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어난 경관 속 옛사람의 정신을 보다

[한국농어민신문] 

용호구곡 제9곡 교룡담. 구룡계곡 탐방로의 최상단 구룡폭포 위에 검푸른 소(沼)를 이루고 있는 교룡담의 모습이다. 정면 데크가 보이는 곳이 구룡폭포 탐방로 최상단 지점이다. 왼쪽 넓은 바위 사면에 교룡담 각자가 보인다. 
용호구곡 제9곡 교룡담. 구룡계곡 탐방로의 최상단 구룡폭포 위에 검푸른 소(沼)를 이루고 있는 교룡담의 모습이다. 정면 데크가 보이는 곳이 구룡폭포 탐방로 최상단 지점이다. 왼쪽 넓은 바위 사면에 교룡담 각자가 보인다. 

‘제5곡은 유선대(遊仙臺)이다. 산 이름은 병암(屛巖)이니 천길 높이로 깎아지른 듯한 모습이 병풍에 먹으로 수를 놓은 것처럼 펼쳐진다. 선대(仙臺)는 어느 곳인가? 호수 동쪽에 높이는 세 길 남짓하고 넓이는 백 개의 바둑판을 수용할 만한 우뚝 솟은 바위가 있으니 이것이 유선대이다.’


위의 글은 「용호구곡경승안내」에 나오는 ‘제5곡 유선대’ 부분을 발췌 요약한 것이다. 필자는 유선대 안내판이 있는 계곡 주변을 샅샅이 훑으며 거의 3시간 정도 헤맨 끝에 겨우 각자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때서야 비로소 이 글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이곳 탐방로에서 계곡 건너(동쪽) 산자락을 올려다보면 거대한 바위가 병풍처럼 드리워져 있는 곳이 있는데 이를 병암, 즉 병풍바위라고 한다. 유선대 각자는 계곡 주변의 반들반들한 암반이 아닌, 이 산자락 아래에 서있는 넓고 평평한 흑갈색 바위에 있다. 또한 ‘경승안내’에는 정유재란기 의병장으로 활약한 조경남 장군이 이곳에서 은거하며 숙성령을 넘어오는 왜적을 향해 활을 쏘았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기도 하다.

유선대 각자를 찾으며 느낀 허탈감과 안도감의 진한 여운을 뒤로 하고 탐방로를 오르면, 계곡 본류를 벗어나 오른쪽의 또 다른 계곡을 가로지르는 출렁다리를 만난다. ‘제6곡 지주대’가 있는 곳이다. 지주대는 이 두 계곡 사이에 있는 산자락의 바위지대를 일컫는다. 다리를 건너 계곡으로 내려서서 오른쪽 하류 쪽으로 잠시 나아가면, 산자락 바위 사면에 세로로 새겨진 각자를 만날 수 있다. 지주대는 두 물줄기 사이에서 오랜 시간동안 침식을 당했지만, 의연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점에서 군자가 취해야 할 덕목을 강조하는 뜻이 서려있다.

지주대를 지나면 지금까지 계곡을 따라 이어지던 길과는 달리 산허리를 에돌며 길이 나있는데, 잠시 진행하면 제법 너른 공간을 만난다. ‘제7곡 비폭동’이 있는 곳이다. 비폭은 낙하하는 물이 은빛 물결을 이루며 날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계곡 건너편 산자락에서 흐르는 엷은 물길을 일컫는다. 비폭동 각자는 오른쪽 계곡 상류 쪽의 좁고 깊은 골짜기 입구, 즉 동구(洞口)의 오른쪽 바위 면에 새겨져 있다.

비폭동에서 이어지는 탐방로는 계곡을 따르지 않고, 오른쪽에 있는 멋진 암릉을 우회하며 나있다. 암릉을 올라서서 잠시 진행하면 ‘제8곡 경천벽’ 안내판을 만난다. 경천벽은 이곳에서 왼쪽 아래 아득하게 내려다보이는 협곡에 있다.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석벽’이라는 이름이 의미하듯 거대한 바위지대가 기둥을 이루는 곳이다. 조금 먼 거리이지만 이곳 바위지대를 자세히 살피면 경천벽 각자를 육안으로도 볼 수 있다.

이제 구룡계곡 답사의 최종 목적지인 구룡폭포가 지척이다. 용호구곡의 ‘제9곡 교룡담’이 있는 곳이다. 하지만 교룡담 각자를 찾기란 쉽지 않다. 구룡폭포 상단의 ‘방장제일동천’ 각자가 있는 곳을 비롯, 폭포 부근을 아무리 둘러봐도 교룡담 각자는 보이지 않는다. 교룡담은 구룡폭포 바로 위에 두 군데 깊은 소(沼)를 이루는 곳인데, 교룡담 각자는 상류 쪽에서 내려다보아야만 찾을 수 있는 것이다.

폭포에서는 계곡으로 바로 오를 수 없고, 꽤 먼 길을 우회하여야 상류로 이동할 수 있다. 구룡폭포에서 주차장 가는 길 목재데크 계단을 오르다보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이곳에서 왼쪽 길을 따르면 구룡정이 나온다. 이곳 인근에 있는 천룡암에서 계곡을 따라 폭포 쪽으로 내려서면, 폭포 바로 위 거대한 암반에 검푸른 소를 이루는 교룡담을 만난다.

각자는 이곳 왼쪽 바위에 새겨져 있다. 인근에는 ‘구룡대’라는 각자와 친목계 결성 등을 기념하는 글씨도 여럿 새겨져 있다. 이곳에는 미끄러운 암반을 지나야 하는 곳이 있으니 조심스레 진행을 하여야 한다. 이상 용호구곡 아홉 곳의 각자 답사를 모두 마친다.

「용호구곡경승안내」에는 용호구곡 각자 외에도 ‘불신당(佛信堂)’에 있는 바위글씨를 소개하고 있다. 구룡계곡 주차장에서 도로 옆으로 이어지는 탐방로를 따라 오르다보면 왼쪽 도로 쪽으로 공간이 트인 곳이 나오는데, 불신당은 이곳 맞은편에 있는 석벽지대를 말한다. 이곳에는 조선후기 유명한 서예가인 이삼만이 쓴 ‘용호석문’, 김두수가 8세 때 썼다는 ‘방장제일동천’, 노수현이 쓴 ‘나무아미타불’ 등의 각자가 있다.

빼어난 자연경관을 지닌 구룡계곡을 이렇듯 옛사람들의 정신이 서려있는 ‘용호구곡 각자 찾기’라는 테마답사로 찾게 되길 기대하며 글을 맺는다. 계묘년 새해, 독자 여러분의 건강과 행운을 빈다.

조용섭/협동조합 지리산권 마실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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