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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농촌의 미래, 우리는 청년여성농업인] “행복해지기 위해 선택한 귀농, 후회 없어”<5>전남 영광 이선화

[한국농어민신문 안형준 기자]

▲ 전남 영광군 군남면에 거주하는 이선화 씨는 쌀과 보리를 재배하며 지내들 영농조합법인의 사무장까지 맡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부모님 일 도와드리다
‘지내들 영농법인’에 합류
쌀·보리·잡곡 제품 디자인부터
홍보·판매까지 진두지휘

판매상품 단위 바꾸고
온라인 쇼핑몰 판매 확대
매출액 5배로 늘려 

농촌에 젊은이들 많이 와
두루두루 잘 살수 있게 되길


“제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해 귀농을 선택했어요. 도시에서 일할 때보다 일하는 시간은 늘고 소득은 줄었지만 농촌에서 일할 때에는 나를 발전시키기 위해 시간을 투자한다는 생각이 드니 마음이 너무 편해졌어요.”

전남 영광군 군남면에 거주하는 이선화(36) 씨는 요즘 하루 24시간이 모자라다. 그의 직업이 두 개이기 때문이다. 이선화 씨의 첫 번째 직업은 약 8000m2(2420여평) 규모로 홍미와 향찰 등의 기능성 쌀과 보리를 재배하는 농부다. 두 번째 직업은 마을 기업인 ‘지내들 영농조합법인’의 사무장으로 이곳에서 생산된 쌀과 보리, 잡곡 등의 제품 디자인부터 홍보, 판매에 이르기까지 상당 부분을 관여하고 있다.

그는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 후 광주광역시에서 약 10년 동안 가구회사 디자이너로 근무했다. 젊은 나이에 팀장직까지 올랐던 그가 돌연 귀농을 선택한 건 ‘행복하고 싶다’라는 생각에서였다. 주말 근무와 야근을 밥 먹듯이 하면서 소모되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부모님이 도움을 요청했다. 이선화 씨의 부모님은 전남 영광에서 쌀과 보리를 재배하며 마을 사람들과 모여 ‘지내들 영농조합법인’을 설립해 운영 중이었다. 그의 부모님은 컴퓨터를 다루거나 사업제안서를 작성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꼈기 때문에 이선화 씨가 부족한 시간을 쪼개 도와드리곤 했다.

부모님의 일을 도와드리다 보니 영농조합법인의 일에 점점 흥미가 생겼다. 어떻게 하면 마을에서 생산한 쌀과 보리의 판매량을 늘릴지 고민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정성스레 사업제안서를 작성하며 소비자들의 니즈를 파악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도와드린다는 생각이었지만, 점점 흥미가 생겼고 나중에는 오히려 가구디자이너 일보다 영농조합법인의 일을 더 많이 하게 됐다. 주객이 전도되자 이선화 씨는 2016년에 귀농을 결심하고 고향인 영광으로 내려왔다.

이와 관련 이선화 씨는 “도시에서는 일을 할수록 소모되고 있다는 생각이 가득했는데 농촌에 내려와 보니 일을 한만큼 성과가 나타나 재미가 있었다”면서 “수면과 여가시간이 줄고 소득도 줄어들었지만, 삶에 행복을 느껴 귀농한 것을 후회하지 않고 만족한다”라고 말했다.

막상 고향에 내려오니 주위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 잘 다니던 직장을 때려 치고 고향에 오니 마을 사람들이 의아해했다. “망해서 내려왔다.”, “얼마 버티지 못하고 금세 도시로 갈 것이다.” 등의 수많은 말이 들렸다. 이선화 씨는 이 같은 기존의 편견을 깨고 싶었다. 청년들이 농업·농촌을 선택한 것이 실패한 삶이라서가 아닌, 성공을 위한 선택이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가 귀농을 해서 가장 먼저 한 것은 지내들 영농조합법인에서 판매하는 상품의 변경이었다. 판매 상품의 단위를 기존 5kg과 10kg에서 핵가족과 1인가구를 겨냥해 1kg과 2kg 등의 소포장으로 바꾸고, 포장지 디자인도 소비자들이 친근감을 느끼고 선물을 주고받고 싶을 정도로 깔끔하게 변경했다. 이어 쿠팡이나 SNS 등을 통해 판매처를 확대하고 자체 홈페이지의 개편을 진행했다. 이와 함께 소비자들을 직접 만나고 다니면서 의견을 들은 후 상품에 반영했다. 결과는 좋았다. 지내들 영농조합법인의 매출액이 5배가 늘면서 주위 사람들도 이선화 씨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는 “동네에서 지내들 영농조합법인을 운영하기 시작한 건 지난 2009년에 정부가 보리 수매를 중단하면서 이모작을 하는 마을 특성 상 소득 보존 차원에서 공동으로 쌀과 보리를 판매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기존 방식으로 상품을 구성하고, 판매하다보니 매출액이 매우 낮았다”라며 “젊은 사람이 고향으로 내려와 상품을 개편하고 인터넷 판매 루트도 개척해 매출액을 높이니 마을 및 주위 사람들도 인정해주기 시작했고, 나도 뿌듯함을 느끼며 더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 나와 같은 사례가 늘어나면 더 많은 젊은이들이 농촌으로 내려올 것이고 귀농하는 이들에 대한 농촌의 인식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선화 씨는 앞으로의 계획으로 기능성 쌀 및 보리 판매를 통한 지내들 영농조합법인 내 소속 농가들의 소득을 2배로 향상시키는 것을 꼽았다. 더 나아가서는 영광 지역 내 농가들이 생산한 농산물도 대신 판매를 해 지역의 소득을 올리고 싶은 욕심도 가지고 있다.

이와 관련 그는 “나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게 아닌 농촌에 거주하는 모두가 두루두루 잘 살았으면 하는 소망이 있는데 혼자만의 힘으로는 힘들다”라며 “젊은 친구들이 꼭 농업이 아니더라도 농촌에 내려와 자신의 특기를 접목시켜 지역을 발전시킬 수 있는 게 많은 만큼 많은 젊은 친구들이 농촌으로 내려와 꿈을 펼쳤으면 좋겠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청년들이 농촌으로 내려와 정착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농촌 지역에 열악한 의료 및 복지 서비스의 확충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출산을 할 수 있는 산부인과가 부족해 출산사각지대에 놓여 있고, 또 출산을 하더라도 아이를 마음 놓고 맡길 수 있는 유치원도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젊은이들이 귀농·귀촌을 하더라도 정착에 어려움을 느껴 다시 도시로 떠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선화 씨는 “농촌 지역의 열악한 의료 및 복지 시설 때문에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젊은이들을 많이 볼 수 있다”면서 “지자체가 귀농·귀촌을 장려하는데 몰두하기보다 내려온 이들이 정착할 수 있도록 사회간접자본을 확충하는 게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안형준 기자 ahnh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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