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대에 걸친 전통과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지평막걸리는 기본에 충실하겠다는 원칙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 할아버지, 아버지에 이어 3대째 지평주조장을 이끌고 있는 김기환 대표가 지평막걸리를 소개하고 있다.

불황 속 소비트렌드는 가격 요인 외에도 내적인 의미에 특별함을 부여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른바 ‘착한 소비’, ‘공유 경제’, ‘가치 소비’ 등이 대표적인 것들이다. ‘작은 사치’라는 뜻의 ‘스몰럭셔리(Small Luxury)’라는 말도 최근 사회 현상과 무관치 않다. 불황기에 오히려 역설적으로 ‘프리미엄’ 제품에 관심이 높아지는 소비 심리를 잘 말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프리미엄’ 시장이 전통식품을 주목하고 있는 이유다. 어쩌면 고품질의 국산 원료를 바탕으로 오랜 전통의 맛과 멋을 구현해 왔고, 지금도 해 오고 있는 전통식품이 자신의 강점을 마음껏 살려낼 수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이런 흐름 속에서 프리미엄 수요 공략에 나서는 전통식품업계의 움직임도 부쩍 늘어나고 있다. 이 행보를 따라가 본다.

100% 국산 쌀, 깨끗한 물 기본
1925년 지평주조장 건립 후
90여년 원형 가깝게 유지
‘술맛’ 유지 깐깐하게
숙취 적고 목넘김 부드러워


많은 전통식품업체들이 우수한 품질과 외부에 자신할 만한 전통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포장과 홍보 등 마케팅 역량과 이를 뒷받침할 자본력이 부족해 ‘프리미엄’이란 이름을 내놓지 못하는 현실에 놓여 있다. 현대적인 감각에 맞춰 리뉴얼 등 다시 가공되지 않더라도 지금까지 명맥을 지켜오고 있는 전통식품은 ‘프리미엄’이라는 한 마디 말로 수식될 수 없고, 또 그래서도 안 된다는 것에 많은 공감을 나타낼 것이다. 많은 전통식품들이 가진 품질과 노하우, 전통 등이 바로 변할 수 없는 ‘프리미엄’이기 때문이다. 이런 차원에서 ‘프리미엄’이라는 이름을 떠나 그 기본 원칙을 변함없이 지켜온 전통식품의 표상으로 볼 수 있는 한 업체를 프롤로그 순서에 빌려 소개하고자 한다.

경기 양평군 지평면에 위치한 지평주조장, 그리고 이곳에서 빚어지는 지평막걸리는 전통주의 원형을 최대한 구현해 내고 있는 장소와 그곳에서 만들어낸 전통식품이다.

지평주조장은 1925년에 세워진 후 지금까지 90여 년간 원형 가깝게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국전쟁 당시에 지평리 전투에 참전한 유엔군 프랑스 군대가 이곳을 사령부로 삼아 전적비가 세워져 있고, 지금도 한국전 참전 기념일이면 프랑스군이 기념행사를 하러 오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양조장 중 하나로 꼽히는 지평주조장은 문화재청에서 관리하는 대한민국근대문화유산 제594호에 선정됐을 정도로 지역을 넘어 업계의 역사를 담아내고 있다.

이 한 곳에서만 9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전통적인 수작업으로 빚어진 지평막걸리는 그 역사를 맛볼 수 있는 전통주라는 점에서 단순히 ‘마시는 막걸리’ 이상의 무게감을 주고 있다. 100% 국내산 쌀과 양평군 일대의 청정 지하수를 고수해 온 주조 원칙과 전통 주조 방식은 할아버지, 아버지, 손자 3대가 가업을 이어가는 속에서 자연스럽게 계승됐다. 지평막걸리는 쌀 막걸리 특유의 목 넘김이 부드럽고, 다른 막걸리에 비해 진하면서도 탁하지 않아 숙취가 적다는 점이 특징이다.

초대 사장에 이어 한 가족의 3대가 보여준 술을 향한 애정은 숙성 발효되는 시간을 거치며 비로소 맛을 내는 전통주의 모습과도 닮았다. 그만큼 지평막걸리에 대한 품질관리는 유독 자부심을 갖는 부분이다. 아버지에 이어 지평주조장을 맡고 있는 30대 ‘젊은 피’인 김기환 대표는 “무엇보다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술의 맛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갖고 있다고 해도 품질관리가 이뤄지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며 “품질관리 쪽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원료업체들의 현장 실사를 꼼꼼하게 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이어 “100% 국내산 쌀과 깨끗한 물을 기본으로 하는 원칙은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고, 국을 띄우는 방식도 전통 그대로 수작업을 통해 진행하고 있다”며 “최근에는 품질관리를 위해 생산 단계의 공정들을 체계화·표준화하는 데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지금까지 수기와 전문 인력에 의존해 온 측면이 컸다면 앞으로는 발효일, 무게 측정 등 품질관리를 위한 표준화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품질을 한 단계 더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국내 막걸리 시장의 녹록치 않은 여건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국내산 쌀을 원료로 만든 막걸리들은 ‘막걸리는 값싼 술·서민 술’이라는 인식 탓에 이보다 가격이 저렴한 ‘수입쌀 막걸리’ 등에 밀리고 있다. 지평막걸리 가격대도 1700원 정도로 일반 막걸리 가격 1000~1100원대에 비해 조금 비싼 편이다. 반면 최근 막걸리 시장에선 지평막걸리보다 가격이 2~3배 높은 ‘프리미엄’ 막걸리가 속속 등장하며 ‘프리미엄 시대’를 열고 있는 상황이다.

김 대표는 “프리미엄 막걸리 수요는 분명히 있으며 앞으로 더욱 커질 것으로 생각해 지평막걸리도 프리미엄 제품을 출시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지만, 아직 구체화하고 있진 않다”며 “제품을 둘러싼 품질, 맛, 전통 등의 모든 것들에 대한 고민과 노력이 발휘돼야 진정한 프리미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며, 지평막걸리도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앞으로도 계속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고성진 기자 kos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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