난해에 양파농사에 들어간 돈을 계산해보니 5000만원이었는데 내 손에 들어온 돈은 1500만원이었다. 결국 1년 내내 몸과 마음을 다해 양파 농사를 지었는데 3500만원을 손해 본 셈이었다”라며 “올해도 벌써부터 폐기 이야기가 오가는데 올해도 빚만 지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라고 말했다.

힘들었던 여러 농사 중에 이종순 씨가 유일하게 성공했다고 여기는 농사가 있다. 바로 ‘자식 농사’다. 이종순 씨에게는 아들 둘이 있는데 어렸을 때부터 부모의 목장일과 화훼 농사를 불평불만 없이 도와줬다. 아들 둘은 잘 커서 초등학교 교사와 경찰관이 됐는데 요즘도 양파 파종기와 수확기에 찾아와 부모의 농사일을 돕는다고 한다.

그는 “오랜 시간 농사를 지으며 단맛과 쓴맛 모두 맛봤는데 농사를 통해 자식을 가르치고, 자식들도 잘 커줘서 너무 고맙다”라며 “앞으로도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농사를 놓지 않고 계속 지어나갈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안형준 기자 ahnh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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