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지어 성공한 여성농 세상에 꼭 보여주고 싶어"

[한국농어민신문 안형준 기자]

▲ 이길숙 씨가 자신의 밭에서 수확한 무를 들고 웃고 있다.

4-H 운동 통해 농촌 계몽 첫발
농부와 결혼, 농사일에도 도전 

사양산업 접어든 ‘양잠’ 접고
쌀·밭농사 악착같이 성공시켜 
수익으로 논·밭 사는 재미 ‘쏠쏠’ 

올 6월 지역농협 이사 당선도
"잘 수행해 여성농 본보기 될 것"


“여성농업인도 지역농협에 주요직에 올라 인식을 바꾸고 능력을 펼칠 수 있다는 것과 농사를 지어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세상에 꼭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경기 안성시 공도읍 용두리에서 쌀농사 3만9669m2(1만2000평), 밭농사 2만3140m2(7000평) 등 총 6만6115m2(2만평) 규모로 농사를 짓는 이길숙(65) 여성농업인은 농업 베테랑이다. 그가 농업·농촌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시기는 1970년대다. 개도국이었던 우리나라는 식량 확보에 사활을 걸었다. 당시 중·고등학생이었던 이 씨는 4-H 운동을 통해 농촌 계몽에 눈을 떴다. 각종 농업 관련 경진대회에 나가 입상을 할 정도로 농업·농촌에 대한 자부심과 열정이 컸다.

농업·농촌이 좋았던 까닭에 결혼도 농부와 했다. 그가 처음 농사일을 시작한 건 채종이었다. 종묘회사와 계약해 고추와 토마토, 수박 등의 채종을 했고, 수익도 나쁘지 않게 올렸다. 당시 정부가 양잠 장려정책을 펼쳤기 때문에 채종을 통해 얻은 수익으로 뽕나무 상묘와 양잠까지 농사 규모를 넓혀갔다. 하지만 양잠산업이 차츰 사양사업이 되고 인건비가 많이 드는 까닭에 양잠농장을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

이길숙 씨는 “양잠농사는 사람이 일일이 손으로 작업해야 하기 때문에 인건비가 많이 들어갔다”면서 “또 나에게 뽕 알러지가 있어 누에 밥을 주고 나면 온몸에 두드러기가 생겨 어쩔 수 없이 양잠농장을 정리해야 했다”라고 회상했다.

이후 이 씨가 선택한 건 쌀과 밭농사였다. 사람을 쓰지 않고 자신의 손으로 일한만큼 수익을 올리는 매력에 빠졌다. 물론 쌀과 밭농사가 처음부터 쉬운 건 아니었다. 힘이 들었지만 농사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반드시 보여주겠다는 일념으로 악착같이 일을 했다는 것이 이길숙 씨의 설명이다.

이길숙 씨는 “쌀과 밭농사가 처음에는 너무 힘이 들었지만, 수익이 생기면 조금씩 논과 밭을 사들이는 재미가 쏠쏠했다”면서 “농사를 통해 성공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지금까지 버텨왔다”라고 말했다.

농사 베테랑인 그는 올해 6월 지역농협의 이사로 당선되기도 했다. 아직까지 보수적인 농업·농촌 사회에서 여성농업인이 지역농협의 주요직을 맡는 건 생소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길숙 씨는 대의원 때부터 여성 이사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강조했다. 남성에 비해 비교적 여성들이 세밀한 까닭에 지역농협의 사업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이와 관련 이길숙 씨는 “이제는 여성농업인이 농기계도 척척 잘 운전하고, 힘든 일도 같이 하는데 왜 여성이라는 이유로 이장이나 지역농협의 주요직에 오르지 못하는 차별을 받아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라며 “지금도 농촌에 능력 있는 여성농업인이 많지만 설자리가 많지 않을 게 아쉬울 따름이다”라고 말했다.

이길숙 씨는 지역농협 이사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다른 능력 있는 여성농업인이 용기를 갖고 사회에 나올 수 있도록 본보기가 되겠다는 생각이다.

이길숙 씨는 “다른 지역에서도 조금씩 여성농업인이 지역농협의 임원으로 선출되고 있는데 나를 포함해 이들이 세상의 인식을 바꿀 수 있도록 잘 해야 한다”라며 “당선됐을 때의 결심을 잊지 않고 농가가 정성껏 생산한 농산물을 제값에 잘 팔고 이들이 원하는 부분을 세밀하게 살펴 새로운 사업도 펼쳐 나가겠다”라고 강조했다.

안형준 기자 ahnh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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