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마녀의 계절

[한국농어민신문 안형준 기자]

▲ ‘마녀의 계절’에 참여하고 있는 김예슬(왼쪽부터), 배이슬, 박푸른들 씨.

우리 농업·농촌이 고령화와 인구감소로 소멸될 위기라고 한다. 모두가 위기라고 쉽게 이야기하지만 해결 방법을 내놓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 같은 상황에서 그나마 다행인 것은 숫자는 많지 않지만 젊은이들의 귀농·귀촌이 증가하고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젊은이들 중에서도 39세 미만의 청년여성들의 귀농·귀촌이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아기의 울음소리가 끊기고, 일할 사람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농업을 포기하는 현실에서 청년여성의 귀농·귀촌 증가는 곧 농업·농촌의 희망이 될 것이다. 앞으로 20회에 걸쳐 농업·농촌에서 땀 흘리며 농사짓는 청년여성농업인을 소개하고, 이들이 어떤 생각과 고민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본다.


합천·진안·홍성·화천 등
전국의 청년농업인 의기투합
화학자재 없이 채소 재배

쌀·감자부터 유기농허브·꿀까지
계절 특색 살려 소비자에 전달
 
소농 판로 개척하고 
소비자와의 소통이 ‘큰 힘’


“밥상에서 계절을 잃어버린 소비자에게 계절을 다시 돌려주고, 오늘을 함께 살아가는 전국의 페미니스트들을 응원하는 마음에서 농산물 꾸러미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전국의 마녀들이 모여 수상한 일을 꾸미기 시작했다. 이들은 ‘마녀의 계절’이라는 계절이 담긴 상품을 전국의 소비자들에게 보내고 있다. 여기에 참여한 마녀는 경남 합천에서 감자와 콩, 생강과 고구마 등의 밭농사를 짓는 김예슬(26) 씨와 전북 진안에서 쌀과 블루베리, 고구마 농사를 짓는 배이슬(31) 씨, 충남 홍성에서 유기농 허브와 노지채소, 비트와 고구마 등을 재배하는 박푸른들(31) 씨와 강원 화천에서 양봉과 아스파라거스 농사를 짓는 임달래(35) 씨 등 총 4명이다.

▲ 쌀과 계절 채소, 블루베리와 옥수수 등이 담긴 여름 꾸러미.

‘마녀의 계절’은 화학비료나 농약 등의 화학자재를 사용하지 않고 재배한 제철 농산물을 2~3인이 쉽게 조리해 먹을 수 있도록 꾸린 꾸러미다. 꾸러미의 특징은 각 계절마다 꾸러미를 보내는 사람이 다르다는 점이다. 봄의 경우 임달래 씨가 아스파라거스와 산나물을 여름에는 배이슬 씨가 쌀과 각종 채소를, 가을에는 김예슬 씨가 고구마와 토종 콩 등의 밭작물을, 겨울에는 공동으로 저장성이 좋은 농산물을 엄선해 스페셜 꾸러미를 꾸려 소비자에게 보내고 있다.

이들이 강조하는 ‘마녀의 계절’의 가장 특별한 점은 ‘계절성’과 ‘이야기’이다. 계절성의 경우 현대사회의 소비자들은 마트에 가면 언제든지 원하는 농산물을 사먹을 수 있는 편리함을 얻었지만, 어떤 농산물이 제철인지 알 수 없게 됐다. 따라서 ‘마녀의 계절’에 제철 농산물을 담아 소비자의 밥상에 계절을 돌려주겠다는 생각이다. 또 이야기의 경우 소비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꾸러미에 농산물의 재배 과정부터 시작해 특징과 효능, 요리법을 담은 편지를 함께 동봉하고 있다.

