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 논, 고개 숙인 벼 볼 때 가장 행복”

[한국농어민신문 안형준 기자]

▲ 경기 평택시 고덕면에서 쌀농사와 한우를 사육하는 김정순 씨는 앞으로 쌀농사 규모를 조금 줄이고, 한우 사육을 현재 30두에서 200두까지 늘리는 게 목표다.

밤낮으로 궂은일 마다않고
쌀농사 규모 조금씩 키워
젖소 이어 한우 사육

살림살이 나아질 무렵
잘못선 보증에 빚더미 시련
부부 버팀목 되어 ‘극복’

맨주먹으로 시작해 
남부럽지 않은 대농으로


“농사를 지을 때 남편 또는 아내 한 쪽의 노력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어요. 부부가 서로 버팀목이 되고 모자란 부분을 메꿔줘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경기 평택시 고덕면에서 쌀농사 14만87660m2(4만5000평)과 한우 30두를 사육하고 있는 김정순(59) 씨. 농사짓는 규모만 봤을 때는 남부러울 것 없는 대농이다. 하지만 김정순 씨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가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한 때는 지난 1987년. 부모에게 물려받은 것 하나 없이 맨주먹으로 농사에 뛰어들었다.

농사지을 땅도 없이 남의 땅을 빌려 쌀농사를 시작했다. 남편 최창섭(57) 씨는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철도 보수공사를 다녔다. 김정순 씨도 낮에는 남편과 함께 농사를 짓고 오후에는 인근 과수원에서 일을 했다. 그야말로 밤낮으로 눈코 뜰 새 없이 일만 했다. 자신의 땅에서 농사를 마음 놓고 지어보고 싶은 생각에서였다.

밤낮으로 일해서 번 돈을 차곡차곡 모아 1995년에 처음으로 자신의 논을 갖게 됐다. 그때 구입한 논의 면적은 2049m2(620평)이었다. 지금과 비교하면 넓은 면적은 아니지만 일생 처음으로 논을 갖게 된 행복은 이루 말 할 수 없었다는 게 김정순 씨의 설명이다. 논을 갖게 되자 더 열심히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건비를 조금이라도 줄여보려고 부부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 일만 했다. 다른 사람의 모내기를 대신해주거나 모판을 길러주는 등 돈이 되는 일은 마다하지 않았다.

쌀농사 규모가 조금씩 커지자 젖소와 한우를 사육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젖소 송아지를 사와 3개월가량 기른 후 다시 내다 팔기를 반복했다. 돈이 좀 모이자 한우로 전환해 최대 170두까지 사육하게 됐다.

하지만 행복은 잠시였다. 남편이 과거에 친구의 보증을 선 것이 화근이 됐다. 1997년 IMF 외환위기가 닥치며 경기가 안 좋아지자 남편이 고스란히 보증을 갚아야 하는 신세가 됐다. 애지중지 키우던 한우 대부분을 처분하며 빚을 갚았다. 이제는 조금 편해질 수도 있었는데 갑작스레 빚이 불어나 또다시 밤낮없이 일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김정순 씨는 “조금 편해지려고 하면 또다시 시련이 닥쳤다”면서 “하지만 그 때마다 남편과 서로 버팀목이 돼 잘 버틸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수많은 어려움을 잘 헤쳐 온 김정순 씨. 그는 농사를 지으면서 가장 행복할 때는 ‘가을’이라고 한다. 봄에 모를 심고 여름에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고, 가을에 벼가 고개를 숙이고 논이 황금빛으로 물들 때를 바라보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고 뿌듯하다.

김정순 씨는 앞으로도 농사를 계속 이어나갈 계획이다. 다만 요즘 젊을 때 혹사시킨 몸이 조금씩 말을 듣지 않고,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해 걱정이 많다. 요즘에는 외국인 근로자도 구하기 쉽지 않아 농사일이 더욱 힘들어 지고 있다.

그는 “과거에는 농촌에 사람이 많아 일할 사람을 구하기 쉬웠지만, 이제는 농촌에 젊은 층이 유입되지 않기 때문에 사람 구하기가 많이 힘들어졌다”면서 “길면 15년가량 더 농사를 지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정부에서 젊은 층이 농촌에 유입돼 농업이 계속 유지될 수 있도록 다양한 정책을 발굴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안형준 기자 ahnh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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