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이 농사짓는 남녀 왜 역할 구분하려 하나"

[한국농어민신문 안형준 기자]


수석동서 3만3057㎡ 벼농사
일흔 둘 나이에도 매일 논 나가
"쌀에 들인 많은 정성 알았으면"

여성농 권익 향상 운동 큰 관심
당당히 주장 펼치는 모습 뿌듯
쌀값 회복·종자보호도 힘써야


“벼농사 짓는 농부는 모내기를 끝내면 여유로울 줄 알죠? 모내기처럼 큰 일이 없더라도 매일 논에 나가 무슨 일이 없는지 둘러보고 풀을 뽑으며 정성스레 가꿔야 합니다. 소비자들도 매일 먹는 쌀이 많은 정성을 들여 생산된다는 걸 알아줬으면 합니다.”

충남 서산시 수석동에서 3만3057m2(1만평) 규모로 벼농사를 짓는 김기숙(72) 씨.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농사를 놓지 않고 매일 아침 논으로 향하고 있다. 그는 일평생을 농업·농촌과 함께 했다. 어려서부터 농사를 짓고, 농촌을 떠나고 싶지 않아 농사꾼 남편과 결혼했다.

그는 농사 외에도 세상일에 관심이 많다. 그 중 하나는 최근 농촌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성농업인 권익 향상 운동이다. 김기숙 씨가 평가하는 과거와 현재의 농촌은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 사회다. 여성농업인은 농사 규모나 작물 등을 결정할 때 선택권이 없고, 남성이 주도하는 대로 따라가는 게 일반적인 농촌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김기숙 씨는 최근 여성농업인들을 중심으로 권익 향상 운동이 펼쳐지고 있는 점을 높게 평가했다. 특히 농업·농촌이 지속되기 위해선 성별 구분 없이 같은 농업인으로 바라보고 대해야 한다는 것이 김기숙 씨의 주장이다.

이와 관련 김기숙 씨는 “똑같이 힘들게 농사짓는데 왜 남성과 여성의 역할을 구분하려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서 “요즘 여성농업인들이 당당하게 주장을 펼치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고, 더욱 힘을 냈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그의 또 다른 관심사는 ‘쌀 가격’이다. 김기숙 씨에 따르면 최근 몇 년 동안 쌀 가격이 좋았던 적이 없었다. 하지만 작년에 처음으로 쌀 가격이 올라 그동안의 고생을 조금이나마 보상받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실제 서산 지역 산지 쌀 가격은 80kg 기준 15만~16만원대를 기록하다 지난해 처음으로 18만5000원으로 인상됐다. 이에 김기숙 씨는 현실적으로 쌀 가격이 조금 더 올라야 벼농사 짓는 농업인들이 적자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쌀 가격이 낮을 때에는 벼농사 규모가 큰 사람들도 타격을 받지만, 1만평 이하로 벼농사 짓는 사람들은 1년 동안 힘들게 농사짓고 나서 손에 남는 건 300만원 뿐”이라며 “정부가 진심으로 농업·농촌을 생각하고 걱정한다면 농업인들이 빚지지 않고 벼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어느 정도 적절한 쌀 가격 유지를 위해 힘써줘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김기숙 씨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토종종자를 지키려는 의지가 강했다. 김기숙 씨에 따르면 농사를 지을 때 가장 아쉬운 게 토종종자가 점차 사라지는 것이었다. 종자회사들이 상품성과 생산성 높은 종자를 출시하며 기존의 토종종자가 많이 사라져 구하고 싶어도 쉽게 구할 수 없게 됐다. 따라서 사라져가는 토종종자를 최대한 많이 보존하고, 또 토종종자로 가족들이 먹을 농산물도 생산하고 싶다는 게 김기숙 씨의 계획이다.

그는 “농사를 오랜 시간 지으며 느낀 건 토종종자가 외관은 좋지는 않지만 먹었을 때 입맛에도 더 잘 맞고, 재배할 때 땅과 궁합이 더 좋다”면서 “토종종자를 보존하고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게 현 시대 농업인들의 숙제라고 생각한다”라고 끝맺었다.

안형준 기자 ahnhj@agrinet.co.kr

관련기사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