이와 관련 김예슬 씨는 “자연의 흐름에 맞춰 건강하게 길러진 농산물에는 우리가 알 수 없는 힘이 가득한데 요즘에는 유통의 발달로 계절을 누리며 사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 안타까웠다”면서 “밥상에서 계절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계절을 돌려드린다는 의미에서 꾸러미 사업을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배이슬 씨는 “꾸러미를 꾸릴 때 농산물을 어떤 걸 넣을까 고민하는 것도 힘들지만, 이를 설명하는 편지를 쓰는 게 더 힘들다”라며 “하지만 편지가 없으면 우리가 계획하고 가지고 있는 가치를 온전히 전달할 수 없는 까닭에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마녀의 계절’에는 원칙이 있다. 욕심내지 않고 감내할 수 있는 만큼만 주문받아 이들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 가격에 판매를 하는 것이다. 현재 ‘마녀의 계절’은 친환경 농산물 쇼핑몰인 ‘논밭상점(http://www.nonbaat.com)’에서 주문을 받고 판매하고 있다. 가격은 3만원이고, 매주 월요일 정오까지 주문을 받아 수요일마다 배송하고 있다.

이들이 ‘마녀의 계절’을 처음 시작한 건 올해 3월부터다. ‘농촌청년여성캠프’에서 만나 생각이나 가치관, 영농형태 등의 공통점이 많고,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난 후 더욱 가까워졌다. 모두가 가족농 형태의 소농인 까닭에 농산물 판로가 고민이었는데 이를 해결해보고자 꾸러미 사업을 제안했다. 꾸러미 사업으로 성공을 하는 게 목표가 아닌, 어떻게 하면 자신이 생산한 농산물을 잘 판매할 수 있을지 실험을 하기 위해서였다.

이와 관련 박푸른들 씨는 “마녀의 계절을 통해 소비자들과 접점이 처음인 사람도 있기에 무엇보다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한다”면서 “특히 소비자들이 우리가 보낸 꾸러미를 받고 후기를 남겨줬을 때 많은 힘이 되고, 이 같은 후기들이 경제적 가치 이상으로 정서적 마진이 남고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사업을 처음 진행하다보니 어려운 점도 있었다. 대규모 농장이 아닌 까닭에 농산물의 규격이 일정하지 않고 생산비를 책정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꼈다. 또 2~3인분에 맞도록 농산물을 담는 것도 익숙지 않은 일이었다. 이와 함께 꾸러미에 반조리 또는 가공식품을 넣기 위해선 가공시설을 갖추고, 위생 검사까지 마쳐야 하는데 소농의 입장에선 이를 진행하기 위한 결정이 선뜻 쉽지 않은 상황이다.

‘마녀의 계절’의 단기 계획은 내년 3월까지 꾸러미 사업을 계속 진행하고, 이 과정에서 발생한 시행착오를 공유하고 해결방안을 찾아 보완한다는 것이다. 또 장기적으로는 꾸러미 사업 더 많은 청년여성농업인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사업을 확장시킬 계획이다.

배이슬 씨는 “당장 큰 계획이나 꿈을 갖기보다는 단거리 달리기처럼 조금씩 움직이며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나갈 것”이라며 “지금은 비록 4명이서 사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더 많은 청년여성농업인들이 함께해 모두 잘 먹고, 잘 살았으면 좋겠다”라고 강조했다.

안형준 기자 ahnhj@agrinet.co.kr

#마녀지침서
*자연에 기대어 농사를 짓습니다. 가장 위대한 마법은 자연이 하는 일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입니다.
*사람 몸에도 계절이 있습니다. 그 흐름에 맞추어 건강한 먹거리를 먹을 수 있도록 꾸러미에 제철농산물을 담습니다.
*먹는 사람이 편안하고 행복할 수 있는 농산물을 생산합니다. 그러기위해서는 농사짓는 농부가 먼저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지구를 위해 과한 포장은 하지 않습니다.
*잘나고, 못난 것을 가리지 않습니다. 자연에서 제멋부리며 자란 농산물을 당당하게(합당한 가격에)판매합니다.
*돈을 주는 사람이 ‘갑’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농부와 소비자가 평등한 관계를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마녀(여성, 소농, 청년)’들이 잘 먹고,잘 사는 세상을 위한 작은 작당을 함께 모의하고 일으킵니다. 재미나고 신명나게!

관련기사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