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한 만큼 정당하게 돈 버는 농업 됐으면 해요"

[한국농어민신문 안형준 기자]

▲ 경기 평택시 진위면에서 오이와 토마토, 쑥갓을 재배하는 유봉희 여성농업인이 수확한 쑥갓을 들고 미소 짓고 있다.

오이·토마토 등 7272㎡ 시설원예
부부가 1년 내내 쉼 없이 일해도
박스 값·운임·난방비 등 제하면
실제로 남는 돈 2000만원 안팎
 
중간 유통서 이익 대부분 가져가
수취가격 형편없으면 힘 쭉 빠져
농산물 제 값받는 환경 조성돼야 


농업인들이 한 해 농사를 시작하기 위해 가장 분주한 3월 중순. 경기 평택시 진위면에 위치한 유봉희(61) 여성농업인의 오이 농장에서도 오이 정식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움직임으로 가득했다.

유봉희 여성농업인은 현재 1652㎡(500평) 규모의 하우스 3동과 495㎡(150평) 규모 하우스 3동 등 총 7272㎡(2200평) 규모로 오이와 토마토, 쑥갓 등 시설원예 농사를 짓고 있다.

그는 1년 중 쉬는 시간이 없다. 매년 12월에는 오이를 파종하고 1월 초에는 옮겨심기를 한다. 2월부터 3월은 오이를 정식하고 4월초부터 본격적인 수확에 들어간다. 5월은 오이 출하량이 가장 많은 시기인 까닭에 제일 바쁘게 움직인다. 7월 중순에야 오이 수확이 끝나고 8월 중순부턴 연작장애를 방지하기 위해 호박과 토마토를 심는다. 이어 9월에는 호박과 토마토를 수확하기 시작하고, 쑥갓도 파종한다. 호박과 토마토는 11월까지, 쑥갓은 이듬해 3월까지 수확을 한다. 말 그대로 1년 내내 농사만 짓는다.

유봉희 씨가 농사를 처음 시작한 건 지난 1994년이다. 직장인이었던 남편 홍석두(63) 씨와 경기 송탄에서 속옷가게를 하던 유봉희 씨는 농사와는 거리가 멀었다. 어느 날 농사를 짓는 남편의 친구가 속옷가게에 놀러와 수익을 자랑하는 말을 듣고 우연찮게 농사에 뛰어들게 됐다.

그는 “남편의 친구가 가게에 놀러와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며 ‘농부는 직장인의 한 달 월급을 하루 만에 벌 수 있다’라는 말에 혹해 농사를 시작하게 됐다”면서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말이지만 그때는 그 말이 진실인줄 알았다”라고 회상했다.

농사 경력 25년의 유봉희 씨는 최근 큰 기로에 서 있다. 농사를 계속 이어갈지 아니면 그만 둘지 고민 중이다. 환갑에 들어서며 농사일이 버겁게 느껴지고, 농산물 가격도 일정치 않아 1년 내내 농사를 지어도 남는 건 빚뿐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여름에는 무더운 하우스에서 일을 하다 화가 나서 부동산을 찾아 임대를 문의했는데 부동산 측에서 “땅의 주인도 수익을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느 누구도 땅 임차를 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대답만 들었다.

유봉희 씨에 따르면 농업인들의 이 같은 현상은 중간 유통과정에서 이익의 대부분을 취하고, 농업인은 유통 상인에게 휘둘리는 현재의 유통 시스템이 문제다. 예를 들어 오이는 22kg 기준 1박스를 도매 시장에 납품하면 2만2000원 가량을 받는데 25년 전 가격과 지금이 비슷한 수준이이다. 또 쑥갓의 경우 4kg 1박스에 평균 3000원 가량 받는데 박스 값 700원과 운임비 600원, 전기료와 난방비, 종자 가격 등을 제하면 인건비조차 건질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는 “1년 내내 부부가 쉬지 않고 일해 매출액이 8000~9000만원 가량 되는데 고정 투입 비용이 7000만원 정도고, 실제로 남는 돈은 2000만원 안팎이다”라며 “나 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여성농업인이 가장 화가 나는 순간은 봄철에 남편들이 어깨에 힘이 빠진 채 종자 값을 마련하기 위해 지역 농협에 대출을 받으러 가는 모습을 볼 때다”라고 말했다.

유봉희 여성농업인은 이 같은 현상이 되풀이 되면 농사를 포기하는 사람이 늘어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이어 농업인이 농사를 포기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선 농업인이 일한 만큼 제 가격을 받을 수 있는 유통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농업인들은 진짜 죽을힘을 다해 열심히 농사를 짓는데 수취 가격이 형편없으면 힘이 쭉 빠진다”면서 “제발 일한 만큼 정당하게 돈을 벌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안형준 기자 ahnh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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